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을 이해하는 법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핀란드 디자인을 이해하는 법
전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Text | Kakyung Baek
Photos provided by National Museum of Korea

‘북유럽 디자인’ 하면 자작나무로 만든 가구와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만 떠오른다면,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선보이는 전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 핀란드 디자인 10,000년>을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북유럽 디자인을 뿌리부터 이해할 수 있는, 좀처럼 오지 않을 기회다.

이전부터 물질과 재료를 통해 인간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온 것, 그 과정 자체를 핀란드 디자인으로 설정하고 전시를 풀어나갔다.

2018년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개최된 핀란드 국립박물관의 전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 핀란드 디자인 10,000년(10,000 Years of Design– Man, Matter, Metamorphosis)>의 세계 첫 순회전이다. 국내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핀란드 국립박물관이 협업하여 전시 내용을 재구성했다. 앞서 말했듯 전시장에 들어서면 고정관념 속 핀란드 디자인의 이미지는 없고 자작나무로 만든 전시 모듈이 보인다. 모듈 속에는 돌도끼와 노키아 휴대폰, 나무 썰매와 현대의 스키, 곰 뼈와 현대 디자인 의자가 각각 큐레이션되어 있다. 과거 핀란드에서 열린 전시에서도 시대와 장소, 문화를 뛰어넘는 아카이빙 큐레이션으로 화제가 되었다. 전시 개념을 처음으로 성립한 공동 기획자이자 건축가인 플로렌시아 콜롬보와 산업 디자이너 빌레 코코넨은 이전부터 물질과 재료를 통해 인간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온 것, 그 과정 자체를 핀란드 디자인으로 설정하고 전시를 풀어나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처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블랙 큐브 속에서 펼쳐지는 프로젝션이다. 검은 벽면에서 리눅스 명령어가 비처럼 떨어지다가 우주의 시공간이 생성되고 돌도끼 등 인간이 만든 사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천장에 매달린 64개의 스피커에서는 각 도구가 내는 소리가 입체적으로 울려 퍼지다가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의 숫자가 나타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프롤로그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전시의 맥락을 하나의 웅장한 모습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블랙 큐브에 나타나는 0과 1의 숫자들은 전시 섹션 중 ‘시작의 이야기’를 이진법의 언어로 변환한 것이기도 하다.

전시는 크게 6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먼저 1부는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들다’로 태초의 인간과 물질에 대한 관계를 새롭게 제시한다. 집을 꾸미고 사물을 디자인하는 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행동을 원초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2부는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로 어떤 물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등으로 분류되었듯 인간이 다루는 물질을 문화적 표지로 해석한다.

 

이 섹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조르주 바타유가 1929년 <도퀴망>이라는 잡지에서 인간을 물질로 구성한 부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방으로 세숫비누 7개를 만들 수 있으며 당분으로는 커피 한 잔을 달게 만들 수 있다. 인(P)으로는 성냥개비 2200개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원재료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25프랑(약 3만 원) 정도 된다. 이와는 반대로 물질 자체의 속성을 바탕으로 사물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나뭇가지를 다듬지 않고 원래 생김새 그대로 활용한 사비타이팔레의 스툴이 그렇다. 스툴은 보통 목재를 깔끔하게 다듬고 접합해서 만들지만 사비타이팔레의 스툴은 자연에서 얻은 나뭇가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어쩌면 둥글게 구부러진 이 나뭇가지가 자연 속에서 기괴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디자이너가 속성에 대해 고심한 끝에 완벽한 스툴로 탄생시킨 것이다.

3부는 ‘사물의 생태학’이다. 현재 핀란드 땅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살기 시작한 것은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기원전 8500년 무렵이다. 이때부터 핀란드인은 경작과 사냥을 통해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핀란드는 물 10%, 숲 29%, 경작지 8%, 기타 13%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교적 자연의 비중이 크고 오랫동안 공생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연을 중시하는 핀란드적 디자인이 어떤 생계 시스템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한 관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4부 ‘원형에서 유형까지’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원형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하는 유형을 비교해볼 수 있는 섹션이다. ‘핀란드 디자인’ 하면 유명 디자이너들이 고안한 다양한 의자를 빼놓을 수 없다. 아주 오래전 핀란드 사우나에서 사용했던 등받이 없는 스툴이 알바 알토의 안락의자 등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핀란드어로 ‘시수sisu’는 용기, 회복력, 투지, 고집, 인내 등을 뜻하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단어다. 700여 년의 스웨덴 지배와 100여 년의 러시아 지배를 이겨내고 핀란드의 운명을 이끌었을 이 단어는 오늘날에도 일상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라고 한다. “디자인은 지식을 소통하는 것이다”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엔초 마리의 말처럼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무작정 따르기보다 개인이 살아온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자연환경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탐미하며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것이 핀란드 디자인의 요체가 아닐까 싶다.



Related Posts

책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재생큐레이션홈데코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
노마드로컬오가닉친환경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박영택
라이프스타일큐레이션홈데코
VILLIV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VILLIV NEWSLETTER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