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손수 지은 내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건축가가 손수 지은 내 집
건축가 박진택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 건축가에게 그것은 단순한 집 짓기를 넘어 자신의 철학을 A부터 Z까지 손수 실천하는 일이다. 박진택에게 ‘짓기’의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오롯이 목재와 유리로만 지은 그의 양평 국수리 주택에서 건축과 집에 대한 뼈 있는 수다를 나누었다.

집 안에 가구가 하나도 없어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나요?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마음에 드는 가구를 못 찾아서요. 텅 빈 공간에 살아보니 이것도 나름 괜찮아서 일단 이렇게 살고 있어요.

 

누가 보면 모델하우스인 줄 알겠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 눈에는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하나 봐요. 지나가면서 ‘아직 짓고 있는 중이냐’고 묻는 주민도 있어요.(웃음) 살면서 조금씩 손볼 생각으로 지은 집이니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죠.

 

풍경이 환히 보이는 사랑방이 고적한 게 참 좋네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고요.

고맙습니다. 사랑방은 집의 구심점이라는 생각에 정방형으로 내고, 삼면은 유리로 처리했어요. 친구나 가족이 모여 앉았을 때 사람과 방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이 느껴졌으면 해서요. 제게 이 사랑방은 영원성을 추구하는 공간이에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통해 역설적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안식처를 꿈꾸는 게 인간이니까요.

“사랑방은 집의 구심점이라는 생각에 정방형으로 짓고, 삼면은 유리로 처리했어요. 친구나 가족이 모여 앉았을 때 사람과 방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이 느껴졌으면 해서요.”

설계부터 토목, 마감 공사까지 모두 직접 했다고 들었어요. 해보니 소감이 어떤가요?

뼈대를 만들고 나무를 재단하는 것까지는 컴퓨터를 쓰니까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시공이 힘들었어요. 경험이 전혀 없으니 뭐가 되고 안 되는지를 일일이 몸으로 부딪쳐서 깨닫는 수밖에요. 덕분에 자주 다치기도 했지만 그만큼 배운 게 많아요. 방수하는 방법이라든지 창문을 잘 붙이는 방법 같은 거요.

 

삼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벽도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마감했어요. 건물 모서리에 창을 낼 정도로 유리도 많이 썼고요. 내구성에 문제는 없을까요?

그렇잖아도 집 짓기 전에 조사를 좀 했어요. 함양에 10년 넘은 삼나무 집이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상태가 괜찮더라고요. 짧게나마 제가 살아본 경험을 덧붙이자면 의외로 나무가 내구성이 강해요.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기는 해도 기초만 잘 다져두면 쉽게 삭거나 썩지 않아요. 유리도 불안해하는 분이 많은데 예전에 비해 성능이 많이 좋아졌어요. 얼마 전에 왔던 태풍 링링도 너끈히 버텨냈을 정도예요.

건축가가 자기 집을 직접 짓다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만한 견본이 또 있을까 싶어요.

실은 그동안 저한테 의뢰가 전혀 안 들어왔어요. 건축가는 ‘입봉’이란 걸 해야 하거든요. 저한테는 이 집이 나름의 입봉이었던 셈이죠. 다행히 집을 짓고 나서 의뢰가 꽤 들어왔어요. 나무 집의 내구성에 의심을 갖고 있다가 제가 사는 걸 보고 마음을 정한 분도 계시고요.

 

집을 지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건축의 힘, 공간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구조적인 질서를 통해서요. 흔히 바닥, 면(벽), 지붕을 건축의 기본 요소라 부르는데, 너무 기본적인 이야기라 오히려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제 생각에 이 집은 그런 기본 요소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집인 것 같아요. ‘짓기’의 행위를 보여주는 집, 구조와 비례가 다 드러나 ‘지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집이요.

 

처마, 서까래 등 한옥의 요소를 응용한 부분이 여러 곳 눈에 띄는데 그럼에도 전통적인 느낌은 아니에요. 일본의 목조 주택과도 거리가 멀고요.

제가 좋아하는 피드백 중 하나예요. 이런저런 건축이 연상되긴 하지만 딱히 어떤 카테고리에 넣기는 애매한 부분,  그거야말로 제가 의도한 바니까요. 한옥의 요소가 느껴지는 건 당연해요. 한국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난 것을 보고 배우기 마련이니까요. 단, 한옥의 장점을 차용하되 조형적으로는 다르게 구현하고 싶었어요. 곰국을 먹을 때 꼭 뼈다귀가 눈에 보여야 국물 맛이 느껴지는 게 아니듯이요.

“제 생각에 이 집은 그런 기본 요소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집인 것 같아요. ‘짓기’의 행위를 보여주는 집, 구조와 비례가 다 드러나 있어 ‘지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집이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과 그림자가 아름다워요. 어떤 건축가를 좋아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데요.

루이스 칸요. 공부하면서 그의 작품을 가장 깊게 봤고 그의 글도 가장 많이 읽었어요. 이 집 역시 루이스 칸의 영향이 크죠. 그에게 빛은 존재를 밝혀주고 축복하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해요.

 

청계산과 남한강이 보이는 양평 국수리에 자리 잡았어요. 집을 지을 때 풍수도 고려했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흔히 풍수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느낌이 들어서 좋긴 했어요. 무엇보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살던 동네랑 느낌이 비슷해서 그 점이 참 좋았죠. 얕은 경사면에 집과 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는 풍경이 꼭 에섹스에 있는 작은 마을 같더라고요. 여기로 이사 오기 전까지 과천에 있는 오래된 저층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도 동네 특유의 친근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재개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지요.

건축가로서 우리나라 아파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요즘 아파트들, 되게 잘 짓는 것 같아요. 가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와, 수준이 이 정도까지 왔구나’ 싶어서요. 딱 하나 아쉬운 게 있기는 해요. 내장재요. 바닥에 깔거나 벽에다 붙이는 재료가 좀 인공적인 느낌이에요. 너무 내구성만 고려한다고 할까요. 효율도 좋지만 재료의 촉감에도 신경 썼으면 해요. 종이나 나무로도 얼마든지 튼튼하게 지을 수 있거든요. 건물의 뼈대 자체를 나무로 세우는 것도 신선하겠네요. 요즘 해외에서는 15층짜리 아파트도 목조로 올리곤 하니까요.

 

1층 테라조 바닥에 옥자갈로 가족의 별자리를 새겼어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나요?

만에 하나 불이 나거나 전쟁이 터지더라도 여기 제가 만든 집이 있었다는 흔적 하나쯤은 남아 있었으면 해서요. 왜 로마나 폼페이에 가보면 수 세기 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그런 바람을 담아서.(웃음)

 

다시 한번 집을 짓는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건축에서 ‘짓기’라는 행위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도 재료마다 표현할 수 있는 게 각각 다르고요. 나무는 한번 해봤으니 다른 재료에 도전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콘크리트나 철골이나 완전히 색다른 재료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집을 지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자하 하디드의 DDP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것처럼 ‘세상에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걸 건축으로 한번 말해보고 싶어요. 놀라운 동시에 아름답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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