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가꿔 기부하는 삶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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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꿔 기부하는 삶
더 브리티시 내셔널 가든 스킴

Text | Nari Park
Photos | The British National Garden Scheme

집에 딸린 정원을 가꿔 일반에 공개한다. 입장권을 구입해 ‘합법적’으로 타인의 정원을 방문한 이들은 티와 스콘을 먹으며 누군가의 취향이 깃든 소박한 자연을 둘러보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정원 입장권, 음식 판매에서 나온 수익금은 사회를 위한 기금으로 환원되며, 이를 통해 가드닝이 일종의 타인을 위한 취미로 치환되는 아름다운 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 배경인 잉글리시의 가든 ‘Great Maytham Hall’.

“코로나19 발생 이후 영국인들이 가드닝에 투자하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147%나 증가했다.” 영국 통계청의 최근 발표는 팬데믹으로 많은 이들이 집을 가꾸고 돌보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중에서도 긴 시간 공들여 식물을 돌보고 조경에 힘을 쏟아야 하는 가드닝은 하루 일과를 보내는 최적의 ‘집안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자신의 집 정원을 가꾸는 데 하루 평균 39분을 할애하는 영국인들에게 가드닝은 개인의 안위나 취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중심에 지난 93년간 활동해온 영국의 유서 깊은 자선단체 더 브리티시 내셔널 가든 스킴The British National Garden Scheme(이하 NGS)이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전역에 자리한 개인 소유의 프라이빗 가든 약 3500곳이 등록되어 있는 이 단체는 정원을 소유한 가드너와 그 정원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방문객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한 세기 가까이 자생해왔다.

Norton Conyers, Yorkshire / photo credit Val Corbett

이 단체의 운영 방식은 이러하다. 한 개인이 특정 기간을 설정해 자신의 정원을 외부에 공개하면 그 기간에 방문을 원하는 이들이 입장권을 구입해 찾는 식이다. 집주인은 이때 직접 구운 스콘과 케이크를 방문객에게 판매하고, 입장권을 포함한 전체 판매 수익을 맥밀런 암 지원 센터(Macmillan Cancer Support), 호스피스 UK Hospice UK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나와 내 가족을 넘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영국인의 성숙한 정원 문화가 빚어낸 아름다운 그림이다.

개인의 사적 공간인 정원을 공개해 입장권 수익을 자선단체에 환원하는 시스템은 영국인의 성숙한 정원 문화가 빚은 결과다.

정원을 소유한 이라면 그 크기나 스타일에 상관없이 누구나 등록 가능하지만, 대개는 그 지역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났거나 독창적인 조경 디자인으로 공공 정원 못지않은 매력을 지닌 곳이 주를 이룬다. 참여 정원 수준이 뛰어난 만큼 이용률 또한 높은데, 정원 산책에 최적인 5~8월에 수요가 집중된다. NGS 홈페이지(ngs.org.uk)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입력하면 근교 ‘오픈 가든’을 검색할 수 있다. 런던이나 코츠월즈 등 특정 지역을 방문하는 경우도 사전에 방문 가능한 프라이빗 가든을 살펴볼 수 있다. 친분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이상 평소 타인의 집과 정원을 방문할 일은 흔치 않은 만큼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Hoopers Farm, part of the Mayfields Garden Group East Sussex / Photo Leigh Clapp

조형미를 뽐내는 조각상, 집주인이 좋아하는 꽃과 식물로 채운 풍경은 그것이 개인 정원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모두를 위한 공공 공원과는 다른 개성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특유의 애프터눈 티 문화를 반영해 집주인이 손수 만들어 내주는 디저트와 차 한잔의 호사는 특별함을 배가시킨다. 각종 허브와 체리토마토, 블루베리 같은 작물이 영글어가는 텃밭, 집의 연장선으로 또 하나의 생활 공간을 디자인한 아이디어를 둘러보는 시간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으로 작용한다. 지난 93년간 가든 입장료와 함께 차와 케이크를 판매해 건강 관련 기관에 기부한 금액이 6000만 파운드(약 1032억)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영국의 대다수 비영리 기관이 직격탄을 맞은 지금, NGS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록다운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NGS 역시 운영을 중단해야 했는데, 이는 100여 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대대적인 봉쇄령 기간에 버추얼 가든 오프닝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그 아카이빙이 실로 방대하고 체계적이라 놀랄 정도다. 영국 전역의 가든 가운데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180곳의 아름다운 가든을 영상에 담은 “Virtual Garden Visits”에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Sarah Chapman, Brindles, Long Crendon, Bucks

정원과 치유라는 상관관계를 담은 병원 내 아름다운 정원을 모은 ‘Health’, 세계 최대의 원예 박람회인 첼시 플라워 쇼 수상 디자이너들이 꾸민 작품 같은 정원들을 담은 ‘Designer’s Gardens’, 이 외에도 코츠월즈, 켄트 등 지역별로 대표적인 프라이빗 가든을 망라한 세부 카테고리가 눈길을 끈다. 그중에서도 ‘VIP Supporters’ 섹션은 코로나19로 영국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진 와중에도 정원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서로 연대하길 바라는 목소리를 담았다. 찰스 윈저 왕세자, ‘영국 베이킹의 여왕’으로 불리는 메리 베리 여사 등이 영상을 통해 응원의 목소리를 더했다.

“하이라이트는 집주인이 직접 정원을 설명하며 가드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그들이 왜 가드닝을 시작했으며 어떻게 공간을 가꿔나갔는지 듣다 보면 내 정원과 삶을 돌아보게 된다.”
- NGS 회원 리뷰 중 -

본격적인 겨울을 맞아 또 다시 팬데믹 대유행을 앞두고 유럽에서 강도 높은 봉쇄령을 내리기 시작한 지금, 자신의 정원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결심한 가드너들의 마음은 하나다. 바이러스의 공포로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것, 그것을 통해 종국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이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기부라는 나눔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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