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의 연구실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수집가의 연구실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 박영택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작품을 보러 다니는 틈틈이 골동품 가게, 서점, 문방구 등을 들락거리며 취향에 맞는 물건을 끊임없이 수집한다. 토기, 백자, 옹기부터 안경집, 문진, 필통까지. 20년 동안 대학 연구실에 차곡차곡 쌓인 이 사물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 살아남아 그에게 온 것이다.

연구실에 토기가 정말 많아요.

따로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예전에 책이나 문구류를 주로 모았다면 요즘은 토기 수집에 열중하고 있어요. 특히 가야나 신라 시대에 제작한 작은 손잡이 잔요.

 

토기의 어떤 점이 마음을 끄나요?

토기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맛이 있어요. 흙을 구워 만든,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물건이니까요. 부드러운 흙빛에 몇 개의 선이 담백하게 둘러진 것도 좋고, 유약을 바르지 않아 거친 표면도 마음에 들어요. 손으로 빚어 저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도요. 토기를 수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예요. 웬만한 골동품은 제 형편에는 너무 비싸거든요. (작은 손잡이가 달린 잔을 들어 보이며) 그래도 이런 가야 토기는 하나에 30만 원 정도 해요. 15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가격이죠.

 

들어올 보니까 연구실 복도에 커다란 옹기가 늘어서 있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물건을 보관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지 않나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양평에 작은 공간 하나를 구했어요. 창고 같은 곳인데 내년에 그쪽으로 물건을 좀 옮기려고요. 전 이걸로 박물관을 차리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바라보고 즐기면 그걸로 족해요. 앞으로 10년 후면 정년인데, 그때가 되면 그동안 모은 토기와 옹기로 전시를 한번 열려고요. 그에 대한 책도 한 권 내고요. 그러고는 다 팔든가, 어디 기증하든가 할 생각이에요.

“작가의 작업실에 가면 대번에 느낌이 와요. 특별히 꾸민 공간이 아니어도, 하다못해 선반에 과일 하나 올려놓은 것만 봐도 그 사람이 가진 감각의 힘이 느껴지죠. 그런 걸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일상의 사물을 다룬 <수집 미학> 이어 가장 아끼는 골동품 60점을 추린 <앤티크 수집 미학> 출간했어요. 이처럼 물건에 대한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때마다 한 번씩 정리할 필요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게 제 본업이기도 하고요. 미술 평론이라는 건 뛰어난 시각 이미지를 찾아서 그것이 왜 뛰어난지 논리적으로 밝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동시대 현대미술에 대한 글을 주로 쓰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자주 가요. 선조가 만든 물건을 보면 미감이 정말 빼어나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의지 없이, 그저 지극정성으로 만든 물건이 오히려 마음을 움직인다고 할까요. 그럴 때면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개념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논리를 앞세우고, 필요 이상으로 심각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고. 저는 그게 약간 불만이에요. 이론이나 논리가 앞서더라도 그것이 조형적으로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수집이 본인 직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요. 반대로 직업이 수집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도 테고요.

서로 피드백 관계겠죠. 좋은 물건을 그냥 바라보는 거랑 내 돈 주고 사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요. 가짜도 좀 사보고, 바가지도 한번 써보고,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신중히 지갑을 열게 돼요. 그렇게 산 물건에는 그만큼 애정이 생기고요. 애정이 생긴 만큼 더 극진하게 바라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와요. 한마디로 안목 훈련이 되는 거죠. 그렇게 얻은 안목은 제가 동시대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데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책에 갇힌 지식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오랫동안 들여다본 것을 글로 쓰게 되니까요.

연구실에 처음 와본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놀라죠. 외부에서 작가들이 가끔 찾아오는데, 다들 이런 연구실은 처음 본다고 해요. 그럴 때면 약간 창피하기도 해요. 사실 여기가 인간적인 공간은 아니잖아요. 학생들이 면담하러 오기도 어렵고, 복도를 함께 쓰는 다른 교수들에게도 민폐고요. 제가 미쳤죠. 미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못 해요. 어휴(웃음)

 

저도 이런 연구실은 처음 봐요. 수집가의 공간이 대학교 안에 있는 모습 생경하고요.

제가 아기자기한 물건을 워낙 좋아해서요. 직업이 미술평론가라 그런지 돌아다니면서 끝없이 뭔가를 찾는 경향이 있어요. 저를 사로잡는 시각적 이미지를요.

 

전시 서문을 때는 반드시 해당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다고 한 인터뷰 내용 적이 있어요. 말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공간과 작품의 관계를 탐색한다는 점에서요.

작가는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려면 감각이 남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작업실에 가면 대번에 느낌이 와요. 특별히 꾸민 공간이 아니어도, 하다못해 선반에 과일 하나 올려놓은 것만 봐도 그 사람이 가진 감각의 힘이 느껴지죠. 그런 걸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실이 있나요?

예전에 파주에 있는 모 작가의 작업실에 간 적이 있어요. 단출한 공간에 돌멩이가 몇 개 놓여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작가의 감각이 뛰어나다는 걸 알았어요. 돌이 하나같이 기막히게 아름다웠거든요. 물어보니 학생들이랑 엠티 갈 때마다 강에서 하나씩 주워 왔대요.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문득 당신의 집은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집에는 제 물건이 거의 없어요. 아내가 동양화를 그리는데 주로 집에서 작업해서요. 아내는 저랑 성격이 많이 달라서 집에 뭘 들이는 걸 아주 싫어해요. 제 수집 취미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 비우고 사는 삶을 추구하죠. 전 보다시피 미니멀리즘하고는 거리가 멀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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