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펜트하우스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시인의 펜트하우스
시인, 문학 편집자 김민정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김민정은 등단 20년 차 시인이자 21년 경력의 편집자다.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고, 출판사 ‘난다’ 대표이자 ‘문학동네 시인선’ 편집자로 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직장인 파주출판단지를 지척에 둔 그의 펜트하우스는 당연히 책의 전당이다. 최근 서촌 작업실로 옮긴 장서들을 제하고도 족히 2만 권이 넘는다. 그럼에도 이 명랑한 시인은 초야에 묻혀 사는 문인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 편집자 김민정의 펜트하우스
문학 편집자 김민정의 펜트하우스

와. 옥상을 장미 정원으로 꾸몄어요.

처음엔 대나무 마흔 쪽을 심었는데 겨울에 다 얼어 죽었어요.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안 키우다가 지난해에 큰맘 먹고 장미 묘목 열 그루를 데려왔는데 그게 그새 이렇게 컸네요.

 

집 안에 책이 정말 많아요. 이사할 때 힘드셨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견적 내는 분이 그러더라고요, 책짐이 이 정도면 몽골 사람 써야 한다고. 그러더니 정말 몽골 남자 다섯 분을 보내왔어요. 순박한 사람들이 땀 뻘뻘 흘리면서 고생하는데 미안해 죽겠더라고요. 나중에 헌책방 열어서 다 싼값에 팔려고요. 간판 이름도 벌써 정해놨어요.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라고.

“동네 특유의 ‘제멋대로’ 정서가 있어요. 조금만 걸어도 논두렁이 나오는, 시골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요.”

5년째 파주에 살고 있어요. 회사와 가깝다는 것 말고, 특별히 이 동네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집 뒤편에 전원주택 단지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각각 달라요. 버섯처럼 생긴 집도 있고 원통형으로 지은 곳도 있고. 서울 사는 사람들이 세컨드 하우스로 짓다 보니 유행 상관없이 내키는 대로 지은 거죠. 전 그게 참 좋더라고요. 내 맘대로 살겠다는 그 태도요. 동네 특유의 ‘제멋대로’ 정서가 있어요. 조금만 걸어도 논두렁이 나오는, 시골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요.

 

집에 그림이 많은데 따로 수집하는 건가요?

아유, 제가 그럴 돈이 어디 있겠어요. 인연이 닿은 작가들 작품을 한두 점씩 사다 보니 이만큼 모인 것뿐이에요. 예전에 화가들이 문인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복층 벽에 걸쳐둔 그림 둘은 당시 참여 작가 중 한 분인 이상선 선생님한테 구입한 거예요. 반대편에 걸린 커플 그림은 제가 편집한 박준 시인 산문집 표지로 썼던 회화고요. 작가인 기드온 루빈에게 직접 구매했는데 고맙게도 액자까지 끼워 보내왔어요.

 

바닥을 에폭시로 마감한 게 독특해요. 가정집에서는 보기 드문 선택인데요.

제가 대리석을 워낙 싫어해서, 이사 오자마자 바닥부터 뜯었어요. 거실 벽이 대리석인 것도 마음에 걸려서 목수한테 벽을 덮을 나무를 구해달라고 부탁했죠. 며칠 후 목수가 떡갈나무 상판 석 장을 배에 실어 왔는데 받아보니 여기저기 막 썩은 거예요. 그래서 썩은 부분을 다 파냈더니 저렇게 물고기 모양이 됐어요. 목수도 막상 만들고 나니 아까운지 팔기 싫다고. (웃음)

문학 편집자 김민정의 펜트하우스
문학 편집자 김민정의 펜트하우스
문학 편집자 김민정의 펜트하우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라는 그의 시집 제목처럼 아름답고 쓸모없어 차마 버리지 못한 온갖 사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반 위, 책장 사이에 뭉치뭉치 모여있다.

찰흙덩이를 엮은 모빌, 청동 거울, 중국산 도자 항아리. 김민정의 집에는 뜬금없는 물건이 참 많다. 동료 선후배 문인들이 선물한 것, 반대로 그 자신이 그들에게 선물하듯 구입한 것, 요컨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라는 그의 시집 제목처럼 아름답고 쓸모없어 차마 버리지 못한 온갖 사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반 위, 책장 사이에 뭉치뭉치 모여있다. 각각에 얽힌 사연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지, 다 듣기로 치면 천일야화도 부족할 지경이다. 시대의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문학평론가는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 럭셔리한 삶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면 김민정의 집은 럭셔리 그 자체다.

삼베 커튼, 꼭두 인형 등 집에 죽음을 연상케 하는 물건이 많아요. 알고 계셨어요?

그럼요. 농담처럼 무당집이라고 부르는걸요. 제가 명품이나 브랜드에는 큰 관심이 없는데 흙이나 나무로 만든 물건에는 이상하게 환장을 해요. 제 취향을 아는 사람들이 그런 물건을 자주 선물하다 보니 집에 저절로 그런 기운이 생긴 듯해요. 사실 집에 제가 산 물건이 별로 없거든요.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가리키며) 이건 송재학 시인이 준 청동 거울이고요. 이건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이 경북 청송 갔다가 선물로 주신 나무 조각품이에요.

 

문인들에게 받은 선물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만 꼽는다면요?

정옥관 시인이 준 중국산 도자 항아리요. 왕의 무덤에서 출토된 물건이라는데 동봉한 엽서에 적힌 메시지가 그야말로 깼어요. “민정 씨, 마음에 안 들면 깨버리세요.” 시인들 참 웃기죠?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인가요?

심각하게요. 일하면서 문인들한테 받은 쪽지며 포스트잇까지 항아리에 담아둘 정도예요. 언젠가 식당에서 후식으로 양갱이 나왔는데 바닥에 깔린 유산지를 집으로 가져온 적도 있어요. 양갱이 놓여 있던 자국이 참 예뻐서요.

 

어떤 집에서 죽고 싶으세요?

제가 직접 지은 집이요. 정원으로 둘러싸인, 흙으로 만든 단독주택. 전 주로 1층에서 생활하니까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면 좋겠네요. 음, 너무 무덤 같으려나요. 어차피 죽을 집인데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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