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창조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두 작가의 방’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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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창조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두 작가의 방’
영화 <조용한 열정>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

Text | Kakyung Baek
Photos | IMDb

영화를 보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함일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과 엘리자베스 비숍, 이 두 시인을 각각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조용한 열정>과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을 통해 그들의 집을, 집에서 무언가를 해나가는 방식을 들여다보았다.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집을 창조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참고할 만한 장면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집에서 홀로 업무를 하고 다른 일을 지속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사무실, 학교, 카페 등 외부 공간에서 했던 ‘일’을 최소화하고 집으로 들여온다는 건 종종 일상에 불협화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50년 이상 집에서 변혁을 위한 시를 쓴 에밀리 디킨슨과 연인이 지어준 작업실 겸 집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시를 쓴 엘리자베스 비숍의 이야기는 집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의 집과 방을 둘러보며 집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영화 <조용한 열정>은 에밀리 디킨슨이 획일적인 교육과 종교적 억압이 만연한 기숙학교를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디킨슨은 그토록 원했던 집에 도착해서는 환희에 가득 차 “오! 나의 삶, 나의 집!”이라며 탄성을 뱉는다. 그에게 집은 자유 그 자체였다. 19세기 미국 사회는 남성 중심적이고 기독교적 사고관을 강요하던 시기였다. 디킨슨은 가족이 모두 잠든 조용한 새벽에 글을 쓰는 것조차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몇 개의 호롱불에 의지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디킨슨은 방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만끽했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소는 디킨슨의 방이다. 방 한구석에 놓인 네모난 작은 책상, 디킨슨이 그곳에 앉으면 양옆으로 커다란 창문이 둘러싸여 있고 창틀과 책상엔 싱싱한 꽃이 꽂혀 있다. 고풍스러운 커튼 사이로 옅은 햇빛이 투영되고 그 빛 아래서 디킨슨은 시를 썼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소는 디킨슨의 방이다.
고풍스러운 커튼 사이로 옅은 햇빛이 투영되고
그 빛 아래서 디킨슨은 시를 썼다.

디킨슨은 실제로 은둔자로 알려진 시인이었다. 매사추세츠주의 애머스트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그곳을, 그의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감독 테런스 데이비스가 디킨슨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관계자들이 곧바로 은둔자에 관한 영화를 어떤 식으로 만들 거냐고 반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디킨슨은 집에서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변혁적인 시를 썼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에 대항해 자유와 실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1,800여 편이나 완성했다. 그는 살아생전 자신이 쓴 시에 대한 충분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으나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꾸준히 시를 쓰는 열정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두 번째 영화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은 1956년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주인공이다. 그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시인 로버트 로웰과 자신의 시 ‘하나의 예술(One Art)’에 대해 토론한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급하게 끝나는 것 같다는 로웰의 부정적 평가를 들은 비숍은 새로운 시를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비숍은 친구를 만나러 간 브라질에서 운명처럼 로타 수아레스를 만난다. 건축가인 그녀는 친구의 연인이었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양 속도감 있게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수아레스는 비숍을 위해 자신의 정원 한편을 폭탄으로 날려버리고 멋진 집을 지어주기로 한다.

 

파젠다 사맘바리아라는 이름의 이 집에는 비숍이 글을 쓰는 데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방이 있다. 방 한 면엔 책과 진귀한 물건을 진열해놓은 선반이 있고 그 앞으로 거대한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다. 비숍은 가장 먼저 책상을 방 한가운데에 놓고 타자기를 올려두었다. 책상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 통창을 통해 열대의 숲과 들판이 보인다. 비숍은 넓은 발코니로 나가 자연을 굽어보며 휴식을 취하고 때때로 정원을 걸어 다니면서 시구를 완성해간다. 그는 영화 전반부에서 뉴욕에 있던 자신의 집을 ‘어두운 상자’로 묘사한 것에 반해 파젠다 사맘바리아에서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의 비숍은 강인하고 매력적인 수아레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극 중에서 급격히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작가가 집을 대하는 태도는 명확한 대사와 장면으로 표현되기보다 하나의 긴 서사로 드러난다. <조용한 열정>에서 디킨슨은 집에서 은둔자처럼 지내는 것이 사고까지 갇히게 하는 것은 아니며,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비숍처럼 삶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 새로운 집으로 잠시 옮겨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집에서 낯선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위태롭지만, 에너지가 샘솟는 변화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의 감독 브루노 바레토는 원래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상실의 예술(The Art of Losing)’로 짓고 싶었다고 한다. 연인 수아레스가 비숍의 뉴욕 집에서 삶을 마감하면서 비숍은 커다란 상실을 겪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상실의 의미를 논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도 자주 상실을 겪는다. 가장 중요한 건강에 대한 희망부터 여행의 활기, 사람들과의 친밀감 등을 잃는 기분이다. 비숍이 상실 속에서 사랑의 기쁨과 그를 대표하는 시를 건져 올렸듯 코로나19 시대에 집에서 우리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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