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파리지엔 셰프로 살아가기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이상한 파리지엔 셰프로 살아가기
셰프 이수

Text | Anna Gye
Photography | Mineun Kim

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 ‘캠 임포트 익스포트 C.A.M Import Export’는 수상한 곳이다. ‘더러운 음식과 비린내 나는 와인’이 프로필인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예약을 받고, 메뉴는 날씨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실내는 언더그라운드 감성으로 가득하며, 주방에는 긴 머리를 휘날리는 한국인 셰프 이수 Esu가 있다.

오픈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입소문이 자자해요.

다행이죠. 노력도 했지만 운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비즈니스 파트너인 가구 디자이너 필 유엘 Phil Euell과 함께 레스토랑을 오픈한 시기가 파리 컬렉션이 막 시작한 때였거든요. 패션 피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고 소문이 나면서 <GQ>, <보그> 등 유명 패션지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죠.

 

레스토랑을 연 계기가 궁금해요. 당시 파리의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파리로 온 지 1년 정도 됐을 때 스페인의 레스토랑으로 일자리를 옮겨볼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친구로 지내던 필이 인스타그램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자는 메시지를 보내왔죠.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그런데 파리로 돌아와 필과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뀌었죠. 대신 조건이 있었어요. 돈 벌 생각은 말고 셰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도록 할 것.

 

셰프 마음대로 하는 요리는 어떤 것인가요? ‘더러운 음식과 비린내 나는 와인’이란 인스타그램 프로필 문구를 보니 더욱 호기심이 들던데요.

‘진정한 맛(authentic taste)’이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유머예요.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맛을 추구한다는 말도 되고요. 요리 스타일은 딱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없어요. 한식도 프렌치도 아니에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한식 요소가 많이 가미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이 혼합된 ‘파리지엔 셰프 이수 스타일’이죠. 예를 들어 누룽지 통닭은 누룽지에 치킨, 부라토 치즈, 페스토 소스를 곁들이는 식이에요. 절인 고등어에 생강과 채소를 올린 요리는 어린 시절 과메기를 먹던 기억에서 응용한 것이고요. 메뉴는 당일 들이는 재료에 따라 달라져요. 가게를 오픈하기 전 재래 시장에 가는데, 맛이 최고로 오른 생선이나 살이 꽉 찬 조개 같은 걸 보면 이 재료에 집중해보자는 생각을 해요.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편이라 날씨에 따라 메뉴가 변하기도 하고요.

“한식 메뉴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대신 한식을 즐길 때 일어나는 행위와 태도를 소개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한 상 차림이라든지, 쌈을 싸 먹는 것이라든지, 찌개를 나누어 먹는 행위 같은 것.”

종잡을 수 없는 메뉴만큼 레스토랑 분위기도 알쏭달쏭하네요. 기념품 숍 같기도 하고 책방 같기도 하고.(레스토랑 한쪽 벽에는 독립 서적과 아트북이 진열되어 있다.) 너덜너덜해진 포스터가 붙어 있는 시멘트 벽, 페인트가 벗겨진 테이블, 녹슨 간판 등등 독특한 요소가 넘쳐납니다.

필과 함께 공간을 꾸몄는데 편안하고 내추럴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음식은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고 공간은 자연스럽게 세월을 담는다’ 이런 명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맛은 메뉴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에요. 메뉴뿐 아니라 레스토랑 분위기에서도 사람을 흥분시키는 요소가 있어야 하죠. 티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나름 신경 쓴 거예요.(웃음)

 

셰프로서 이력을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세요.

호주 르 코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호주에서 일하면서 아시안 트위스트, 모던 브리티시, 중국 요리 스타일을 배웠고 군대에서는 한식을 배웠어요. 홍콩에서는 베트남 음식을, 파리에서는 파리 스타일의 이탈리아 음식을 소개하다 이곳에서는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저만의 스타일로 요리하고 있어요.

 

군대에서 한식을 배웠다고요?

군대 취사병 시절에 제대로 된 한식을 배웠죠. 그리고 올여름 정관 스님을 만나 사찰 음식을 익히기도 했어요. 몇 달 동안 수행자처럼 명상, 밭일, 공양 등을 하며 절에서 지냈는데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요리는 수행의 일부였죠. 음식은 정성과 손맛이 전부인데 이를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아야 하고, 그런 노력 또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이후 캠 임포트 익스포트 메뉴에 큰 변화가 생겼겠네요?

네. 재료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재료의 원초적 맛에 손맛을 더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죠. 조리하되 조리하지 않은 것 같은 음식. 맛이 넘치되 맛이 전부가 아닌 음식.

 

레스토랑에서 한식을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어떤 메뉴를 시도해보고 싶나요?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한식 메뉴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대신 한식을 즐길 때 일어나는 행위와 태도를 소개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한 상 차림이라든지, 쌈을 싸 먹는 것이라든지, 찌개를 나누어 먹는 행위 같은 것.

파리지엔 셰프로 사는 삶은 어떤가요?

극단의 장단점이 있어요. 셰프로서 파리는 천국이에요. 호기심 넘치게 하는 식재료가 가득하고, 그걸 이용한 요리를 기다리는 미식가들이 줄을 서 있죠. 셰프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이에요. 단점이라면 대단한 재능을 가진 천재 셰프가 너무 많아요. 저희 레스토랑에도 많은 셰프들이 찾아오는데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우리는 음식을 먹고 사는 문제라 생각하는데 프랑스인들은 삶의 전부라 생각하죠. 프랑스 셰프는 생과 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로 음식을 대하고 치열하게 파고들죠.

 

조금 다른 측면에서 다시 물어본다면, 한국인으로서 파리지엔으로 사는 삶은 어때요?

파리지엔은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어요.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죠. 그런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이해하려다 보니 좀 예민해지기도 해요. 그런 여러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저의 감정을 살피게 돼요. 파리에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의 목소리를 찾고 싶은 것이죠. 시간이 갈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이 느껴져요. 한국 사람들은 상위 1%가 되기를 소망하는데 이는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존감이 부족하기에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고 돈으로나마 자존감의 허기를 메우려 하죠. 이곳에서는 ‘나만의 목소리’가 중요해요. 그만큼 각자의 목소리가 혼재하기에 매일이 다이내믹하죠. 저와 잘 맞는 도시예요.

 

그럼 파리에 오랫동안 살고 싶나요?

친구가 많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이유로 정체되고 싶지는 않아요. 전 평생 이방인으로 살고 싶어요. 어느 나라, 어느 분야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 말이죠.

 

전 세계를 떠돌면서 살고 싶다는 뜻인가요?

이방인이란 말은 여러 나라를 떠돌며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고, 한곳에 살더라도 생활자가 아닌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는 말이기도 해요. 전 익숙해지는 것이 불편해요. 왜냐면 제 안에 갇히는 것 같거든요.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고 답을 얻고 싶다면 자기 바깥에서 답을 구해야 해요.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불쑥 끼어들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뜻밖의 낯선 풍경이 생기고, 그런 우연과 필연의 과정을 통해 제 삶이 여러 층으로 쌓였으면 해요. 평온함과 두려움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전 두려움을 택하는 편이에요. 언젠가 떠날 수 있다면 떠날 거예요.

 

지금 떠난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요. 얼마 전 여행한 곳인데 파리만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멋진 도시더라고요.

“앞날을 바라보며 충실하게 계획을 세우는 데 힘을 쏟기보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좋은 거죠. 파리에는 이런 태도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사람이 많아요.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경작할 줄 아는 사람 말이죠.”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니 당신의 정체 또한 알쏭달쏭해지는데요.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과 비슷한 것 같아요. 몽상가적 기질이 많은 편이에요.(웃음) 셰프를 그만두고 포토그래퍼나 소설가가 되어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의 이런 태도가 별 야망 없이 보일 테지만 저는 제 감정에 충실히 사는 것이 좋아요. 문제가 생겨도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성질의 문제인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돼요. 문제에 깊이 매몰돼 있으면 스스로가 문제에 빠지죠. 물처럼 생각이 흘러가도록 두는 거예요. 그냥 오늘이 행복했으면 해요. 앞날을 바라보며 충실하게 계획을 세우는 데 힘을 쏟기보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좋은 거죠. 파리에는 이런 태도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사람이 많아요.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경작할 줄 아는 사람 말이죠.

 

앞날이 불분명해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 젊은 나이인데 나이 든 사람처럼 인생에 대해 여유롭게 말하네요.

물론 저도 불안을 느껴요. 대신 불안이라는 감정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미래를 촘촘히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저처럼 24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방법도 있어요. 저는 후회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호주, 홍콩, 한국에서도 그랬고, 셰프로 매일 바쁘게, 주변과 어울리며 살고 있어요. 자기 발전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저를 성장시키죠. 오늘을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파리에 또 하나의 수상한 레스토랑을 연다면 어떤 공간이 될까요?

정관 스님은 어떤 채소는 손으로 세게 움켜쥐어 향을 뿌리고 어떤 것은 부드럽게 쥐어 향을 입혀 냈는데, 음식의 향과 질감이 모두 스님의 손에서 마무리되었죠. 손맛이 전부인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요. 손으로 찧고 빻고 자르는 등 어떤 노동적 행위로 맛을 끌어내는 요리. 파리지엔이라면 아마 그 섬세한 차이를 맛있게 음미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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