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으로 뛰어든 런던의 여성들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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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으로 뛰어든 런던의 여성들
레이디스 폰드

Text | Nari Park
Photos | Ruth Corney(www.ruthcorney.com)

풀 내음이 피어오르는 연초록빛 수면 위로 여성들이 다이빙하듯 몸을 던진다. ‘첨벙’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지난 100년간 오직 여성에게만 출입을 허한 런던 북부의 레이디스 폰드. 도심에서 수영과 독서, 피크닉, 사색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한 이 비밀 연못이 코로나19 시대에 치유의 장소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보그> 영국판은 지난 8월호에 올해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와일드 수영wild swimming’을 꼽았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콜린 퍼스가 호수에 뛰어들며 자연에서의 수영을 매력적으로 표현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호수, 강, 바다 등 자연에서 즐기는 수영을 가리키는 와일드 수영이 실내풀 이용을 꺼리는 코로나 시대의 대안으로 삼을 만하다는 논조다. 조지 오웰,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대대로 문호와 유명 아티스트가 거주해온 런던 북부의 햄스테드 히스. 이곳에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연못이 있다. 오직 여성만 출입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켄우드 레이디스 폰드Kenwood Ladies’ Pond’는 도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자연을 누리는 작은 일탈을 허한다.

1925년 문을 연 이래 숲과 인간이 공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서사를 품은 곳으로, 그 역사가 자그마치 100여 년에 이른다. 20세기 중반에는 런던 여성들이 강가에 초를 띄운 채 한밤의 수영을 즐겼고, 세계적인 배우 캐서린 헵번이 이곳에서 차와 비스킷을 즐긴 것은 유명한 일화로 회자된다. 날씨가 흐려도, 우박이 내려도, 심지어 한겨울 폭설에도 정기적으로 호수를 찾아 수영을 즐기는 런던의 여성은 1년 평균 약 100명. 켄우드 레이디스 폰드 협회Kenwood Ladies’ Pond Association에 따르면 “물 온도가 12℃ 이하로 떨어지는 9월 중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호수를 찾아 수영하는 이들이 150명 정도 된다”고 소개한다. 1976년부터는 상반신을 탈의하고 선베딩을 즐기는 것이 허락된 이곳은 영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에서 호기심과 환상을 품고 몰려드는 여성들로 일 년 내내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레이디스 폰드는 도심에서 완벽하게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잔디에 배를 대고 누우면 새들의 지저귐, 용감한 여성들이 수영장에 뛰어들며 내는 고함조차 노래처럼 들린다.”
- 케리 맥더모트Kerry McDermott, <보그> 영국판 에디터 -

뉴욕 맨해튼의 호수를 갖춘 공원들은 물론, 1만 개의 호수를 품은 미네소타주에서는 한적한 다이빙 포인트를 찾아가 홀로 자연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연에서의 수영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함께 와일드 수영을 즐겨온 작가 로저 디킨Roger Deakin은 그의 저서 <워터로그Waterlog>에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천연수는 인간의 자가 회복력을 키워준다. 자연을 유영하는 동안 자신의 감정이나 우울함과 마주하고, 그 끝에서 나는 종종 휘파람을 불며 답을 찾고 있었다.” 더불어 그는 발이 닿지 않는 호수나 강가에서 끊임없이 물 위에 뜨기 위해 두 발을 젓는 동안 뜬다는 것과 생존의 의미, 그 자체의 존엄함을 돌아보며 삶의 고민을 목도했다고 덧붙였다.

레이디스 폰드에서는 가끔 호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을 보기도 한다. 이혼과 가정폭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여성 가운데는 레이디스 폰드를 찾아 위안과 정신 건강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연못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로, 60대 이상 노년층의 이용이 절반에 이른다. 그야말로 시니어층의 안식처이자 삶의 매력적인 커뮤니티 장소로 기능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뉴요커>는 ‘피부를 가꾸고 심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건강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수십 년간 삶의 의식처럼 꾸준히 연못을 찾은 노년 여성들은 한겨울에도 얼어붙은 연못 표면에 구멍을 내어 얼음 수영을 즐긴다.

 

실제로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면 도파민 수치가 530%나 증가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캐서린 헵번은 롱아일랜드에서 보낸 80대 시절에 매일같이 연못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했고, 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론은 2013년 G8 정상 회의를 앞두고 새벽녘 북아일랜드 러프 에른Lough Erne의 혹독한 물속에 뛰어든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 3월 전 지구촌을 덮친 팬데믹 현상으로 레이디스 폰드 역시 긴 시간 문을 닫아야 했다. 최근 사전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을 재개한 이 연못은 시스템 오픈 몇 분 만에 각 시간대별 예약이 매진될 만큼 런던 여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토스트>는 말한다. “지금처럼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기 힘든 시기에 자연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이 특별한 경험이 사람의 일상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증명한다. 연못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유영할 수 있고, 각자의 시선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지금 시대에 절대적인 위안이 된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이 최근 사진가 루스 코니Ruth Corney가 출간한 <Kenwood Ladies’ Pond 2000-2020>에 고스란히 담겨 런던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삶을 가꿔온 런더너들의 지난 20년을 기록한 이 사진집을 보고 있노라면 레이디스 폰드는 단순한 야외 수영장을 넘어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 함께 아침 식사를 즐기며 일상을 공유하고, 때로는 함께 영화를 보며 연대해온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고민이 있을 때면 자연과 군중 사이에서 생각을 정리하던 이들의 안식의 공간. 사진 속 여성은 어린 소녀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주변에 언제고 뛰어들 수 있는 이런 연못 하나 있다면 우리 삶이 조금이나마 덜 숨 막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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