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있는 빈센트의 ‘아폴로니아’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쓸모있는 빈센트의 ‘아폴로니아’
<쓸모인류> 공동 저자 빈센트 리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빈센트 리는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한 동양계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에너지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다 2017년 은퇴 후 아내와 함께 북촌의 작은 한옥에 둥지를 틀었다.

한옥 대문에는 ‘아폴로니아’라고 쓴 영문 문패가 달려있다. 알바니아 피에르 지역의 항구도시 아폴로니아처럼 활기차고 따뜻한 사교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에세이집 <쓸모 인류>의 공동 저자(외 강승민)인 그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사람이다. 매일 아침 브런치를 만들고, 사는 공간을 잘 정리 정돈하며, 필요에 따라 집을 뚝딱 고친다. 덕분에 그의 집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정리 정돈의 달인이자 인생 고수인 68세 노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젊은이들이 아폴로니아의 단골손님이다.

 

한옥에 핑크와 골드라니 깜짝 놀랐어요. 의외로 근사하기도 하고요.

특별히 핑크나 골드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목재에 어울리는 색을 고민하다 보니 옅은 핑크색이 떠올랐고, 그에 어울리는 색을 찾다 보니 골드가 눈에 들어온 거죠. 뭔가를 만들 때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있는데 첫째가 안전, 둘째가 기능, 셋째가 비용, 넷째가 멋이에요. 안전과 기능이 갖춰지면 멋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어요.

 

임대한 한옥을 1년에 걸쳐 리모델링했어요. 본인 소유가 아닌데 이처럼 공을 들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국에 오니 자가인지 임대인지 묻는 사람이 많더군요. 자기 집도 아닌데 뭘 그렇게 투자하냐면서요. 이해가 안 가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집은 제 얼굴이잖아요.

“한국에 오니 자가인지 임대인지 묻는 사람이 많더군요. 자기 집도 아닌데 뭘 그렇게 투자하냐면서요. 이해가 안 가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집은 제 얼굴이잖아요.”

현실적인 문제 아닐까요? 전셋집이나 월셋집은 주인 허락 없이 고치기 어려우니까요.

결국 다 핑계라고 봐요.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미국에서도 30년 넘게 임대 아파트에 살았어요. 오두막처럼 아담한 집을 하나하나 고치면서 집수리에 유용한 기술들을 배울 수 있었죠. 아파트에 살면서 단독주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고요. 그래야 나중에 넓은 집이 생겼을 때 그간 갈고닦은 취향을 펼칠 수 있거든요.

 

싱크대부터 그릇장, 서랍, 양념 보관함까지 모두 직접 디자인했어요. 기성품을 쓰지 않고 굳이 손수 만드는 이유가 뭔가요?

제가 찾는 물건이 시장에 없으니까요. 기성품은 치수가 딱 안 맞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사소한 어긋남 때문에 사람이 집에 끌려다니게 돼요. 내 집이지만 사실상 내 집이 아닌 거죠.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면서 수많은 물건을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생각한 게 있어요.아파트를 짓는 회사가 그 아파트 환경에 맞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팔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선반이나 가전제품 같은 것들이요.

당신이 직접 만든 물건 중 아파트에 적용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럼요.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단 잠금장치도 그렇고, 세탁기 옆 자투리 공간에 짜 넣은 이동식 서랍도 을지로 철물 공장에서 쉽게 제작 가능해요. 이 집에 제가 만든 물건이 80개쯤 되는데 그중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더 유용한 것들이에요.제 아이디어는 늘 작은 공간에서 출발해왔으니까요.

 

인테리어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수납이죠. 사람이 좀 멋있게 살려면 집에 여분의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려면 숨길 건 숨겨두고, 내보일 건 내보이는 기술이 필요해요. 5평짜리 원룸도 수납만 잘하면 20평짜리 아파트처럼 쓸 수 있습니다.

 

대문 옆에 ‘아폴로니아(Apollonia)’라는 명패가 붙어있어요. 무슨 뜻인가요?

고대 그리스에 있던 철학자의 도시 아폴로니아처럼 이 집이 사람들의 활기찬 아지트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에요. 집에 이름을 붙여주면 더 자기 공간이 되고 애정이 생기니까요.

 

‘아폴로니아’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요?

2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사이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근데 제가 보기엔 걔들이 더 늙었어요. (웃음) 모임 주제는 그때그때 달라요. 제가 직접 만든 요리에 각자 가져온 샴페인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치킨 시켜 먹기도 하고요.

“저는 제가 가진 걸 나누며 사는 게 좋아요.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집이고요. 나이가 들수록 여럿이 모여서 시시덕거릴 수 있는 아지트가 필요해요.”

집은 사적인 공간이기도 한데 무시로 드나드는 손님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나요?

저는 제가 가진 걸 나누며 사는 게 좋아요.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집이고요. 나이가 들수록 여럿이 모여서 시시덕거릴 수 있는 아지트가 필요해요.

 

집을 아지트로 만드는 당신만의 기술이 있다면요?

동선을 잘 짜는 게 중요해요. 집이 아무리 커도 손님들은 늘 식탁 주변에서만 놀잖아요. 그래서 침실로 쓸 작은방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방은 모두 터서 주방과 다이닝룸으로 꾸몄어요. 본래 있던 기둥을 없애고 파티션을 유리로 바꾸니 좁은 한옥이 두 배로 넓어졌죠. 파티션을 유리로 만든 건 다른 목적도 있어요. 손님이 왔을 때 누가 어디 있는지 다 보이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야 아이를 데려온 손님도 안심하고 놀 수 있죠.

<쓸모 인류>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어요. ‘어른의 쓸모에 대해 묻다’라는 부제가 인상적이에요.

그전까지 ‘쓸모’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바깥에서 붙여준 수식어죠. 지금도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해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도 있나 싶어서요. (웃음) 저는 해야 할 일이 보이면 그냥 해요. 스스로 몸을 움직여 제 쓸모를 찾아 나서는 거죠.요리도, DIY도 모두 그렇게 시작한 일이에요.

 

지금도 ‘어른의 쓸모’를 위해 연마하는 기술이 있나요?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기사 자격시험을 치르는 중이에요.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해 사회와 기업과 환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죠. 아파트만 해도 새로 짓는 것보다 본래 있던 걸 고쳐 쓰는 게 더 효율적이잖아요? 그런 걸 공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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