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으로 지은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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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으로 지은 집
2019 설화문화전 <미시감각: 문양의 집>

Text | Solhee Yoon
Photos provided by Amorepacific, ⓒKyung Roh

그저 박물관 전시대 안 화폭에만 머물 것 같았던 나비, 꽃, 새 그림이 현대 작가의 손을 빌려 우리 앞에 등장했다. 또 다른 그림이 아닌 3차원 공간, 그것도 집 안의 문양으로 살포시 내려앉은 것. 괜한 치장으로 여기기엔 이르다.

이번 전시가 건네는 메시지는 전통 문양의 아름다움을 전하겠다는 의미를 넘어 전통 문양을 통해 우리 일상에서 희미해져가는 어떤 삶의 이야기와 감정, 가치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문양은 어느 이미지의 파편에 머물지 않으며 어엿한 스토리텔러로서 사람에게 말을 거는 역할을 한다.

 

정직한 정육면체 모습을 한 아모레퍼시픽 세계 본사 건물 1층에 경사진 박공지붕의 하얀 집 한 채가 들어섰다. 업무 공간에 불쑥 들어선 집이라니. 분주하게 일하던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 건 당연지사다. 영문도 모른 채 마치 홀린 듯이 얇은 천이 흩날리는 입구를 찾아 걸어 들어가면 마치 잘 차려진 외딴 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통로를 따라 걸으면 리빙룸, 다이닝룸, 베드룸, 파우더룸, 그리고 ‘라이브러리’라고 이름 붙은 전시 공간을 차례로 만나게 되는데 흘낏 보아도 나비와 꽃과 새가 거실 벽지며 식탁이며 이불보며 화병이며 눈길 닿는 곳 어디에나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이제 슬슬 궁금증이 더해질 터. 전통 문양을 소개하는데 왜 집을 바탕으로 삼았을까? 집은 어떤 가치를 담기에 적당한 공간인가? 그러고 보니 그 옛날 늘 곁에 머물던 나비와 꽃문양은 어느새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른 어떤 공간도 아닌 집을 짓자는 의견에는 참여 작가 모두 중지를 모았다. 우리 선조의 삶에 늘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문양이 있었다는 데에서 착안했다. 그 삶을 가장 좁은 공간 단위로 압축해 전달하려면 그 배경은 집이어야 했다.

2019년 10월 18일부터 12월 29일까지 열리는 <미시감각: 문양의 집>은 제목 그대로 ‘문양’을 주인공으로 삼은 ‘집’을 선보이고 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설화문화전에서 전통 문양에 초점을 맞춘 기획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화문화전 측은 참여 작가들에게 나비, 꽃, 새란 소재를 제시했고 작가들은 집을 지어 그 안을 화려하게 수놓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른 어떤 공간도 아닌 집을 짓자는 의견에는 참여 작가 모두 중지를 모았다. 우리 선조의 삶에 늘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문양이 있었다는 데에서 착안했다. 그 삶을 가장 좁은 공간 단위로 압축해 전달하려면 그 배경은 집이어야 했다. 집 안에는 익숙한 이름의 공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신 생활감은 모두 없애고 리빙룸에는 소파, 다이닝룸에는 식탁, 베드룸에는 침대처럼 각 공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가구 하나씩만 단출하게 배치했다. 이제 그 낯선 공백을 채우는 건 문양의 몫이다.

 

김이홍, 박성진, 강주리, 김진진, 백종환, 이다은, 조은애, 최경모 등 참여 작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재해석할 대상을 구체화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호접도10폭 병풍’, ‘화조영모도10폭 병풍’, ‘서화미술회10인 합작도10폭 병풍’ 등의 화폭 속 나비, 꽃, 새가 선택됐다. 옛것이지만 현대적인 아름다움에 견주는 감성을 전달하기 위해 펜화로 번안을 시도했다. 재해석된 전통 문양은 건축, 인테리어, 가구, 패브릭, 패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결과물로 전시장 구석구석을 채웠다.

관객은 발길을 옮기며 자연스레 시선이 닿는 곳곳에서 자신의 집과 ‘문양의 집’을 번갈아 생각해보게 된다. 휴식을 취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단장을 하는 방 안에서의 생활과 전시장에서 만난 이 낯선 디테일의 조화. 생각이 교차하고 시선이 멈추길 여러 번. 이는 곧 관객과 작고 섬세한 문양의 소리 없는 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양을 좇는 시선에는 그 기원부터 현대적으로 재탄생되는 제작 과정, 공간과의 관계, 쓰임새 등의 이야기가 뒤따른다. 디테일을 파고드는 눈길 속에 이야깃거리의 풍요로움이 있음을 깨닫는 건 시간문제다. 전통의 현대화가 지닌 힘은 몇백 년 전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을 단숨에 훑게 만든다.

 

사실 어쩌면 낯선 자극이겠다. 북유럽풍,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장식을 새하얗게 맞춤하는 모던 화이트풍 인테리어가 아직도 소셜 미디어상에서 유행하는 마당에 이처럼 저마다 다른 색깔을 보이는 패턴과 입체적인 디테일이라니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미끈하게 표백되고 말쑥하게 정리된 표면에 시선이 머물 데가 없다. 눈길이 그대로 미끄러져버리기 일쑤다. 그렇기에 공간 곳곳에 새겨진 디테일이 더없이 중요해진다.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통로이자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가 묻어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그런 측면에서 <미시감각: 문양의 집>은 바깥에서 보면 희고 투명한 모습이 누군가의 집처럼 여겨지지만, 그 속에서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며 관객에게 ‘우리 생활 속의 문양의 가치’를 가까이서 더듬어보라고 손짓한다. 기획자 박성진은 이렇게 말한다.

“전시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면 이전과는 다른 상상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거창하게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든 걸 바꾸지 않아도 멋스러운 문양의 패브릭으로 한 번쯤 변화를 시도해볼 수도 있죠. 문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러면서 전통 문양의 현대적인 쓰임새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우주를 본다”라고 말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나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고 한 미스 반데어로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주 작지만 세밀한 장면 속에서 우리는 더 큰 공간을 상상하고 더 높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를 관람한 뒤 중요한 삶의 가치를 드러내는 문양 또는 디테일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 세밀한 차이가 당신을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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