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집을 고치는 여성들의 모임 | 신세계 빌리브
Friday, June 18,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스스로 집을 고치는 여성들의 모임
여기공의 워크숍 ‘집 고치는 여성들’

Text | Kay B.
Photos | Inda

집에서 발생한 고장은 대부분 전동 드릴 하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굉음을 내는 전동 드릴을 사용할 용기가 없다면 이 워크숍을 주목하기 바란다. 초보자 중에서도 기술에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교육하고 네트워킹을 주도하는 여기공의 워크숍이다. 내 집을 스스로 돌보는 데 필요한 ‘잔근육’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혼자 사는 여성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주의 성별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 4배나 더 많다. 또 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안전 문제로 모든 연령대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다. 특히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공간인 집에서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가구는 치안에도 취약해 집 수리 기사, 택배 기사처럼 낯선 이의 방문을 꺼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SNS상에서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집 수리 워크숍이 기획 단계부터 모집 과정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화제를 되었다. 협동조합 여기공이 이번 워크숍 ‘집 고치는 여성들: 여기공 여성 주택 수리 기사’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모집 포스터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작업복을 갖춰 입은 여성들이 간단하게는 형광등 교체부터 크게는 싱크대 수도관을 수리하고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손수 만든다. 만약 당신이 고장 난 가구를 쉽게 버리고 새것을 사고, 집을 돌보는 일을 누군가에게 용역을 맡겨 멀리해왔다면 이 포스터에서 진정한 ‘자립’의 의미가 물씬 느껴졌을 것이다. 이번 워크숍은 집 수리에 관심 있는 여성들에게 공구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부터 전문 기술 분야까지 가르치며 구직에 도움이 되는 수료증까지 발급한다.

 

여기공은 여성 기술자 양성을 위한 교육을 기획하고 여성들의 네트워킹을 주도하는 협동조합이다. ‘여기공’이라는 이름의 ‘여기’는 ‘여성 기술자’의 줄임말이고 ‘공’은 무언가를 같이 만드는 공작의 공, 함께를 뜻하는 공, 공공성의 공, 공간의 공을 함축한다. 여기공의 이사장이자 대표인 인다(이현숙)와 세모(민재희) 등 20대 후반인 여성 5명이 모여 운영하는 이 협동조합은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여기공의 인다 대표와 세모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장인들에게 전문 기술을 배우면서 남성 위주의 기술 문화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꼈다. 예를 들면 일부 남성 강사나 동료가 여성 기술자를 평가절하하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그러했다. 이들은 기술 문화에도 젠더에 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여성들이 기술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여기공이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기술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도 진입 장벽이 느껴지지 않도록 구성했으며 무엇보다 젠더와 인권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1인 가구의 집에서 꼭 필요한 적정 기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여기공 인다 대표는 최소한 전동 드릴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전등, 경첩, 문고리 등을 수리할 때 전동 드릴 하나면 쉽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간의 과정을 이수한다고 해서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구상할 수 있게 된다. 기술을 익히는 것은 마치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과 같아서 일단 페달 굴리는 법만 터득하면 쉽게 더 많은 기술을 체화할 수 있다.

“집 고치는 능력을 터득하면 소위 ‘배짱’이 생겨요. 언뜻 보면 집 수리가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전동 드릴을 다룰 줄 안다고 해서 집에 생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돼요.”
- 인다(이현숙), 여기공 협동조합 대표 -

초보자가 기술 배우기를 시작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두려움이다. 이는 성별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생전 처음 써보는 도구를 배울 땐 누구든 움츠러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여성이 기술을 배우려고 했을 때 무심코 “여자라서 잘 못할 거야”, “여자가 이런 걸 할 수 있나” 같은 말을 들으면 그 시작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다 대표는 기술을 접해보지 않은 초보자일수록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같은 맥락에서 ‘시작하는 용기, 용접의 기술’이라는 이름의 여기공 용접 워크숍도 진행했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쉽게 내뱉는 여성의 한계에 대한 말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초보자가 기술을 익힐 때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안전 장비를 잘 갖추고 자신의 컨디션도 잘 살펴야 해요. 벽에 페인트칠할 때 슬리퍼를 신고 있다가 도구가 발에 떨어져 발을 다친 경우도 있었어요. 집에서 작은 공구를 다루더라도 꼭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날씨와 주변 환경을 잘 고려해야 하죠.” 앞으로 여기공은 용접 워크숍, 집 수리 교육, 기본 공구를 익히는 워크숍, 헌옷을 활용한 직조 워크숍까지 지난 2년간 쌓아온 다양한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 7월부터는 건축과 설계, 가사 노동 등 집과 관련된 젠더 이야기를 엮은 강의도 선보일 계획이다. 자세한 일정은 여기공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세계적인 IT 그룹의 몇몇 리더는 해마다 미국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 맨 페스티벌Burning Man Festival’에 참여한다. 예술, 건축, IT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모여 자신의 힘으로 예술품을 만들고 하나의 도시를 일군다. 축제가 끝날 무렵 참가자들은 인간을 닮은 모형과 함께 설치 작품을 전부 불태우는데, 이는 ‘만드는 경험’을 중시하는 버닝 맨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을 전파하는 리더들이 이 축제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이유는 하나다. 새로운 일을 창조하는 힘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전구를 갈아 끼우고 문고리를 교체하는 기술이 얼핏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가 삶을 어떻게 바꿀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적어도 사는 동안 소비만 하는 인간으로 도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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