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타멘토가 출간한 베를린의 거실 표정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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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타멘토가 출간한 베를린의 거실 표정
도미니크 나보코프 <베를린의 거실>

Text | Kakyung Baek
Photos | Apartamento

당신의 집에 누군가 들어와 거실을 촬영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 대형 TV만을 응시할 수 있도록 배치한 커다란 소파가 게으른 모습으로 나올 게 뻔하다면, 도미니크 나보코프가 1945년 뉴욕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에서 촬영한 작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예술가의 거실에서 영감을 받아보길 바란다, 봄이 오기 전에.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은 집의 얼굴과 같다. 하지만 거실을 떠올리면 가족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소파, 벽에 걸린 대형 TV, 부엌과 연결된 통로처럼 뻔한 이미지만 생각나는 건 왜일까? 한국의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이고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을 포함하면 무려 75%에 이르는데, 이렇게 대량생산된 주거 공간이 한국의 거실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든 건 아닐까? 반면 거실이라는 공간을 역사적으로 오래 가꿔온 서구권에서는 거실이 비교적 개성 강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올린은 이러한 개성 강한 거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거실은 마치 속옷 같다. 항상 다른 사람의 것이 어떨지 궁금해하고, 반대로 당신의 것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늘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가 거실을 속옷에 비유한 것은, 거실이 집을 대표하는 얼굴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을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접대하는 공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동시에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하는 일상적이고 편안한 공간인 거실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삶의 균형에 대해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를 지닌 거실을 지난 30년 동안 다양한 도시를 떠돌며 기록해온 포토그래퍼가 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Dominique Nabokov는 1945년 뉴욕을 시작으로 파리, 베를린까지 작가와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예술 종사자들의 거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했다. 그 결과 각 도시의 이름을 딴 사진집이 한 권씩 나왔고, 가장 최근의 것으로 2014년 베를린에서의 작업을 엮은 <베를린 리빙룸Berlin Living Rooms>이 인테리어 전문 매거진 <아파르타멘토>에서 출간되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1995년 10월 16일에 발행한 <뉴요커> 덕분이었다. 당시 그는 미국 TV 진행자이자 목사인 알 샤프턴, 세계적인 작가 수전 손탁,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 패션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디자이너 마리오 보타 등 12명의 크리에이티브한 뉴요커의 거실을 촬영하여 잡지에 발표했다. 그들은 거대한 주택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사진도 작게 실렸지만, 카메라의 솔직한 렌즈로 들여다본 거실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뉴요커> 독자들은 그녀의 사진에 열광했고 이후 더 많은 거실을 촬영해달라며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일이 쇄도했다.

책 서문에는 “이것은 인테리어 장식을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녀는 어느 집의 거실을 촬영하러 갈 때 그 흔한 조명 하나 없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필름인 폴라로이드 컬러그래프 타입 691 두어 박스만 챙겨 간다.

이를 계기로 총 83개의 거실을 기록한 <뉴욕 리빙룸>이 탄생했다. 책 서문에는 “이것은 인테리어 장식을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녀는 어느 집의 거실을 촬영하러 갈 때 그 흔한 조명 하나 없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필름인 폴라로이드 컬러그래프 타입Polaroid Colorgraph type 691 두어 박스만 챙겨 간다. “저는 이 필름의 톤이 좋아요. 모든 것이 명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인쇄된 사진에는 녹청색이 드리워져 있죠. 그 필름의 불완전성은 거실이 보여주는 삶과 시대의 현실 사이에 시적 거리를 만들어주거든요.”

 

심지어 인테리어 전문 포토그래퍼라면 으레 그렇듯이 가구를 보기 좋게 재배치하거나 특별한 장식을 더하는 일도 없었다. 그녀가 포착한 거실은 아름다운 모델을 찍은 작품 같다기보다 상상하기도 벅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초상화 같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파리에서도 예술가들의 거실을 기록하게 된 계기 역시 폴라로이드 필름이었다. 뉴욕에서 유수의 전시를 마치고 파리에 갔던 도미니크가 우연히 카메라 숍에서 잊고 있던 그 필름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역시 거실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담백하게 담는 방식으로 파리의 거실 92개를 기록하여 2002년 <파리 리빙룸>을 발행했다.

 

최근 <아파르타멘토>와 함께 펴낸 <베를린 리빙룸>의 거실 모습은 이전에 찍은 뉴욕과 파리의 거실 모습과 차이점이 있다. 도미니크는 1960대와 1970년대를 베를린에서 보냈지만 베를린의 거실을 찍는 프로젝트를 단행한 것은 2014년 한 아카데미 참석차 베를린에 들른 몇 달간이었다. 그 마법 같은 필름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아서 그녀는 흑백으로 거실을 촬영하기로 결심했다. 이와 관련하여 건축 전문 잡지 <아키텍처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도미니크는 이렇게 말했다. “1930년대 베를린의 사진과 영화에서 본 표현주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베를린을 흑백사진 같다고 생각해요. 정말 잘 어울리죠. 베를린은 멋진 곳이에요. 큼직한 아파트, 환상적인 박물관,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모든 것이 다 있죠.”

이번 <베를린 리빙룸>에 등장한 거실 중에서 최근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을 설계한 건축가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거실(위 첫 번째)이 눈에 띈다. 높은 천장과 견고하고 튼튼하며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 부드럽게 내려앉는 빛이 인상적이다. 미니멀리즘이 트렌드로 기능하기보다 삶의 한 양식으로 자리한 그의 거실에는 미팅룸을 방불케 하는 긴 테이블과 의자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또한 전체적으로 심플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벽 아래로 전시된 미술 작품들과 거실 한편에 마련된 서재 역시 방금까지 무얼 했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그녀는 촬영을 위해 낯선 이의 거실에 평균 2시간 정도 머문다고 한다. 그 공간을 알기 위해 누군가와 오랫동안 대화하거나 며칠씩 함께 지내는 일 없이, 거실에 처음 방문한 후 그녀의 시선으로 빠르게 거실 분위기를 포착하는 것이다.

“결국 이 거실 사진은 인테리어 장식이나 스타일링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살아가는 방식을 담은 거예요. 저는 그 안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촬영하죠. 만약 해가 져서 거실이 어둡다면 그 공간에 있는 램프를 켤 뿐이에요.”

당신의 집에 누군가 들어가 거실을 촬영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 대형 TV만을 응시할 수 있도록 배치된 커다랗고 게으른 모습의 소파만 나올 것 같다면, 도미니크 나보코프가 마치 도둑처럼 잠입해 찍은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거실을 참고해보기 바란다. 기민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사진 속에서 거실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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