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자를 위한 질문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도시 생활자를 위한 질문
젊은 건축가가 발견한 좋은 곳들의 비밀

Text | Bora Kang
Photos provided by whale books

건물이 도대체 왜 그곳에 있는지, 무슨 목적과 의미를 가졌으며 누가 어떤 기준으로 디자인한 건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건물 안에서 살면서 건물에 대해 모른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 아닐까?

집, 직장, 식당, 상점 등을 거쳐 다시 집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일 건물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대개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건물을 인식하지 못한다. 상점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보며 감탄하거나, 입주 비용이 얼마인지를 셈하며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것이다.

 

최경철의 <모든 공간에는 비밀이 있다>(웨일북)는 도시 건축물이 품은 나름의 이유와 비밀을 24개의 질문으로 풀어낸다. 건축가인 저자는 개인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도시와 건물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공공 건축은 무엇을 배려해야 할까?” “우리나라에는 왜 오래가는 건축물이 없을까?”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낯설지만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일상적 경험을 토대로 질문을 만들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축물을 제시한다.

주유소 극장 비포, ⓒThe Cineroleum, Assemble
주유소 극장 애프터, ⓒThe Cineroleum, Assemble
“도시에 빈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도시에는 반드시 빈틈이 필요하다”는 말로 읽히기도 한다. <빌리브>에서 인터뷰한 홍인숙 작가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겼다. “저희 동네는 고도 제한 때문에 하늘이 많이 보여요. 여백이 넓으니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잘 보이고 사색할 여유가 생기죠.” 도시의 빈 공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여유를 갖게 한다는 말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도시의 여백, 도시의 빈틈은 다름 아닌 공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일상적인’ 공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도시 곳곳에 있는 놀이터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위한 장소이고, 매일 저녁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학교 운동장 역시 저녁에만 개방하는 한시적인 공원 역할에 그친다.

 

그렇다면 거의 모든 땅에 건물이 들어선 도시에 어떻게 빈틈을 만들어야 할까? 저자는 2015년 터너 프라이즈 ‘올해의 예술가’에 선정된 어셈블Assemble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어셈블은 수요 감소로 인해 문을 닫은 주유소가 늘어나는 영국의 사회 문제에 집중했다. 3500개소가 넘는 폐주유소는 대부분 흉물로 변해 마을이 슬럼화되었다. 어셈블은 주유소가 마을의 빈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남은 구조체를 활용해 최소한의 작업만으로 공간을 변모시켰다. 기존의 지붕 밑으로 계단식 의자를 놓아 좌석을 만들고 천막으로 가변형 외벽을 세워 영화관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폐주유소는 무서운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 영화관이 되었다.”

토솔-바질 육상 트랙, ⓒTossols-Basil Athletics Track, RCR
라 리라 극장 오픈 스페이스, ⓒPublic Space Teatro La Lira, RCR
“건축가는 예술가일까, 디자이너일까?”

건축가에게는 분명 예술가의 면모가 있다. 자하 하디드나 프랭크 게리의 비정형 건축물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건축물로 옮겨질 때 그들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공동의 이익과 만족을 따져야 하는 위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도시 재생이 화두인 시기에는 지역과 주민이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 질문은 “내일이라도 당장 만날 수 있는 우리의 건축가는 누구인가?”라는 좀 더 현실적인 질문으로 옮겨간다. “우리의 눈은 유명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의 환경과 인문에 대해 경험과 지식이 많은, 그래서 온전한 지혜가 솟아나는 그런 ‘동네 건축가’를 찾아야 한다.”

 

그는 동네 건축가의 모범으로 2017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스페인의 RCR을 지목한다. RCR은 라파엘 아란다Rafael Aranda, 카르메 피헴Carme Pigem, 라몬 빌랄타Ramon Vilalta가 결성한 건축 그룹으로, 세 사람 모두 건축을 공부한 뒤 고향인 올로트로 돌아가 함께 건축 사무소를 차렸다. 그들 건축의 화두는 지역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남기는 것이었다. 일례로 RCR의 ‘토솔-바질 육상 트랙Tossol-Basil Athletics Track’은 공원에 있는 떡갈나무 군집을 남겨둔 채 트랙을 설계한 작품이다. 기존 공원의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대지에 건물을 짓는 방식은 환경에 대한 존중과 조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극장 건물이 화재로 철거되고 공터로 남은 곳을 공공의 공간으로 만든 ‘라 리라 극장 오픈 스페이스Public Space Teatro La Lira’ 역시 그들의 건축 언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은 궁전, ⓒCabanon de Le Corbusier, Le Corbusier
“개인에게는 어떤 방이 필요할까?”

저자는 ‘내 방’이라는 주제와 가장 부합할 만한 건축으로 르코르뷔지에가 말년을 보낸 4평짜리 오두막집을 꼽는다. 르코르뷔지에는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적절한 공간 규모는 4평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살아생전 ‘작은 궁전(Cabanon de Le Corbusier)’이라 불렀던 이 건물에는 수십 년간 건축과 도시를 설계한 건축가의 생각이 밀도 높게 펼쳐져 있다.

 

지중해가 보이는 언덕의 작은 통나무집에 들어서면 정면에 옷걸이가 설치되어 있다. 다양한 높이로 배치된 옷걸이는 공간에 들어온 사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방에 들어서면 1인용 침대가 보이고 반대편에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평행사변형 책상이 놓여 있다. 공간을 평범하게 구획하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문은 미닫이이며 화장실 문은 커튼을 활용해 문을 여닫는 행위로 인한 공간의 손실을 최소화했다. 가구의 만듦새와 옷걸이, 문고리, 커튼 등 공간을 채우는 요소 하나하나에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다. 르코르뷔지에의 4평짜리 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방과 집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해준다.

초쿠라 플라자, ⓒChokkura Plaza, Kuma Kengo
서니 힐스 재팬, ⓒSunny Hills Japan, Kuma Kengo
“우리나라에는 왜 오래가는 건축물이 없을까?”

유럽 중세도시에는 1000년을 훌쩍 넘어서는 건축물이 흔한데 왜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많지 않을까? 저자는 ‘재료의 지역성’에서 원인을 찾는다. 동서양 건축의 차이는 기술이나 조각가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재료가 지닌 고유의 특성에서 생겨났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우리의 나무는 곧고 바른 것보다 구부러진 경우가 많고, 석재 또한 유럽과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한 돌은 조각과 세공을 하는 데 유리한 대리석인데 우리가 주로 사용한 화강암은 강도가 너무 높아 세공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목재를 견고하게 짜 맞추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유럽은 석재를 기반으로 단단하면서 화려한 건축으로 발전했다. 지역적 특수성이 건축물의 지속성을 좌우한 것이다. 1000년 된 사찰이 하루아침에 화마에 휩싸여 흔적이 사라진 것처럼 나무는 지난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저자는 돌과 나무의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건축가로 구마 겐고를 꼽는다.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며 콘크리트 시대의 건축 너머에 있는 건축가로 여겨지는 그는 돌과 나무라고 해서 널찍한 판재로 이루어진 것만을 사용하지 않고, 구축 방식에 차이를 둔다. 작은 단위의 재료와 공간을 모으고 덧대어 반복적인 패턴을 만드는 식이다. 돌을 사용한 초쿠라 플라자Chokkura Plaza와 나무를 활용한 서니 힐스 재팬Sunny Hills Japan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재료의 구축 방식을 알 수 있다. 특히 초쿠라 플라자는 그 지역에서 나는 대곡석이라는 돌을 다이아몬드형의 틈을 두고 엇갈려 쌓음으로써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아닐까? 저자는 걸음을 조금 늦추고 자신을 둘러싼 거리를 찬찬히 둘러볼 것을 권한다. 한 개인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우리가 공공 건축과 건축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자문하며 세상의 수많은 건축물 뒤에 숨겨진 흥미로운 비밀을 발견해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곧 우리의 건축과 우리의 도시, 나아가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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