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방을 식당의 그것처럼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집 주방을 식당의 그것처럼
채소 요리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 운영자 요나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햇유자로 지은 유자호박밥, 매실 마요네즈를 발라 구운 수박무, 호두소스를 올린 시금치와 토란…. 요나의 요리는 이름이 길다. 그 숨 가쁜 재료의 나열에서 음식을 만든 이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홍은동 주택가에 자리한 '재료의 산책'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채소 요리 식당이다. 도쿄 타마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한 요나는 요즘 이곳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화실에서의 붓질이 주방에서의 칼질로 옮겨갔을 뿐, 그녀에게 그림과 요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작업이다. 요나라는 창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픈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 한 접시 가득 담은 제철 채소가 색색의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처럼 다채롭다.

‘재료의 산책’은 어떤 공간인가요?

한 달에 대여섯 번 문을 여는 팝업 식당이에요. 인스타그램에 미리 날짜를 공지한 뒤, 예약한 손님들에게 그때그때 나오는 제철 채소를 중심으로 요리를 내고 있어요.

 

식당을 열지 않을 때는 비워두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이 공간은 저에게 작업실이기도 하거든요.다양한 시도를 통해 경험을 쌓는, 조금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예비 공간이랄까요? 식당을 운영하는 건 그런 연습의 일부인 셈이고요. 처음 이곳을 열었을 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뭐 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그 질문이 저에게는 아주 중요했죠. 자신도 좀 혼란스러웠거든요. 식당이라기엔 불완전하고, 그렇다고 사무실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작업실에 제일 가깝더라고요.

“식당이라기엔 불완전하고, 그렇다고 사무실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작업실에 제일 가깝더라고요.”

<재료의 산책>이라는 동명의 요리 에세이를 내기도 했어요.

2013년부터2016년까지 한 월간지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단행본이에요. 당시 요리 코너 제목이 재료의 산책이었어요. 매달 계절에 어울리는 재료를 선정하고, 그 재료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를 소개했죠. 레시피를 소개한다기보다, 독자들이 페이지를 펼쳤을 때,요즘 사과 철인가 보네?’하고 계절감을 느끼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어요. 그렇게라도 틈틈이 재철 재료의 존재를 떠올렸으면 했거든요. 산책하듯이 가볍게요.

 

일본에서 유화를 전공했는데, 어쩌다 요리로 방향을 틀었나요?

워낙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매체와 잘 맞았어요. 학교 졸업하고 한때 사진을 공부하기도 했는데, 사실 저에게는 요리나 그림이나 사진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결국 다 자기표현 수단이니까요. 모르죠, 10년 후에는 음악을 하고 있을 지도요. 전 지금도 요리사라고 불리는 게 어색해요. 요리로 성공하거나 사람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이 공간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요?

남자친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둘 다 공간 꾸미는 걸 워낙 좋아해서 전기공사 빼고 다 직접 했어요. 다만 얼마나 오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많은 예산을 들이지는 않았어요. 중앙에 있는 테이블은 나무 작업하는 친구들이 도와줬고, 의자는 인터넷에서 중고로 샀고요.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만큼,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이렇게 근사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의 집 주방은 어떨지 궁금해요.

집이 걸어서5분 거리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집 주방은 텅 비어있어요. 모든 집기가 다 여기 있거든요. 작업실이 생기니까 주방을 둘로 나누기가 어렵더라고요. 뭔가를 만들어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의식주에 해당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일이기도 하니까,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집에서 밥을 차려 먹건, 여기서 음식을 만들건 저에게는 똑같은 작업이거든요. 그래서 제 최종 목표는 집과 작업실을 합치는 거예요. 집 주방을 지금의 팝업 식당처럼 운영하는 거죠.

“작업실이 생기니까 주방을 둘로 나누기가 어렵더라고요. (중략) 집에서 밥을 차려 먹건, 여기서 음식을 만들건 저에게는 똑같은 작업이거든요. 그래서 제 최종 목표는 집과 작업실을 합치는 거예요. 집 주방을 지금의 팝업 식당처럼 운영하는 거죠.”

<재료의 산책>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독일 여행 중 살고 싶은 집을 발견했다. 강가 둑 위에 자리한2층짜리 집은 멀리서는 큰 나무들에 가려 붉은 지붕만 빼꼼히 보인다. 1층 입구를 약간만 손봐 파이와 키쉬를 파는 구수한 가게로 만들고 싶어진다라는 구절이요.

맞아요. 집과 식당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제게는 가장 이상적으로 느껴져요. 머지않은 미래에 남자친구와 함께 지방에 내려가서 살 계획인데, 거기서 식당을 겸한 집을 꾸리는 게 최종 목표예요. 제철 재료를 구하기가 서울보다 비교적 수월한 데다 집값도 훨씬 저렴하니까요.

 

채소 요리를 내세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 채식주의자는 아니에요. 채식을 권장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봐요. 그래도 우리의 식생활이 너무 육식에 치우쳐 있는 건 분명 문제예요. 식단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까요. 제가‘재료의 산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결국 그런 거예요. 서울에서 제철 채소를 챙겨 먹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처음에는 고기 없이 식당을 운영한다는 게 모험처럼 느껴졌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 제철 채소는 어떻게 해도 다 맛있더라고요. 고기와 달리 계절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고요.

 

제철 채소는 어디서 구하나요?

일주일에 사나흘씩 홍대 앞수카라’라는 카페에서 스태프로 일해요. 그곳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작은 채소 가게를 애용하고, 농부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직거래로 받기도 해요. 인스타에 식당 오픈 날짜를 공개하면, 그때부터 이런 식으로 제철 채소를 열심히 그러모으죠. 재료에 맞춰 요리를 정하다 보니 메뉴를 미리 공개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재료가 모일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예약까지 하고 찾아와주는 손님들을 보면 참 신기해요. 본격적인 상업 공간이 아니니까 다들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는 것 같아요.

 

한겨울에‘산책’하기 좋은 채소 하나만 알려주세요. 간단한 조리법도 함께요.

요즘은 배추가 제철이에요. 메밀가루를 얇게 입혀서 부쳐 먹으면 맛있어요. 마트에서 매대 가장 앞에 놓인 채소나 과일을 눈여겨보세요. 그게 지금 가장 맛있는 재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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