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 가족의 경계 없는 브루클린 아파트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3인 가족의 경계 없는 브루클린 아파트
아티스트 로렌 룰로프·알렉산더 놀란·줄리언 놀란

Text | Anna Gye
Photography | Mineun Kim

패브릭 염색 작업을 하는 로렌 룰로프Lauren Luloff와 미술과 음악 작업을 넘나드는 알렉산더 놀란Alexander Nolan, 그리고 부모 곁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4살배기 아들 줄리언 놀란Julian Nolan. 가족 3명이 사는 뉴욕 브루클린의 아파트는 어느 방에서든 예술적 행위가 일어난다. 심지어 침실에도 물감이 뒹군다.

매트리스 위에 스케치한 그림과 색연필, 물감, 연필 등이 놓여 있네요. 침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나요?

(놀란) 맞아요. 저와 줄리언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저희 집은 공간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요. 어디든지 휴식처, 놀이터, 작업실이 될 수 있죠. 아내는 비단을 염색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형 설치 작업을 하는 터라 별도로 작업실이 있고요. 거기는 저희 부부가 전에 살면서 작업하던 곳인데, 여기서 10분 거리에 있어요. 염색 작업 외 다른 작업을 할 때는 저처럼 집에서 주로 작업을 합니다.

 

보통 아티스트들은 집에서 가까운 작업실을 찾는데, 집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네요. 생활 공간과 작업 공간을 구분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룰로프) 뉴욕은 렌트 비용이 워낙 비싸서 별도 공간을 두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학생 때부터 일과 삶의 경계 없이 작업했던 터라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침실, 거실, 화장실 어느 공간에서나 작업할 수 있죠. 단, 비단 염색 과정은 까다로워서 별도의 공간에서 하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나머지 마무리는 집에서 처리할 때가 많아요. 아티스트에게 작업은 삶의 거울인 셈이죠. 삶의 이야기가 곧 작품이고요. 예술이 삶을 모방하기보다 삶이 예술을 휠씬 더 모방하잖아요. 특히 제 작업은 가사 노동과 관련 있는데, 비단 염색 작업 전에는 침대 시트를 표백해 솔직한 삶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어요.

 

현재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룰로프) 비단을 다양한 방식으로 염색하는데, 풍경이나 사람을 천 위에 그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염색한 패브릭을 다양한 형태로 배치해 설치 작품처럼 보여주기도 하고요. 웹사이트(www.ceyssonbenetiere.com/en-artist-lauren-luloff.html)에 들어가면 다양한 과정을 볼 수 있어요.

(놀란) 저 역시 웹사이트(alexandernolan.com)에 다양한 드로잉 작품을 올려놨는데,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작업도 동시에 하고 있어요. 주로 현대음악이죠.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오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줄리언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아이가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죄책감이 들어요.

작업할 때 아들 줄리언이 항상 함께하는 것 같아요.

(룰로프)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했죠.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행복이자 혜택이 바로 예술 작품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실에 갈 때도, 전시회에 갈 때도 함께 가죠. 아이에게 예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않아요. 그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직접 느끼게 할 뿐. 정답 없는 예술 작품을 보여주려고 해요. 예술 작품은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것이니까요.

 

아이에게 예술 교육이 왜 중요한가요?

(룰로프) 미술 교육은 아이의 예술적 재능을 찾아내 예술가로 키우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실 가르칠 필요도, 배울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저는 특별히 줄리언에게 예술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집 안 어느 공간에서든 예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죠. “자, 이제 그림을 그려볼까?”라고 제안하기보다 줄리언이 먼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도록 집 안 곳곳에 관련 물건을 놓아두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했죠.

 

아티스트 부부이니만큼 줄리언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룰로프) 절대 칭찬이나 조언을 하지 않아요. 단 한 번도 “그림이 좋다”, “이렇게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의 그림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맞추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스트레스가 돼요. 미술 교육은 유연한 사고와 상상력을 기르는 놀이이지 배움을 위한 학문이 아니에요. 어른의 간섭 없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두어야 해요. 어른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돼요.

 

그럼 아이의 미술 교육의 첫 단추는 무엇인가요?

(룰로프) 마음껏 보여주는 것이죠. 다행히 우리는 아티스트 부부이기에 자연스럽게 저희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었죠. 충분히 지켜보고 관찰한 뒤 호기심이 생기고, 직접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면 아이는 스스로 그림 도구를 찾게 돼요. 부모는 그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미술 교육은 유연한 사고와 상상력을 기르는 놀이이지 배움을 위한 학문이 아니에요. 어른의 간섭 없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두어야 해요. 어른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돼요.”

아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같아요. 양육은 부부가 공동으로 하나요?

(놀란) 저희 모두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줄리언과 함께할 수 있어요.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보통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는데,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같이 청소하고, 거실에서 함께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음악을 듣죠. 부엌에서 요리도 함께 하고요. 아이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집 공간도 각자의 영역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어요. 세 사람이 모든 공간에서 함께 아트 작업을 하고, 먹고, 즐기고, 잠을 자죠.

 

각자 다른 분야의 작업을 하는데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놀란) 혼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죠. 그렇다고 해서 집 밖의 다른 공간을 찾지는 않아요.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고 집에서 작업을 하죠. 보통 작업에 집중하면 주변 환경에 크게 방해받지 않아요. 혼자의 세계에 푹 빠져들죠. 저와 로렌은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에 물리적으로 환경을 공유한다고 해도 그것이 방해가 된다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작업을 시작하면, 또 한 사람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돌보고 집을 정리하는 식이죠.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경계와 한계를 잘 알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빛과 그림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어요. 부부로서 함께이면서 아티스트로서 따로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줄리언을 포함해 세 사람이 하루 종일 집에 함께 있는 셈이에요.

(룰로프)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집 안에 함께 있죠.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누구보다 유대감이 강해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영감을 주죠. 염색 작업을 하기 위해 다른 작업실에 혼자 갈 때도 옆에 남편이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세 사람의 취향과 편리한 동선이 적절히 반영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조율했나요?

(룰로프) 2013년 새해에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줄리언이 태어나기 전이라 부부가 쓰기에 적당한 규모의 아파트를 골랐죠. 보통 뉴욕 사람들은 이사하면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는데, 우리는 성장하듯 꾸며가며 사는 집을 원했어요. 우리 부부의 작품은 물론 천천히 친구들의 작품을 구입해 허전한 벽을 채우고, 아이가 생기면 필요해질 다양한 가구로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분되기를 바랐죠. 삶의 시간에 따라 천천히 변화하는 집은 책상 앞에 앉아 머릿속으로 꾸민 집과는 달라요. 겉으로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집이 되죠. 또 좁은 뉴욕 아파트의 특성상 물건을 더해 애써 꾸미기보다 정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보다 어떤 오브제와도 잘 어울리는 백지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할까요? 미니멀한 아파트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으로는 식물을 이용했어요. 나른한 햇살이 집 안에 스며들면 순백의 공간이 꽉 찬 공간으로 바뀌죠.

 

아이의 교육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룰로프) 아이에게 좀 더 넓은 방이 필요할 것 같아 렌트비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해볼까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잘 꾸민 방보다 ‘함께하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를 위해 방을 넓히고 다양한 컬러로 벽을 꾸미기보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소소한 시간을 만들고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죠. 어린 시절을 충분히 아이답게 보낼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집은 좁지만 작업실과 갤러리가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이 집에 아직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부부의 삶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줄리언과 작업을 하고 놀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부의 작업에도 영향을 끼치나요?

(룰로프) 생각보다 많은 영향과 자극을 받아요. 지금까지 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미지들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더욱 섬세하게 세상을 관찰하게 되었죠. 심지어 알파벳 문자까지 낯설게 보이더라고요.

(놀란) 매일 줄리언을 보며 그 아이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아이가 가진 말랑말랑한 감성에 질투심을 느낄 정도예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잘 꾸민 방보다 ‘함께하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를 위해 방을 넓히고 다양한 컬러로 벽을 꾸미기보다 아이와 보내는 소소한 시간을 만들고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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