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이에 숲이 있다는 것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집 가까이에 숲이 있다는 것
싱어송라이터이자 책 <서울의 공원들> 저자 김목인 에세이

Text | 김목인
Photos | 김목인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은 최근 책 <서울의 공원>에 공원의 기억이 담긴 산문을 담았다. 누구보다 공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을 그에게 집 근처에 녹지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그가 지금껏 살아온 집과 아름다운 숲에 대한 풍경을 이야기로 보내왔다. 항상 가까이에 있던 숲은 조금 심란한 날에도 그에게 든든한 위안이 되곤 했다.

집 근처 숲

지금 사는 동네에 온 것은 10년 전이었다. 신혼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은 없고, 좀 더 윗동네(북쪽)로 가보라는 지인들의 말에 아내와 나는 전철을 탔다. 우리는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는 첫 동네부터 가보았고, 첫인상이 꽤 괜찮다는 데 공감했다. 역 근처인데도 집들 사이로 숲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전까지 딱히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걸어서 한강이 15분인 동네에 살았지만, 산책은커녕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가정을 꾸리는 입장이 되어보니 본능적으로 자연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역 앞 부동산 중개업소에 물어보니 집이 한군데 있긴 한데 신혼집으로 적절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역에서 15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집이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조금 낡았지만, 우리가 정해둔 가격에 구할 수 없는 넓이였기 때문이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며 고심하던 우리는 과감하게 마음을 정했다. 처음 본 동네에서, 처음 본 집을 정할 만큼 무모한 시절이었다.

10년 전 처음 보았던 곳의 풍경

그렇게 8년을 살고 떠나온 그 집을 이제 와 생각하면, 오르내리기는 힘들었지만 창밖으로 숲이 보여 꽤 운치가 있었다. 바람이 불거나 눈 오는 날의 숲은 정말 근사했다. 우린 일렁이는 나무가 보이는 창 밑에 곧 태어날 아기의 보금자리를 꾸몄고, 거짓말처럼 몇 년 뒤에는 세 식구가 창으로 스미는 노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는 곧 숲 밑에 있는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붙들고 서서 우리를 흥분하게 했고, 어느새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다른 부모들과 대화하다 어색해질 때면 계절감을 드러내는 뒷산의 나무들을 오래오래 바라보곤 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항상 가까이에 있는 숲은
조금 심란한 날에도 든든한 위안을 주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7살이 될 무렵 우린 새 집을 구해야 했다. 결국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다행히 좀 더 윗동네에서 집 한 곳을 보게 되었다. 역에서는 더 멀었고, 역시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었다. 그러나 마을버스가 있었고, 우리는 낮은 동네와 더 많은 숲이 내려다보이는 전경에 반하고 말았다. 이사를 한 우리는 그 풍경 앞에 식탁을 놓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먼 풍경을 보며 밥을 먹었다. 날이 좋을 때는 셋이 뒷산에 올라 능선을 걸으며 많은 이들이 왜 꾸준히 산에 다니는지 이해하기도 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항상 가까이에 있는 숲은 조금 심란한 날에도 든든한 위안을 주곤 했다.

숲 아래 놀이터

아이는 곧 숲 밑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은 등교할 수가 없었다. 많은 시간을 동네에서 보내야 했던 우리는 어딘가 외출하고 싶으면 언덕의 더 위쪽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곳은 숲이 있어 막다른 곳이 아니었다. 더 한적했고, 덜 위험했다. 1년이 지나자 아이들은 슬슬 놀이터에 다시 모였다. 이웃 대부분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아이들은 다 함께 자라 있었다. 이제 큰 아이들은 놀이터만으로는 만족을 못 하게 되었다. 가끔 숨바꼭질만 하던 숲 초입에 기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아래쪽 놀이터에는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또다시 미끄럼틀을 붙잡고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집에서 본 풍경

동네에 오래 사신 분이 원래 이 근처가 온통 산이었고 우리가 사는 주택가도 계곡이었다고 알려주셨다. 집 근처에 숲이 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숲 근처로 집들이 자리를 잡은 셈이었다. 올봄, 한 차례 비가 내려 벚꽃이 질 즈음 우린 뒷산으로 길게 산책을 나갔다. 산벚꽃이 아직 아름다웠고 숲길에는 온통 조그맣고 동그란 꽃잎이 흩어져 있었다. 코로나19를 피해 멀리 미국에서 왔다는 남매도 그 숲에서 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한참 원반던지기를 하며 놀다가 우리는 천천히 역 쪽으로 내려왔다.

 

큰길이 보일 즈음 아내와 나는 잠시 뒤돌아 숲 쪽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 이 동네 왔을 때 본 풍경이 여기였잖아”라고 중얼거렸다. 우린 우연히 내린 동네에서 10년을 보냈고, 그때의 숲은 변함없이 주택가에 자리해 있었다.

김목인 | 싱어송라이터로 앨범 만드는 일과 책 만드는 일을 함께 해왔다. 최근에는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를 옮기고, 사진집 <서울의 공원들>에 공원의 기억이 담긴 산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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