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일상의 베이스캠프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집은 일상의 베이스캠프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

Text | Myungyeon Kim
Photography | Hyoungjong Lee

나에게 집은 베이스캠프다. 나와 남편의 ‘여행 중심 일상’을 위한 본부이며, 우리 두 사람 인생의 거점이다.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곳에서 안전하고 안락하게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1년의 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반은 계절이 반대인 다른 어떤 나라에서 사는 것을 꿈꿨다. 추운 게 싫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는 환경을 한 번씩 바꿔주어 여기서든 거기서든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일은 어떻게 하고, 집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누구처럼 몇 년씩 세계를 돌며 살 만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곳에서 안전하고 안락하게 색다른 기분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2017년에 ‘한 달 살아보기’를 고민하던 중, 35일 동안 호주 로드트립을 떠났다. 캠퍼밴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달리며 시골과 도시를 오갔고, 오지에서 자발적 고립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때 맛본 ‘밴 라이프 van life’는 아주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듬해 또다시 떠났다. 기간도 50일로 조금 늘렸다. 이 여행을 마무리하며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즐기며 살아보기에는 50일이 딱 적당한 기간이라고. 더 길어지면, 몸도 힘들어지고 이동하며 사는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고.

주방이 달린 작은 캠퍼밴을 타고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이동하며 생활하는 것이 편하진 않았다. 샤워실과 화장실도 주로 캠핑장 공용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편리함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가장 큰 장점은 매일매일을 기대하며 새로운 기분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캠핑이 허락된 곳이라면 어디든 차를 세우고 야외 테이블을 펴놓는 순간 집이 완성된다. 길고 험난한 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항상 이렇게 테이블을 펼쳐놓고 앉아 맥주 한 병부터 마셨는데, 그 순간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 곳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일상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맛이다.

 

어떤 날은 사람 한 명 없는 넓은 바다를 앞마당 삼아 자리 잡았고, 휴대전화 신호조차 감지되지 않는 깊은 산속과 오지에서 머문 날도 많았다. 당연히 이웃들도 매일 바뀌었다. 호주 캠핑장에는 캠핑 카라반을 타고 다니며 생활하는 은퇴한 부부들이 많은데, 그들이 주로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들은 로드트립 정보부터 호주 역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번은 유난히 반짝거리는 카라반의 노부부와 이야기하다 집은 어딘지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은 “집이 없어요. 그냥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거예요”라고 답해주었다. 어제까진 어디에서 지냈고, 오늘부터 2주간은 우리가 만났던 캠핑장에 있으며, 이후로 한 달간은 또 어디서 지낼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건에 맞춰 내가 살 곳을 정해 정착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을 찾아내어 내가 살고 싶은 만큼만 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번 실행해보고 싶었다. 우리의 보금자리를 베이스캠프로 노마딕한 일상을 병행해보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열망과 안락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본능 사이를 적당히 오가며 사는 것이다. 단, 너무 길지 않게.

“노마딕한 일상의 베이스캠프로, 집은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집이 베이스캠프처럼 되려면, 가능한 한 모든 것이 집 안에서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을 집안으로 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직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재택근무가 가능한 형태로 일을 정리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지하의 멀티룸과 연결되어 있는 1층 빌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집 앞에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진 않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이끌렸다. 다행히 잠들기 직전 주문한 빵과 커피와 치약이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도착해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그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더불어 집 안에 뭔가를 쌓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 5년 전부터 마음은 먹었지만 실천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수납공간에 한 끼 해먹을 식자재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냉장고로 생활하며 무엇이든 원 소스 멀티 유즈 했던 밴 라이프 경험을 통해 생활 태도가 바뀌었다.

노마딕한 일상의 베이스캠프로, 집은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물리적 무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짐은 물론 마음의 짐도 줄여 생활의 부담을 덜어내고 언제든 마음먹었을 때 떠나기 좋게 생활하려 노력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를 우리의 생활방식과 취향 따라 가꾸기 위해서도 집안에 여지를 남겨두려고 한다. 결혼생활 9년 동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바이다. 어차피 지금 내가 사는 집이 평생 함께 할 존재도 아니고 보물창고일 필요도 없기에 적당히 간직하고 적당히 보관하며 적당히 살만한 공간이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어디에 무엇이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기억하고 찾아내 바로 사용하게끔 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달이 대가를 치르는 각종 렌털에서도 해방되려고 필요할 때마다 구입하고, 직접 관리하는 생활에도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이제 곧 우리는 또 짐을 쌀 것이다. 이번에는 여건상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 국내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집을 진짜 베이스캠프 삼아 이곳저곳 다닐 계획이다. 잦은 미팅이 필요하거나 어떤 고정된 장소에서 일해야 할 때, 집안 모임과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당분간 집과 타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살아보려 한다. 그동안에도 집은 계속 이 자리를 지키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항상 준비된 상태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의 호주 로드 트립>

① 집은 일상의 베이스캠프 (현재 글)

② 가장 완벽한 집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의 아이슬란드 로드 트립>

① 아이슬란드라는 집에 초대된 손님

② 풍경 수집을 위해 떠난 아이슬란드 로드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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