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것만 담아 오는 가게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꼭 필요한 것만 담아 오는 가게
알맹상점

Text | Eunah Kim
Photos | Hoon Shin

알맹상점은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제품을 사라고만 하지 않는다. 이 방식이 좋다면 당신도 매장을 내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제로 웨이스트 숍은 알맹상점의 경쟁 상대가 아니며, 이 방식을 지속시킬 이들을 모아주는 조력자다. 알맹상점은 이러한 방식에 흥미를 느낀 누구나가 스스로 최소한의 소비를 선택하는 흐름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

2018년 여름,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과도한 1회용 플라스틱 포장에 반대하는 소비자 행동 ‘플라스틱 어택’이 열렸다. 시민들이 플라스틱 포장재에 담긴 과일이나 과대 포장된 시리얼 등을 알맹이만 담아 가고 ‘껍데기’는 별도의 카트에 모아 마트에 두고 나오는 퍼포먼스였다. 2018년 봄부터 영국의 테스코를 시작으로 유럽와 미주 곳곳에서 일던 이 움직임을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안내하고 조직한 이들이 있었다.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은 스스로를 ‘알맹이만 원하는 자’, 줄여서 ‘알짜’라고 부른다.

알짜들은 이후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기 위한 장바구니 빌려주기 프로젝트를 시행했고, 망원시장 상인회가 운영하는 시장 내 작은 카페 한편에 각종 세제류를 그램 단위로 판매하는 소분 숍을 차렸다. 그리고 지난 6월 중순, 망원역 주변에 ‘리필 스테이션’이라 소개하는 상점을 냈다. 패키지 없이 내용물만 파는 가게, 알맹상점이다.

이곳에서는 텀블러, 유리 빨대, 다회용 티백, 샴푸 바부터 폐플라스틱을 사용해 만든 줄넘기와 요가복까지 일반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을 ‘포장 없이’ 판매한다. 저마다 이유 있는 제품 목록만 500개가 넘는다. 한편에는 대용량 통에 담긴 세제와 화장품, 커피, 찻잎 등을 소비자가 가져온 용기에 담아 저울에 계량해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이 자리해 있다. 용기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매장 내에서 모아 소독 처리해둔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를 사용하는 옵션도 있다. 소비자가 아무리 깨끗이 씻어서 가져온 용기라도 물기나 음식물 등이 남아 있을 경우 다시 세척해서 살균기 처리하기도 한다. 가게 안쪽으로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워크숍 공간이 있다.

 

이곳을 꾸려가는 3명의 공동 대표는 환경 단체에서 오래 일한 금자를 필두로, 지속적으로 플라스틱 프리 운동을 해온 은과 레교다. 매장을 지키다 보면 하게 되는 주된 업무 중 하나는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했다. “요즘 옷 가게나 백화점에 가면 점원이 붙어서 말을 건네는 걸 불편해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물건을 고르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우니 ‘말 걸지 말아달라’는 거죠. 이걸 두고 개인주의가 심화됐다고도 하는데, 글쎄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저희랑 말을 하고 싶어서 오세요.” 은님이 말한다.

알맹상점은 3인의 '알짜' 금자(고금숙), 은(이주은), 래교(양래교)가 공동 대표로 함께 운영한다. 사진은 매장에서 근무 중인 은.

알맹상점의 시작은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대여하는 캠페인이었다. 환경부는 2019년 1월부터 전국 대형 마트와 매장 크기 165㎡(50평) 이상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전통 시장은 규제 대상이 아니기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계속해서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이에 마포구 주민 모임의 일환으로 금자를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이 집에 남는 에코백을 기증해달라는 공지를 냈고, 6개월 만에 1500개가 넘는 에코백이 모였다.

 

500종이 넘는 다양한 생활 제품을 소량 매입해 판매하다 보니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다. 우선 제품 제조뿐 아니라 포장과 배송 전반에 걸쳐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물건의 단가도 낮게 공급할 수 있는 생산자를 찾는 데 한계가 있고, 대부분의 소비자에게 낯선 개념인 만큼 ‘취지는 좋지만 비싸다’는 인식을 줄까 우려돼 소비자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사회에 선한 기부를 하면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만, 왜 선한 일이 돈이 되려고 하면(수익을 내려고 하면) 쉽게 손가락질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실험을 해보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은님이 말한다. ‘자본’과 ‘가치’가 균형적으로 공존하려면 전에 없던 상상력이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이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혹은 내가 행동하던 방식을 달리해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 마실 음료를 담을 텀블러를 집을 나서는 길에 챙기는 일 말이다. 너무 여러 개의 다회용 용기를 갖고 다니기에 힘이 부치고 가방도 비좁다면, 몇 가지 욕구를 포기하는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나아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최대한 정확히 아는 일, 나에게 무엇까지를 허락할지 선을 긋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역부족인 시스템의 한계도 크다. “(소분 가게 운영은) 사실 법 제도 안에서는 실현 가능하지 않아요. 특히 식품에 관련해 규제가 가장 많죠. 거의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예요. 이를테면 저희는 제한적으로 커피와 차 등 건조 식품만 판매하는데요, 이 외의 음식물은 화장품류와 함께 소분 판매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식품류와 화장품류를 함께 취급하려면 주방과 화장실과 입구가 각각 있는 공간이어야 허가가 나거든요.”

 

공동 대표 중 금자 님은 올해 초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화장품 소분 판매를 하려면 필요해서 취득은 했으나, 자격증은 500kg 대용량을 매입해 나누는 것을 기준 단위로 해 대기업이 아닌, 알맹상점 같은 소규모 운영 주체에게는 쓸모가 없다. 알맹상점에서 사용하는 벌크 화장품 용량은 고작 20kg이다.

“사실 한국형 제로 웨이스트 식료품 숍이라고 하면 한국의 각종 양념,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소분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싶거든요. 특히나 이런 제품의 유통에 사용되는 용기인 (재활용이 어려운) ‘색깔 있는 플라스틱’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고 싶어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라벨지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명시돼 있지 않은 용기에 거품조차 나지 않는 무색·무취의 세제를 담으면서 제품의 효과에 대해 빽빽하게 적힌 홍보 문구 없이도 만족감을 느끼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 비워진 공간은 전에 없던 수많은 질문으로 채워진다. ‘이걸로 빨래가 잘될까?’, ‘근데 사실 무엇을 근거로 빨래가 잘되는지 알 수 있을까?’, ‘어떤 성분이 어떤 이물질을 지워내는 걸까?’, ‘나한테 꼭 필요한 기능은 뭘까?’, ‘그게 나는 얼마큼만 있으면 될까?’와 같이 말이다.

 

결국 제로 웨이스트란 내가 정말로 필요한 것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답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알맹상점이 운영 경험을 담아 펴낸 안내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언제든지 물어봐주세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쓰레기를 줄이고 싶은 마음으로 아는 한 답해드리고 지지해드릴게요.” 정답은 없지만 그 답을 함께 찾아보자는 사람들은 분명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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