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기 없이 사는 법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서울에서 전기 없이 사는 법
비전화공방서울

Text | Kakyung Baek
Photos provided by NoplugSeoul

전기가 끊긴다면 우리는 며칠 동안 살아갈 수 있을까? 대규모 정전 재난을 일컫는 '블랙아웃'을 상상만 해도 도시인의 무능력이 꽤나 불거진다. 최첨단 시대로 갈수록 먹을 것을 기르고, 추위를 피할 거처를 짓는 인간의 자활 능력은 점점 퇴보한다.

서울에서 전기 없이 사는 ‘노 플러그no plug’를 자처하는 작은 공동체가 있다.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제품을 연구하고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비전화공방서울이다. 한자어로 아닐 비非를 쓰는 이곳은 전기와 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고민하고, 결과적으로는 도시의 인프라 밖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한다. 이곳의 모태는 일본의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착한 비즈니스로 행복하게 사는 방식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한 일본의 비전화공방이다. 2018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후지무라와 업무 협약을 맺고 서울혁신파크에 비전화공방서울을 세웠다.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도 비전화공방서울의 행보를 소개했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을 벌이고 있다.

 

지하철 3·6호선 불광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전화공방서울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전화카페다. 현대식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 사이에서 아날로그하다 못해 비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외관이 멀리서부터 자태를 뽐낸다. 비전화카페는 후지무라의 제자이자 비전화공방을 일구어가는 서울의 비전화 제작자들이 스트로베일 공법으로 직접 지었다. 볏짚과 흙, 왕겨를 단열재 등 건축 재료로 사용하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늑한 카페 내부에는 비전화공방서울의 다양한 기술이 녹아 있다.

"비전화를 실천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먼저 비전화카페에 방문해보기를 추천해요.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야자 껍질과 활성탄으로 정수한 물, 비전화 로스팅기를 통해 갓 볶아낸 신선한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비전화 기술을 쉽게 체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비전화 제작자 1기로 비전화카페를 짓는 데 동참하고 현재는 비전화공방서울 단장인 이민영의 말이다. 그녀는 오일로 불을 밝히는 멋진 오일 램프, 카페 마당 한쪽에 놓인 정감 가는 화덕, 작은 커피 테이블과 스툴, 아이스박스로 개발한 귀여운 모양의 비전화 냉장고 등을 소개하며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편리하고 빠른 것만 추구하는 도구라면 절대로 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제 공사장을 지날 때면 작업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공구만 봐도 대략 어떤 과정인지 알 수 있다는 이민영 단장에게 비전화공방서울에 몸담게 된 계기를 물었다.

 

“저는 비전화 제작자로 활동하기 전부터 후지무라 선생님의 사례를 알고 있었어요. 사실 일하면서 그런 고민 많이 하잖아요. ‘이 일이 누구를 위한 일일까? 이 일로 밥벌이할 수는 있어도 과연 내가 살아가는 능력을 기르는 일일까?’라는 고민요. 저도 사무직에 종사하며 모니터만 보며 일했는데 어느 순간 이 일 말고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비전화공방서울을 찾게 됐죠.” 그녀가 비전화 제작자로 공부하며 얻은 기술이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진공청소기가 아닌 빗자루로 청소하는 시간을 향유하게 되었고, 망가진 물건을 무작정 A/S센터에 맡기기보다 한 번 들춰보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자급자족이라는 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거나 당위적으로 옳다기보다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작은 능력이 생기는 것 자체가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더라고요.”

비전화공방서울에서는 비전화 기술을 일반 시민과 공유할 목적으로 다양한 제작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비전화 정수기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쉽게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개월에 한 번씩 뜨거운 물만 부어주면 반영구적으로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똑똑하고 친환경적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음식물 쓰레기를 2주 만에 퇴비로 만드는 비전화 음식물 처리기 워크숍, 1인 가구용 햇빛 식품 건조기 제작 워크숍, 다양한 비전화 기술을 공유하고 제품의 스토리를 나누는 행사인 ‘손 잇는 날’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심도 있는 비전화 기술을 체득하고 싶다면 1년 동안 12명의 동료와 함께 비전화 건축을 익히고 냉장고, 제습기 등의 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며 이러한 자립력을 바탕으로 농사도 짓고 스몰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비전화 제작자 과정도 있다.

 

이민영 단장에게 앞으로 집의 모양이나 주거 문화가 바뀐다면 어떤 새로운 기능이 생겨날 것인지를 물었다. 그녀는 ‘공백이 있는 집’이라고 운을 뗐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게 집 내부에 가벽을 세우거나 없앨 수 있는,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백이 있는 집이 필요할 거라고 말했다. 비전화공방서울은 공백이 있는 집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스스로 만들기보다 돈으로 사들이기’ 버릇은 중독에 가깝습니다. 지난 50년 동안의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생겨난 습관입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부터는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보려는 욕구가 점점 강해져야 합니다.”(<30만 원으로 한 달 살기>, 후지무라 야스유키 지음, 북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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