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형 살롱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21세기 한국형 살롱
아베끄 레브 대표 / 도예 작가 허진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모두 잠든 밤, 가마가 있는 베란다에서 흙을 주무르고 물레를 돌리며 하루 동안 딱딱해진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 살림하는 아내이자 육아하는 엄마인 허진에게 이 작은 베란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방’이다. ‘함께하는 마음’이라는 의미로 ‘아베끄 레브’라 이름 붙인 그의 집에는 이따금 기분 좋은 수다가 맴돈다. 그에게 도자기를 배우러 알음알음 찾아온 생면부지의 수강생부터 자신의 취미를 이웃과 공유하기 위해 찾아온 동네 주민들까지 모두 함께다.

원래는 인테리어와 건축 일을 하셨다고요. 어쩌다 도자기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요?

결혼 전까지 주택, 호텔, 백화점 등 다양한 공간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진행했어요. 그러다 한국이 좀 답답하게 느껴져서 프랑스로 유학을 하러 갔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계획보다 일찍 귀국했죠. 결혼 후에는 삼청동에 있는 설계 사무소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고요. 근데 건축 일이 워낙 고되다 보니 임신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모든 일을 접고 아이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어요. 시험관도 하고 유산도 겪으면서요. 아이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서 친구들도 멀리하고 근 10년 동안 꽃꽂이, 퀼트 등 취미활동에만 전념했는데, 그러다 만난 게 도자기예요.

 

도자기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제가 뭐든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요. 도자기는 달랐어요.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는 도자기를 기다리는 일이 마치 내 속에 품은 아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더라고요. 팔찌나 귀걸이 같은 장신구부터 그릇, 의자, 테이블까지 만들 수 있는 품목도 무궁무진했고요. 당시에는 강북에 살고 있었는데 유학 시절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프랑스인들이 사는 서래 마을 근처에 공방을 차리고 하루 10시간씩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노력할 때는 안 생기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찾아왔죠.

아베끄 레브 대표 도예 작가 허진
도예 작가 허진의 집 - 도자기들

밖에 있던 공방을 집으로 들인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이가 커가면서,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일 없이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이사한 서래 마을 빌라에 적당한 베란다가 있었고요.

 

도자기용 가마를 가정집에 설치하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눈으로 보고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안 그래도 위층에 도예 작가 한 분이 이사 오셨는데, 우리 집에 가마가 있다니까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웃음) 도예 작가들이 집에서 작업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가마 때문이에요. 가정집에서는 가스가마가 아닌 전기가마를 써야 하는데 그러면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거든요. 온도가 1250도까지 올라가니 주변 공기도 엄청나게 뜨거워지고요. 그마저도 낮에는 작업이 어렵죠. 제가 건물 전기를 많이 끌어다 쓰면 다른 집에 폐를 끼치게 될 테니까요.

 

집에서 소수 정예로 도자기 강습을 진행하고 있어요. 딸이 아직 어린데 수업에 방해되지 않나요?

전혀요. 오히려 딸아이가 수강생을 가르칠 정도인걸요. 아이가 100일도 채 되기 전부터 공방에 데리고 다녔어요. 집 밖에서 공방을 운영할 때부터요. 덕분에 애가 낯가림이 전혀 없어요. (웃음)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일 없이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이사한 서래 마을 빌라에 적당한 베란다가 있었고요.”
도예 작가 허진의 작업하는 모습
도예 작가 허진의 작업하는 모습
도예 작가 허진의 작업하는 모습

작업부터 수업까지 모든 걸 집에서 소화하고 있는데 생활과 일이 분리되어 있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은 없나요?

제가 10년 가까이 두문불출했잖아요. 그러면서 평생 생각해야 할 것들을 다 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중이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힘든 일이 별로 없어요. 그동안 마음고생 했던 거에 비하면 도자기나 육아는 제게 너무 쉬워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일이니까요.

 

공방 이름인 ‘아베끄 레브’는 무슨 뜻인가요?

‘함께’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베끄 Avec’와 ‘마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레브 lev’의 합성어예요. 아베끄 레브는 공방 이름인 동시에 미래의 제 브랜드 이름이기도 해요. 인테리어 일을 할 때부터 저만의 리빙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었거든요. 좀 더 나이가 들면 아베끄 레브 제품으로 풀 세팅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설계한 집안을, 제가 만든 커튼과 제가 만든 세면 볼로 채우는 거죠. 그동안 배운 기술을 모두 적용해서요.

도예 작가 허진의 집

집에서 지인들과 함께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다양한 분야의 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가정집을 살롱처럼 개방하는 ‘인터스타일 다이닝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고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들의 살롱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제 주변에도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우리 집을 개방하면 어떨까 싶었죠. 꽃꽂이, 요리, 사진 등 각자가 잘하는 걸 서로에게 가르쳐주면서요. 근데 지인들만 부르다 보니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때 만난 게 인터스타일 다이닝 프로젝트예요. 프로젝트 취지를 처음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정확히 제가 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어서요. 한편으로는 제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고요.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가 정착하면서 동네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예요. 그런 맥락에서 아베끄 레브가 어떤 대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공방을 운영하고 집을 개방하면서 우리 동네에도 괜찮은 이웃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말마다 함께 산책하는 동네 친구도 생겼고요. 저도 아파트에 오래 살았는데, 사실 요즘은 아파트나 빌라나 마찬가지예요. 이웃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죠.

 

공유 경제가 활발해지면서 집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작가님은 이런 개념에 일찍부터 눈을 뜬 느낌이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은 것 같아요. 인테리어로 멋지게 수리한 집이 있는데도 아빠는 회사로, 엄마는 브런치 카페로, 아이들은 학원으로 나가는 형편이잖아요. 가족이 집안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죠. 집에서 다 같이 마음을 나누는 삶을 통해 ‘워라밸’을 누릴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들의 살롱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제 주변에도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우리 집을 개방하면 어떨까 싶었죠.”


Related Posts

눌 스턴 호텔 외
도시큐레이션홈데코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박영택
라이프스타일큐레이션홈데코
소전서림 관장 황보유미
도시커뮤니티큐레이션
VILLIV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VILLIV NEWSLETTER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