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 음식처럼 따뜻하게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한 그릇 음식처럼 따뜻하게
푸드콘텐츠 디렉터 김혜준

Text | Soobin Lee
Photography | Siyoung Song

김혜준에게 ‘치유의 음식’은 아플 때마다 엄마가 끓여주신 홍합죽이다. 온기를 품은 채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그 맛에서 커다란 사랑을 느낀다. 그는 음식과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브랜딩하는 자신의 일도 음식처럼 따뜻한 온기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솜씨 좋은 셰프와 파티세리들이 이로운 가게를 만들기를 바라는 또 하나의 이로운 마음으로 일한다.

푸드콘텐츠 디렉터라는 직업이 생소해요. 풀이해주신다면요?

음식이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을 이어주는 중간 연결자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제빵이나 제과 잘하는 사람을 모아서 행사를 기획하고, 좋은 음식에 대해 글을 쓰고, 음식을 파는 가게의 브랜딩을 도와줘요. 푸드콘텐츠를 잘 엮어서 더 큰 시너지가 일어나도록, 즐겁고 맛있는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일과가 궁금해요. 꼭 챙겨서 하는 일관된 습관이 있나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에요. 늘 연재하는 원고가 있는 편이고 디저트 가게를 소개한 책을 쓰고 있는데 주로 밤중에 원고를 쓰거든요. 낮에는 거의 외부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3~4시쯤 잠들어 10시쯤 일어나는데, 보통은 나를 찾는 누군가의 연락 때문에 핸드폰을 확인하면서 깨죠. 아침에는 자신을 압박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고 모든 약속은 점심 이후부터 시작해요. 오전에는 집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내려 마셔요. 명색이 음식을 다루는 사람인 만큼 고요하게 나를 깨우는 음식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차를 내려 마시면 마음의 위안을 얻어요.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누리는 작은 즐거움이에요.

“오전에는 집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내려 마셔요.
명색이 음식을 다루는 사람인 만큼 고요하게 나를 깨우는 음식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제과를 배워 현장에서 일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음식을 파는 사람을 돕고 있어요. 음식이란 공통 요소가 있지만 하는 일은 다른데, 특별한 지향점이 있었나요?

사실 음식을 따라왔을 뿐이에요. 다만 그때그때 제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기술을 배운 것은 대학 졸업 후 프랑스 레스토랑의 홀 직원으로 일할 때 기술을 가진 친구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르꼬르동블루 숙명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제과 과정을 배웠죠. 그 이후 나폴레옹 과자점에서 일할 때 사장님이 제 다른 가능성을 봐주셨어요. 제품 개발이며 손님 접대, 가게 오픈에 관련한 다양한 실무를 경험할 수 있었고요. 학교에서 제안이 들어와 전임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모든 경험을 아울러 ‘김혜준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음식과 관련해서 기획과 브랜딩 등 다양한 콘텐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음식을 통해 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라요.

 

주방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주방이란 어떤 곳인가요?

주방에서 일할 때 그곳은 엄격하고 무서운 장소였어요. 일터의 고단함이 묻어났고 위생적으로 깔끔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어요. 막상 현장 일을 그만두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노라면 이제 주방은 보물섬 같아요. 훌륭한 기술을 가진, 좋아하는 사람들이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곳이니까요. 그들의 살림살이를 볼 수도 있고요. 우락부락해 보이는 셰프가 다소곳하게 칼질하는 모습에서 문득 우리 엄마의 모습이 스쳐 가기도 해요. 이제 제게 주방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끼니를 때우는 수단으로써 요리를 제외하고, 요리는 어떤 행위인가요?

일이 안 풀릴 때, 원고를 써야 하는데 안 써질 때, 스트레스가 차 있을 때 요리를 해요. 마트에서 가장 신선한 재료로 장을 봐오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성찬을 만들어 먹거나. 제게 요리란 존재감을 확인하는 행위 같아요. 요리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고 다시 힘을 내서 다른 일을 해나갈 수 있거든요. 결국 요리는 나를 보듬죠.

“미식이란 일상에서 가장 쉽게 부릴 수 있는 사치죠.
계절을 느끼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요즘 들어 미식에 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왜일까요?

미식이란 일상에서 가장 쉽게 부릴 수 있는 사치죠. 계절을 느끼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어릴 적에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좌판에 놓고 파는 무화과 같은 과일을 사신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반을 갈라 드시곤 했어요. 엄마에게 무화과 한 알은 늦여름의 맛, 당장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었던 셈이에요.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죠. 그땐 무화과 맛이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나이가 드니까 그게 어떤 맛인지 알게 되었고, 늦여름이 되면 엄마에게 무화과를 많이 사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요. 엄마의 작은 사치를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일을 위해 하는 특별한 노력이 있나요?

발품을 많이 팔고 다녀요. 여행이자 출장인 셈인데 요즘에는 책 작업 때문에 교토에 자주 가요. 단순히 미식 공간만 많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곳의 문화를 경험한다고 생각하죠. 가끔 현지에 있는 지인이나 때마침 여행 온 지인과 시간을 맞춰 한두 끼 같이 먹을 때가 있는데, 이국적인 공간에서 만나 함께 먹는 밥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요. 그 밖에 지자체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나 일본 식문화사 수업을 듣기도 하고요.

 

미식 공간을 소개하거나 브랜딩하는 것은 큰 책임감이 요구되는 일 같아요.

미식 공간을 추천할 때는 새로 오픈한 곳은 바로 가거나 소개하지 않아요. 새 오븐도 길들이려면 2~3개월이 필요하듯 무언가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초반에 갔더라도 재차 방문해보고 확신이 들면 소개해요. 음식점 브랜딩은 생산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해요. 오래가지 못할 가게 같다면, 셰프의 잠재 능력에 확신이 들지 않으면 일을 맡지 않아요. 일 자체는 그들에게 의뢰받지만, 최종적으로는 소비자를 바라보고 일해야 하니까요. 또한 당연한 태도지만 제가 브랜딩한 업장에서 음식을 먹을 때 모두 값을 지불해요. 내 돈으로 사 먹어야 그 가치를 명확히 느끼거든요.

 

작업한 곳 중에 의미 있는 공간을 하나 꼽아주세요.

마마리마켓을 꼽고 싶어요. 주로 파인다이닝의 브랜딩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반찬가게인 마마리마켓은 지극히 대중적인 공간이에요. 방산시장으로 발품을 팔아가며 패키지 디자인을 정하고, BI 디자인을 디렉팅 하는 등 총체적으로 일했기에 기억에 남아요. 오픈 이후 송하슬람 셰프의 부지런한 인스타 홍보와 믿음직한 콘텐츠로 자생적인 힘을 갖게 된 점도 고무적이에요. 특히 마마리마켓 숍에 놓을 품목을 큐레이션 하는 데 신경 썼어요. 제 보물창고를 다 개방했는데, 나만 알고 싶던 제주도의 국수공장 국수를 소분 판매하고 신뢰 가는 농장의 한라봉도 낱개로 판매하고 프릳츠 커피를 사서 진열했어요. 일반적인 반찬가게에서 만날 수 없는 특색 있는 먹거리들을 구성해 차별점을 만들었고 실제로 반응이 좋았어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인터뷰를 하는 이곳, 정독도서관을 꼽아주신 점이 독특해요.

정독도서관은 자료를 찾는다는 핑계로 제가 잘 숨어드는 곳이에요. 이 근처의 고등학교에 다닌 덕분에 그 시절부터 다닌 곳이라 열람실도 익숙한 데다 방대한 자료가 있어요. 요즘 맡은 일 중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 테마존을 꾸미는 일이 있는데, 그 첫 주제가 간장이었어요. 우리 전통 장에 관련된 자료를 찾을 때도 여길 왔죠. 늘 다양하고 새로운 공간을 많이 다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 올 때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휴식 같은 공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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