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이 된 창작자의 공간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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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이 된 창작자의 공간
임나리 <포스트 서울> 공동 발행인

Text | Nari Lim
Photos provided by postseoul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일한 잡지사에서 나와 파트너와 함께 뉴프레스라는 회사를 차리고 온·오프라인 미디어 <포스트 서울>을 창간했다.

<포스트 서울>(www.postseoul.com)이 2016년 웹진으로 출발해 2017년 실제 책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스트 서울>의 방향성만은 분명했다. 우리는 기존 유명인의 살림살이나 인테리어 소개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을 꼭 닮은 공간, 그들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자 했다. 잡지에 나오기 위해 섬세하게 연출한 집의 표면이 아닌 그들 삶의 본래 모습을 공간 구석구석에서 발견하기를 원했다. 비록 그 구석진 자리가 흐트러진 모습이더라도 말이다. <포스트 서울>을 통해 사진가, 에디터,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의 공간을 운이 좋게도 밀착해 살펴볼 수 있었다. 자신의 작업물과 수집물로 채워진 창작자의 공간은 어찌 보면 개인의 역사와 취향이 집약된 작은 뮤지엄에 가까워 보였다.

 

젊은 건축 설계 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의 공간에는 산책 중 주워온 대형 폐기물 신고필증이 붙어 있는 물건이 가득했다. 이들은 이를 ‘거지 근성’이라고 표현했지만, 푸하하하프렌즈가 거리에서 발견한 통찰력, 그리고 이를 현실 공간에서 풀어내는 재치는 그 자체로 푸하하하프렌즈다운 구석이 있었다. 가구 디자이너 이광호는 디자이너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건네주기도 했다. “디자이너는 여러 직업군 중에 하나예요. 사실 저는 예술적으로 살지 않거든요.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단순하고 중요한 사실에 집중해요. 직업이란 삶을 포장하는 수단이 되면 안 돼요.” 삶의 태도나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유행에 휩쓸려 산 물건으로 둘러싸인 집은 카탈로그 속 공간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기존 유명인의 살림살이나 인테리어 소개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을 꼭 닮은 공간, 그들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자 했다.”

<포스트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공간은 나를 포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이 일하고 생활하는 배경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다. 진짜와 가짜는 정말 쉽게 구분된다. 30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두 번째 선택은 인생 최대의 쇼핑, 바로 집을 산 것이다. 우리 부부는 단독주택 전세살이를 통해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우리 삶에 더 적합한 주거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강북 지역의 주택 밀집 지역을 몇 년이나 들쑤시고 다니다 우연히 지금 집을 발견했다.

 

서대문체육문화회관에서 가족 모두 수영을 한 한가로운 여름 주말이었다. 백련산 자락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1970년대 후반 조성된 홍은동 주택가가 보였다. 그렇게 우리에게 온 행운이 바로 1981년 지어진 붉은 벽돌 이층집이다. 집과 사람에게도 인연이란 게 있는 법이다. 인연에서 제일 중한 건 타이밍이고. 우리는 바로 그다음 날 계약했다. 나와 동년배인 이 집의 주소에는 ‘모래내길’이 들어간다. 앞에는 홍제천이, 뒤에는 백련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다. 높은 건물이 주변에 없어 사계절 내내 볕이 잘 드는데, 남편은 농담처럼 ‘묏자리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말한다. ‘모래내’라는 지명과 오래된 집 특유의 구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 집에 ‘모래내 산장’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우리는 쓰레기봉투를 골목 어귀에 내놓고, 낙엽을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중략) 어느 순간 소포처럼 계절이 도착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이 시간의 성실함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가 집을 구할 때 어렴풋하게 공유한 조건이 있다. 마당이 있고 볕이 잘 드는 헌 집, 아이 학교와 수영장, 산책로가 가까운 집, 남편 출퇴근이 대중교통으로 가능하고 나의 주 업무 지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집, 아이에게 자극보다는 심심함을 줄 수 있는 집. 모래내 산장은 그런 우리의 조건에 얼추 맞았다. 우리 부부가 유별나고 다른 삶을 원해서 아파트 대신 오래된 주택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여행이나 캠핑같이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활동보다 실내 생활과 산책 같은 조용한 활동을 더 선호했을 뿐이다. 우리는 쓰레기봉투를 골목 어귀에 내놓고,낙엽을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을 때는 방치하고, 가꿀 수 있을 때는 약간의 성의를 보였다. 모래내 산장에서는 계절이 꼬박꼬박 온다. 어느 순간 소포처럼 계절이 도착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이 시간의 성실함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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