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의 변신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중고 거래의 변신
당근마켓, 번개장터, 뉴뉴

Text | Dami Yoo
Photos | Netflix, Display Copy, Newnew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급격히 늘어난 것이 있다. 바로 중고 거래. 누군가가 정리하고 누군가는 물건을 산다.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늘었고, 경제가 위축되면서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또한 늘었다. 소비 환경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옮겨졌다. 중고 거래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걸 보스>는 1984년생 소피아 아모루소Sophia Amoruso의 일화를 내용으로 제작한 드라마다. 주인공이 헌옷 가게에서 오래된 샤넬 재킷을 8달러에 구입하고 이베이에 1000달러에 되팔며 스토리가 시작된다. 아모루소는 중고 제품을 되팔며 그 특유의 감각을 더해 온라인 쇼핑몰 나스티 갈Nasty Gal을 창업한다. 그리고 5년 만에 3000억대 자산가로 성장해 자수성가한 부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온·오프라인으로 발행하는 잡지 <디스플레이 카피Display Copy>도 주목할 만하다. 팔로마 엘세서Paloma Elsesser가 모델로 등장하고 카트리나 제브Katerina Jebb, 마크 보스윅Mark Borthwick 같은 유명 포토그래퍼가 참여하는 이 잡지는 일반 패션 잡지와는 다르다. 바로 중고 아이템으로 스타일링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 신제품은 소개하지 않는다. 최근 이렇게 중고 거래를 기반으로 한 매력적인 현상과 콘텐츠가 생겨나고 있다.

당근마켓은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인 중고 거래 플랫폼이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도 플랫폼 성장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당근마켓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1000만 명 이상의 월 활성 사용자를 확보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정도 규모는 국내의 경우 카카오톡, 배달의민족, 쿠팡 정도다. 이 점에서 10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중고 거래가 생활에 얼마나 밀착되었는지 가늠하게 하는 지표다. 당근마켓의 전신은 2015년 론칭한 판교장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IT 기업 임직원들이 물건을 사고팔던 소규모 커뮤니티였다.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발전해 지역 커뮤니티로 영역을 넓혔고,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플랫폼으로 우뚝 섰다.

당근마켓의 특징은 지역을 기반으로 물건을 거래하고 동네 커뮤니티 활성화를 모색하는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한 데 있다.

동네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대면 거래가 많고, 자연스럽게 매너가 종용되면서 훈훈한 에피소드도 왕왕 벌어진다. 또한 매월 1일 한 달간의 거래 실적과 함께 중고 거래 활동이 불러오는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공개한다. 사용자의 행동과 습관에 작은 명예를 안겨주는 것이다. 괜히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벌어지는 환경적 효과도 주목할 만하지만, 안 쓰는 물건을 나누고 필요한 물건을 경제적으로 구입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 이웃 간의 교류로 생겨나는 작은 에피소드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런가 하면 트위터 계정 중 ‘당근마켓 기상천외’도 볼만하다. 말 그대로 기상천외한 당근마켓 게시 글을 모은 계정이다.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또 다른 콘텐츠로 진화하고 소비되는 밈 현상이다. 쉽게 말해 트렌드라는 얘기다. 애플리케이션 카테고리를 쇼핑에서 ‘소셜’로 정비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중고 거래 문화가 오늘날 주요한 삶의 방식이 됐다는 것이다.

당근마켓의 뒤를 잇는 번개장터는 ‘취향’이라는 키워드를 어필하기 시작하고 나서 최근 신선한 움직임을 보였다. 2013년 티셔츠를 팔아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작가 송호준의 ‘요트 프로젝트’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 송호준의 상점을 열어 낚시, 캠핑용품을 비롯해 인공위성 제작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는 컴퓨터, 작품의 일환으로 만든 악기, 각종 알 수 없는 부품과 도구 등 그의 집요한 ‘덕력’으로 모은 물건을 팔아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중고 거래 생태계에서 콘셉트를 살린 틈새시장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도 이 신드롬이 낳은 결과다.

“미개봉한 새 제품만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물건이더라도 의미에 따라서 ‘새로운’ 물건일 수 있잖아요.”
- 최서연, 뉴뉴 이사 -

론칭을 앞둔 중고 거래 플랫폼 ‘뉴뉴’가 특히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트 커머스 플랫폼 카바라이프가 만든 브랜드로 패션, 디자인, 문화·예술 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셀러로 나선다는 점이 특별하다. 남다른 취향과 안목을 가진 이들이 내놓을 물건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호기심과 함께 욕망이 앞선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물건’에 대해 의문과 회의감이 들었어요. 미개봉한 새 제품만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물건이더라도 의미에 따라서 ‘새로운’ 물건일 수 있잖아요.” ‘뉴뉴’라는 이름에 대한 최서연 이사의 설명이다.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같은 방대한 곳에서 남의 물건을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도 즐겁지만, 셀러에 대한 구분이 확실한 뉴뉴에서는 물건들의 맥락을 즐기고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취향이라 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이야기와 콘텐츠를 담는 플랫폼 말이다.

 

중고 거래가 새로운 태도가 되면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정리할 것을 찾고 나눌 것을 찾느라 집 안 곳곳을 살펴보게 된다. 비우는 일에 동력이 붙으면 새로 물건을 들이는 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해,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나의 취향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해, 확장하고 벌어지는 플랫폼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소비 태도인 중고 거래는 삶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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