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자가 집을 사랑하는 방식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도시 생활자가 집을 사랑하는 방식
함수린 <삶이 고이는 방, 호수>

Text | Kakyung Baek
Photos | Surin Ham

도심의 복층 오피스텔이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고시텔보다 나을까? 교외의 전원주택 정도는 되어야 하나? 사회가 들이대는 몇 가지 잣대로만 보자면 고시텔에서의 삶이 가장 고단하겠지만, 함수린이 최근 쓴 에세이 <삶이 고이는 방, 호수>를 읽으면 방 크기보다 구겨진 기분을 성실하게 살피고 펴는 태도가 더 중요한 기준임을 깨닫게 된다.

함수린은 독립한 이후 13년 동안 고시텔, 고시원, 원룸텔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부단히 기록했다. 에세이 <삶이 고이는 방, 호수>의 제목에 쓰인 ‘호수’는 고시텔 등에서의 호수戶數를 뜻하는 동시에 작은 공간에 호수湖水처럼 고인 삶을 의미한다. 호수戶數와 호수湖水, 어딘가 묘하게 통할 것만 같은 두 단어의 관계는 책 표지에서 더 명백해진다. 평범한 어느 주택가 사진 아래로 잔잔한 호수 사진이 놓여 있다. 호수에 비친 그림자 덕분에 그 경계가 모호한데 언뜻 보면 물 위에 떠 있는 수중 주택 같기도 하다. 작가 역시 저 집들처럼 어딘가에 부유하고 있겠지만 이 책을 처음 쓴 13년 전보다는 더 잔잔하게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을 테다. 그는 이 책을 쓴 계기에 대해서 “몇 년에 한 번씩 호수를 바꾸며 사는 사람들, 이웃과 누구와도 왕래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방에서만 기거하는 사람들에게 와닿는 지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감사할 것 같다”며 독자와의 공감에 대해 역설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작가가 고시원에 살면서 기록한 에세이와 서울의 여러 곳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쓴 동네 답사기이다. ‘구질구질해서’ 차마 쓰지 못한 내용도 있다던 고시원에서의 기록이 끝나면 새로운 곳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살 궁리를 하는 장이 나온다. 이 책의 구성만 봐도 작가의 생각만큼은 호수처럼 한곳에 고여 있지 않고 강줄기처럼 힘 있게 나아감을 알 수 있다. 집에 대한 미시사는 부엌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어른이 된 지금도 싱크대 밑의 어둡고 빈 구석을 무서워한다. 유년 시절 집 부엌에 바퀴벌레가 많이 살았다. 부엌에 불을 켜고 기다렸다가 잔뜩 긴장하는 습관은 아직도 몸에 배어 있다.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우리 집’에 대한 에피소드는 동네에서 가장 시끄럽고, 창문 틈으로 거친 소리가 흘러나와 창피했던 경험으로 점철된다. 누구에게나 싱크대 밑과 같은 막연한 공포와 집에서 겪은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기억이 존재할 수 있다. 함수린 역시 자전적인 경험을 통해 이른 나이부터 자기만의 방을 꿈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담히 써 내려간다.

 

첫 번째 호수는 스물두 살에 살게 된 창문 없는 고시원 514호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적으로 덜 간절한 사람(건물주)의 편의에 맞게 설계된” 고시원에서의 삶은 햇빛 한 점 없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도 웃풍이 없다며 자조 섞인 긍정을 했던 그였지만 방처럼 자꾸 어두워지는 스스로가 걱정돼 한 달도 안 되어 집을 나오게 되었다. 다음에 그녀가 방을 정하는 기준은 물을 것도 없이 창문이 있느냐였다. 하지만 빛이 잘 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세탁실과 욕실을 세입자들이 함께 쓰는 공동생활에 직면한 것이다. 방금 설거지한 그릇을 훔쳐 가는 사람, 욕실만 사용했다 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 세탁기에 운동화를 돌려 모래를 잔뜩 남기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녀는 타인이 그림자만도 못하다는 마음으로 몸도 마음도 좁은 방에 가둔 채 살았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일상 속에서 그녀를 도시 생활자로 성장시키는 에피소드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적응하려 했지만 원래 서울에 살던 사람처럼 살 수는 없었을 때, 원룸텔에 살지 않는 ‘보통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졌을 때 작가는 우연히 한 갤러리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계피 향이 나는 뱅쇼를 건네받으며 뜨내기 방문객인 자신을 따듯하게 환영해준 사람들을 만난다. 당시의 경험으로 작가는 몸을 누이는 현실의 집도 있지만 ‘나’를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집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은 방에서 구할 수 없는 쾌적함과 감상적인 부분은 카페 상록수와 마포 08번 버스, 산처럼 쌓인 잡지와 책으로 채웠다. 도시 생활자의 집이란 침대가 있는 방만 의미하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도 있다. 작가의 표현처럼 ‘다른 섬’에서 집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것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또 다른 의미의 집이다. 스스로가 구겨지지 않도록 부단히 살피면서 새로운 집으로 떠났던 그녀의 모험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쾌적한 투룸을 구하며 일단락된다. 물론 여기서도 문제는 꿈틀댔다. 관계가 있는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고 공생하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 말이다. 집이 작으면 작은 대로, 더 나은 환경이라도 그 나름대로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도시 생활자라면 이 책의 작가처럼 어떤 형태의 집이든지 그 공간을 열렬히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머무는 방이 아주 작고 누추한 본섬이라면, 집 밖에도 내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다른 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집이란 나를 기르고 내가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삶이라는 활동 명사를 품은 그릇과도 같다.”

두 번째 장은 작가의 후기처럼 마련된 짤막한 답사기다. 작가는 연희동, 후암동, 성산동 등 서울에 있는 동네를 11년 차 1인 가구의 눈으로 꼼꼼히 살폈다. 동네의 풍수지리부터 시작해서 치안, 월세 청년을 위한 동네 커뮤니티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심지어 이 글은 ‘다음 이사는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으니 1인 가구인 독자라면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다.

 

답사기를 끝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 어쩐지 작가와 오래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동시에 못난 집일지라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어렴풋이 배운 것만 같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라는 영국 철학자 조지 에드워드의 말이 있다. 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도 집을 생각하고, 새로운 집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도 결국 집에 존재한다는 사실.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되물을 집에 관한 질문을 <삶이 고이는 방, 호수>를 통해 잔잔하고도 지혜롭게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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