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산 집을 리뉴얼한 특별한 이유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10년 산 집을 리뉴얼한 특별한 이유
디자이너 하이메 베리에스타인

Text | Anna Gye
Photos provided by Jaime Beriestain Design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편집숍과 카페를 운영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하이메 베리에스타인 Jaime Beriestain. 왁자지껄한 물건이 가득한 가게와 달리 그의 집에서는 물건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바르셀로나의 유명 관광지 카사 밀라 옆에 당신의 가게가 있어 잠시 들렀던 기억이 나요. 카페의 인테리어가 독특했을 뿐 아니라 편집숍에는 종이 봉투부터 디자인 체어까지 탐나는 물건이 가득했어요.

2013년 카페를 오픈한 후 편집숍을 열었어요. 제 시골 농장에서 직접 기른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카페처럼, 로컬 재료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죠. 모든 물건은 제가 직접 사용해보고 만족했던 것들이에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작약, 무화과, 스파이스 향의 룸 스프레이와 향초예요. 카페에서 사용하는 올리브 오일도 많이 팔려요. 이제 단골들은 ‘하이메네에서 만나자’란 말을 해요. 집처럼 편안하게 들러 시간을 보내고 가는 거죠. 반려동물도 환영이고요.

 

반면 당신의 집은 완벽한 반전이네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대담하게 화이트 컬러를 사용한 데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해요. 물건은 다 어디로 갔나요?

몇 달 전 내부를 리모델링했어요. 건축물의 구조, 재질, 형태 등 본질만 남기고 공간을 꾸미는 물건은 없앤, 하얀 상자 같은 집을 만들고 싶었죠. 건강한 피부에서 자연스럽게 광이 나듯 벽, 바닥, 천장 등 마감재에 신경을 쓰고 힘을 준 공간에서는 깨끗함 이상의 정제된 분위기가 흐르죠. 물건은 대부분 없앴어요. 만족을 위한 것인지 탐욕을 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물건이 드러나더군요. 눈길보다 마음이 끌리는 물건만 집 안에 두었어요. 의식주에 필요한 일부와 아트 작품 정도. 아트 작품은 물건보다 더 많은 감동과 여운을 주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집 또한 성숙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자녀와 함께 살다가 자녀들이 독립해 나가면 부부의 노후를 위한 리모델링이 필요한 것이죠. 또 은퇴를 하면 공간 쓰임이 달라져야겠죠. 누구에게나 두 번째 집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갑자기 리모델링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올해 제 나이가 50살이에요. 이 집에서는 10년 살았고요. 집은 삶의 좌표와 같아요. 집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죠.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집은 권력을 과시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말년을 호숫가가 바로 보이는 작은 집에 살았잖아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집 또한 성숙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자녀와 함께 살다가 자녀들이 독립해 나가면 부부의 노후를 위한 리모델링이 필요한 것이죠. 또 은퇴를 하면 공간 쓰임이 달라져야겠죠. 누구에게나 두 번째 집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두 번째 집이라는 뜻은 나이가 듦에 따라 집 안 인테리어를 바꿔야 한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10년을 주기로 해도 좋겠죠. 사람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삶의 패턴이 끊임없이 변하잖아요. 집은 그런 변화를 유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요즘처럼 집에 머물며 휴식을 즐기는 스테이베케이션을 원하는 이들은 집을 호텔처럼 꾸밀 수도 있겠죠. 제 클라이언트 중 한 사람은 방 대신 거실만 한 크기의 욕실을 만들어 완벽한 휴식처로 꾸미길 요청하기도 했어요.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집에서 휴식과 안정을 취하길 원하죠. 앞으로 집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취향과 여유를 위한 공간으로 변할 거예요. 개인에 따라 더욱 세분되고, 취향에 따라 더욱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변하는 것이죠.

50대를 맞아 당신이 새롭게 변화시킨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50대가 되면 삶의 노하우도 쌓이고 취향도 명백해지니 원하는 집의 형태와 규모가 정확히 보여요. 저는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벗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살고 싶었고 그런 바람에 따라 하얀 상자 같은 집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화이트 컬러로 통일한 덕분에 공간이 넓어 보이면서 제가 좋아하는 아트 작품이 두드러져 보이죠. 본래 정리 정돈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백색 공간에 살면서 더욱 단정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게 돼요.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도 들고요. 한낮에 빛이 스며들면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죠.

 

그럼 10년 후 또 달라진 집의 모습은 어떨까요?

아마 휴식이 테마가 될 거예요. 라운지, 욕실, 침실 등과 같이 벽에 따른 공간 구분 없이 집 전체를 하나의 스튜디오처럼 완벽한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보고 싶어요. 잠을 청하면서 책, 음악, 미술 등을 즐길 수도 있는 동굴 같은 장소.

 

나이가 들수록 힘도 빠지고 평범해지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열심히 일하지 마세요. 나이가 들수록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에 도전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죠. 저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카페와 편집숍도 열고, 제 집도 열심히 개조했죠. 샐러리맨도 마찬가지예요. 직업에만 몰두하다 보면 은퇴 후에는 집 밖에 나가질 못해요.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50대, 60대, 70대가 될수록 자신의 취향과 기호를 더욱 뚜렷이 만들고 싶다면 엉뚱한 짓을 많이 하세요.

“열심히 일하지 마세요. (중략) 직업에만 몰두하다 보면 은퇴 후에는 집 밖에 나가질 못해요. 다양한 분야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일하게 부엌 공간은 전체적으로 황동 컬러를 입혔어요. 솔직히 보기에는 멋지지만 막상 이곳에서 요리하는 것은 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전혀요. 지저분해도 괜찮아요. 원래 부엌 가구는 실용적이고 잘 닦이는 자재가 필수예요. 리모델링 전 원래 부엌 가구는 온통 화이트 컬러였어요! 변화를 주고 싶어 화이트 컬러 가구 위에 부식된 것 같은 황동 컬러 시트를 입힌 것이죠. 물과 기름이 튀어도 말끔히 닦아낼 수 있도록 방수제, 코팅제를 여러 차례 발랐고요. 부엌 가구는 같은 장소에 놓인 멕시코 아티스트 보스코 소디 Bosco Sodi의 세라믹 찰흙 작품 ‘Untitled’(2016)와 궁합을 맞췄어요. 자주 가족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여는데 제가 직접 요리하죠.

칠레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떻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정착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살아가게 되었나요?

엄밀히 따지면 고향 칠레보다 스페인에서 산 시간이 더 많아요. 2000년 인테리어 디자인 석사 과정을 공부하러 바르셀로나에 왔어요. 졸업 후 힐튼 호텔 디자인 프로젝트 공모전에 참가했는데 운 좋게 1등을 했죠. 곧바로 프로젝트에 착수하느라 사무실을 열지도 못하고 집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바로 하이메 베리에스타인 디자인 스튜디오의 시작이죠. 그리고 쉴 틈 없이 프로젝트가 이어졌어요. 2013년 카페와 편집숍을 낸 뒤 일을 조금씩 줄이고 있지만, 바쁜 일정 덕분에 한 해가 너무 빠르게 흘러가요.

 

한국 아파트 인테리어의 한계점은 천장이 낮고 공간이 규격화되었다는 점이에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팁이 있을까요?

바닥에 신경을 써야 해요. 빛이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반사 소재를 사용할 수도 있고 바닥, 벽, 천장을 일체화시키는 것도 방법입니다. 벽 전체를 거울로 감싸는 것도 좋아요.가구 높이는 전체적으로 낮을수록 좋고 가능하면 가벼운 소재를 선택하세요.

 

요즘 50대는 중년이 아닌 청년이라고 하더군요. 50대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평화롭게 보내고 싶지만 그렇다고 심심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바쁜 호흡으로 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일을 놓아버리면 그때부터 늙는 거예요. 집도 간결해지고 마음도 가벼워졌으니 원점으로 돌아간 것처럼 젊었을 때 두려워했던 일을 시작해볼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오늘과 내일이 매일 달라지기를, 지금 모습이 예전에 비해 늘 나아지기를 바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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