지금 여기서, 한옥 라이프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지금 여기서, 한옥 라이프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장보현 저

Text | Kakyung Baek
Photos provided by Bohyun Jang

장보현 작가의 책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는 작은 한옥을 고쳐 내 집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한옥에서 사는 게 좋다’고 말하기보다 어느 곳이든 자신만의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나가는 태도에 대해 얘기한다.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는 언젠가의 멋진 그 집이 아닌, 지금 이 집에 대해 얘기하는 에세이다. (중략) 그보다 어떤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리는 태도를 꼼꼼한 글과 담백한 사진으로 보여줄 뿐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한 칼럼에서 “요즘 사람들은 미래완료 시제에 갇혀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취직, 승진, 결혼, 성공 등 미래의 어떤 사건이 완료되어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 심지어 ‘그날’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불행한 날의 연속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집에 대해 그런 것 같다. 내 소유의 집, 혼자 사는 집, 더 큰 집, 좋은 동네에 있는 집 등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장보현 작가가 펴낸 책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는 언젠가의 멋진 그 집이 아닌, 지금 이 집에 대해 얘기하는 에세이다. 작가는 허물어져가는 한옥을 보수하는 일상에 대해 기록하지만 ‘한옥에 살아야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어떤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리는 태도를 꼼꼼한 글과 담백한 사진으로 보여줄 뿐이다.

 

한국예술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쓰는 장보현은 사진과 영상을 만드는 남편 김진호와 함께 도심의 한옥에 산다. 책의 목차를 절기로 나눈 점이나, 집에서 전통 혼례를 치른 것을 보면 전통문화가 삶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북도의 집성촌 종가에서 자라면서 고택과 500년이 훌쩍 넘은 고목 등을 일상으로 마주했던 유년 시절의 영향일 것이다. 이후 그녀는 대학에서 한국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녹아드는 문화로써 실천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집을 대하는 태도다. 그녀는 집을 대할 때 미래완료 시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간다. 장보현 작가도 20대 후반 복합 문화 레지던시에 거주하며 불시에 방을 옮겨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집 안에 소유하는 것을 최소화해 정서적 동요가 심했던 자신을 다스리는 미니멀라이프로 승화시켰다. 이후 원룸 생활을 하면서도 1인 가구에 최적화된 공간을 만족스럽게 향유했다. 삶의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옮겨온 한옥에서도 오래 지낼 계획은 없다. “삶의 단계를 충직하게 차근차근 밟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어느 순간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는 거죠.”

주변의 권유로 한옥으로 이사하기를 결심했다고요.
(장보현,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작가) 당시 알고 지내던 인생 멘토가 있었어요. 그분 또한 아파트에서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도시 생활자였습니다. 그러다 아이의 건강 문제로 인왕산 아래 계곡과 숲이 우거진 빌라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이후, 그분은 쓰러지기 직전의 주택으로 터전을 옮겨 손수 고쳐나갔고 결국 서울에서 가장 멋진 집으로 만드셨죠. 그분의 삶이 확장되는 일련의 과정은 남편과 저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어요. 당시 저의 남편은 때마침 나온 빈 한옥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그분은 남편에게 망설이지 말라며 질책하더라고요. 자신은 한옥에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면서요.

 

모든 게 갖춰진 새 집보다 하나씩 바꾸고 고칠 수 있는 집에 사는 것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집에서는 언제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어 하잖아요. 처음에는 주어진 공간을 그대로 활용해 가구 배치를 달리한다거나 조명을 바꿔 단다거나 소품을 놓는 정도로 시작하게 될 거예요. 그러다 공간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고, 나아가 마당이나 정원, 주변 환경까지 영역이 확장될 거예요. 그렇게 스스로의 세계를 넓히다 보면 어느덧 한 뼘 성장한 또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것이죠. 저는 공간이 인간의 삶의 행태를 규정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환경과 여건이 주어진다면 저희의 다음 목표는 직접 집을 짓고 사는 거예요.

 

익선동, 서촌 등 한옥을 그대로 활용한 장소가 어느 때보다 인기를 얻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한옥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한옥의 가장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한 가지씩 꼽자면요?
좋은 점은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돼준다는 점입니다. 여름이 오면 땀을 흘리고, 겨울이 오면 살결이 건조해지고 트기 시작해요.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계절을 감각하죠. 계절과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서두르지 않게 돼요. 계절이 순환하는 원리를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요. 나쁜 점은 그 자연스러움을 방어막 없이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마철에 지붕 배수로를 조금만 방치해도 비가 새고, 한겨울에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위에 노출되죠. 건축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말이에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집에서는 언제든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보통 현대적 공간인 아파트나 빌라에 거주하는 이들이 한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한옥은 돌과 흙, 나무로 지은 집입니다. 같은 소재로 만든 오브제를 곁에 두는 것만으로 한옥의 미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무 소반이라든지 흙으로 빚은 도자기를 활용할 수 있겠네요. 또한 한옥은 근본적으로 좌식 생활에 최적화된 공간입니다. 한지를 켜켜이 깔고 콩기름을 발라 바닥재를 완성했죠. 대청에는 나무를 깔고요. 이러한 바닥재를 현대식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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