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인테리어 매거진에 대한 저항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럭셔리 인테리어 매거진에 대한 저항
인테리어 독립 잡지 <시닉 뷰>

Text | Kakyung Baek
Photos provided by Lorena Lohr

“2009년 7월의 이상한 오후를 기억한다. 강제 철거라는 황당한 상황에 처한 동료와 급하게 떠난 사람들이 남겨둔 파편들로 가득한 초현실적인 아파트의 안팎은 우선 말을 잃게 하는 스펙터클로 다가왔다. 철거업체의 인부들이 내던지는 유리창의 괴괴한 소리와 초여름 인왕산의 현란한 풍광은 욕망과 현혹, 그리고 공포가 혼재하는 아수라계의 압축태쯤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문장은 이정민 작가가 2009년을 끝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서울 옥인아파트의 철거 현장을 묘사한 것이다. 이곳을 활동지로 삼았던 아티스트 그룹 ‘옥인콜렉티브’는 2018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고 몇 년 뒤 생활고로 생을 마감했다. 최신 트렌드가 된 장소와 요즘 잘나가는 사람들은 쉽게 주목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움의 뒤안길로 접어들면 우리는 공간이든 사람이든 쉽게 잊어버리고 방치한다. 새로 지은 집, 요즘 뜨는 동네에 피로를 느낄 법도 한데, 우리는 왜 ‘아수라계의 압축태’로만 향하는 걸까?

Arnold Kramer, Family Room, Randallstown, Maryland, 1977. Courtesy Joseph Bellows Gallery

최근 런던에서 이런 피로감을 타파해줄 인테리어 매거진이 창간했다. 미술 전문 잡지 <엘리펀트> 에디터 루이스 벤슨Louise Benson과 포토그래퍼 로레나 로어Lorena Lohr가 함께 만든 <시닉 뷰>다. 이 듀오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기존 인테리어 전문 잡지에 대한 분노로 창간을 계획했다. <시닉 뷰>의 붉은 표지 한가운데, 시대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실 사진이 놓여 있다. 표지가 상징하는 대로 이 잡지에는 전 세계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예의 주시하는 각종 트렌드보다 가족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오래된 거실, 지저분한 바, 푹 꺼진 카페 소파가 더 자주 등장한다.

 

2019년 10월 첫 번째 이슈를 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벤슨과 로어는 10년 동안 서로 알고 지내면서 함께 다녔던 어떤 공간들로부터 이 잡지를 발전시켰다. 캐비닛의 서류를 정리하는 일부터 이국적인 테마의 라운지에서 블루 하와이언을 마시는 일까지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일이 그 장소를 대변한다고 믿는 두 사람은 도시의 독특함을 잔뜩 담고 있는, 기이하고 사적인 공간을 찬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초창기 그들이 고안한 형태는 잡지가 아니라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훑어보는 작은 간행물이었다. 예를 들면 가능한 한 값싼 편도 티켓을 예약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항에 도착해야만 하는, 캐리어 무게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어마어마한 화장실의 줄 속에서 침몰하기 일보 직전인 여행객을 독자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 <시닉 뷰>는 동일한 콘셉트는 유지하면서도 영역을 더 넓혀 4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잡지 형태로 완성됐다.

62쪽에 달하는 전체 페이지 중에서도 눈을 뗄 수 없이 흥미로운 몇 가지 기획을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73세의 포토그래퍼 아널드 크레이머Arnold Kramer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담은 기사다. 그의 인터뷰는 1970년부터 예술적 포토그래퍼로 성공하기 위해 한때 뉴욕에 살던 시절을 회고하며 운을 뗀다. “뉴욕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연인이자 학예사였던 샘 웨그스태프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는 돈이 많았고 뉴욕 예술계를 휘어잡고 있는 권력자였죠. 그와 방에 앉아 얘기하던 게 기억나요. 그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과시했고 저는 무기력했어요.” 크레이머 역시 뉴욕에서 많은 전시를 했지만 폐쇄적인 미술계에 신물이 나서 유명 포토그래퍼가 되길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건축 전문 포토그래퍼로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으며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중심부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을 담담히 살아왔다고 고백했던 그는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시닉 뷰>에 실린 크레이머의 사진은 그의 초창기 작품으로, 1978년 워싱턴 지역의 가정집 내부를 찍은 것이다. 크레이머의 초창기 작품을 전부 훑어봤을 벤슨에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집이 있는지 물었다. 벤슨은 “거실 중앙에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 모양의 테이블이 있던 집”이라 답했다. 그 거실은 아주 평범한 집기들로 가득해 오히려 더 기막히게 멋있어 보였다고. 그곳에 누가 살았는지, 주인이 갖고 있는 다른 장식품은 뭐가 있을지 연거푸 궁금증을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크레이머의 사진은 피사체의 이야기를 담는 훌륭한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했던 말은 그의 시선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경험에 고립되어 있어요. 사진의 목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격차를 무너뜨리는 걸 도와주는 일이죠. 집 내부의 모습이 덜 노출되더라도 사진을 보는 사람과 그곳에 사는 사람이 연결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 아널드 크레이머 -

로어와 벤슨이 <시닉 뷰> 첫 호를 세상에 선보인 후 들은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에 관해 물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집을 염탐하는 잡지”라는 표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약간 해롭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재밌는 표현이었어요. 잡지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느낌이라면 <시닉 뷰>는 사적인 공간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는 말일 테니까요.” 염탐한다는 말이 흥미로워서 다음 질문으로는, 각자 지금 사는 공간을 <시닉 뷰>에서 다룬다면 어떤 이미지를 싣고 싶은지 물었다. 벤슨은 전 세계 도시에서 구해 온 음식 모양 자석 컬렉션이라 답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구한 석류 모양 자석, LA에서 구한 크리스털로 만든 타코 자석, 그리고 도쿄의 스시 자석까지 한 보드에 붙여서 전시할 거라고 말이다. 로어는 현재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사는데, 완벽하게 분홍색인 화장실이 <시닉 뷰>에 제법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다. 지금 사는 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공간은 어디인가? 너무 오래 봐서 이제는 그 공간이 있는지도 모르게 된 곳이 있는지. 로어와 벤슨은 한국에 사는 독자들에게 그런 공간이 사라지도록 그냥 놔두지 말라고 말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현대사회의 집착에 따르지 않고 그런 공간을 보기 시작한다면 발견할 수 있는 가치가 정말 많을 거예요. 균일한 질서 말고 차이점을 찾아보세요. 그러면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언제든 찾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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