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서울, 두 도시의 밤을 걷는 나이트 워커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런던과 서울, 두 도시의 밤을 걷는 나이트 워커
아티스트 유재연

Text | Nari Park
Photos | Jaeyeon Yoo

1년의 절반씩 런던과 서울에서 거주하는 두 도시 생활자 유재연에게 밤은 유독 특별하다. 푸르고 어두컴컴한 적막이 내려앉는 시간이면 온전히 홀로 걷기 시작한다. 밤이 지닌 특유의 적막은 도시인에게 스스로의 삶을 환기하고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일상과 환상이 병존하는 미스터리한 풍경이 ‘나이트 워커Night Walker’ 시리즈란 이름으로 화폭에 담긴다.

“서울의 밤을 올라본 적이 있는가. 야간 산행 중 고요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이란 또 다른 의미의 호사다.” 소설가 김연수가 한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의 내용처럼 바쁜 도시인에게 밤의 적막은 또 다른 환기의 시간대다. 낮과 밤의 극명한 콘트라스트가 만들어내는 고요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기회를 준다.

 

1년의 절반씩을 사이좋게 런던과 서울에서 생활하는 작가 유재연(yoojaeyeon.com)에게 도시의 밤은 작업의 토양이자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다. 휴대폰 화면의 푸른빛에 얼굴을 묻고 걷는 행인부터 거나하게 밤에 취한 무리의 뒷모습까지 화폭에는 다양한 밤의 풍경이 담긴다. 슈퍼 컬렉터이자 원로 셰프인 마크 힉스Mark Hix가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개최한 힉스 어워드 2016, 덴톤스 아트 프라이즈 2017 등에서 수상하며 런던에서 활발하게 전시 활동을 해온 작가는 2017년 ‘나이트 워커’ 시리즈를 선보이며 한국의 관객과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그만큼 동시대와 공감하는 지점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는 지난해부터는 서울에도 작업실을 마련해 두 도시를 오가는 삶을 살고 있다. “좀 더 다양한 작업 환경과 기회를 갖고 싶은 바람”이라는 유재연 작가의 삶을 대하는 방식은 자신이 살고자 하는 도시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최근 밀레니얼 세대의 행보와 일견 닮아 있다.

런던과 서울, 두 도시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어요. 서로 다른 도시를 병행하는 삶이 힘들지는 않나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요. 작업도 양분되고 일 년 계획이 항상 두 방향으로 나뉘는 느낌이 들죠. 이렇게 힘든 점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의미 있는 도전이라 생각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서로 문화가 다른 두 도시를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대비되는 경험과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일상이 삶을 더욱 풍성하고 다이내믹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뒤 서울로 돌아와 다시 런던에서 긴 유학 생활을 했어요. 여러 나라를 거치는 동안 집에 대한 관점도 조금 남달랐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집에 관한 좋은 기억이 참 많아요. 어린 시절 저에게 집이란 완벽한 놀이터였어요. 공간의 크기나 장난감 유무와 상관없이 집 구조나 가구를 이용해 얼마든지 상상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장소였죠. 유학 생활 때 살던 런던 집은 저만을 위한 안식처 같았어요. 새로운 문화와 언어로 늘 긴장하고 있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는데, 집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피로를 풀고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어요. 집에서는 어느 것도 나를 방해하지 않으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더라고요. 어린 시절에는 집이 꿈과 모험의 세계로 변신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온전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전지대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그때 계획에 따라 거주할 도시를 선택하는 삶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가꾸는 데 적극적인 요즘 밀레니얼 세대와 닮은 듯해요. 집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런던에서 몇 번 이사를 하며 세 동네에서 살아봤는데 그때마다 작업실과의 거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교통과의 접근성을 중시하지만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왕이면 걸어서 30~40분 이내 거리에 작업실이 있는 동네를 선호하죠.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작업실이 집보다 좀 더 편안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작업실은 일터이다 보니 심리적으로는 집이 편하죠.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작업실에서의 일이 연장될 때가 많아요. 개최를 앞둔 전시나 프로젝트 관련 이메일, 제안서 쓰기나 작업에 관련된 드로잉을 집에서도 하거든요. 한번은 이삿짐 센터에서 오신 분이 제 집을 보더니 홈 오피스냐고 묻더라고요. 집에 필요한 물건이 별로 없고 작업에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런던과 서울의 작업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런던 작업실은 런던 남부 스톡웰Stockwell 지역에 있어요. 학교 졸업 직후 운 좋게 구해 2014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학교 작업실을 더 이상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당시 개인전 준비를 앞두고 과 동기와 버몬지Bermonsey 지역에 있는 폐교를 개조한 작업실에 잠깐 들어갔어요.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 부지가 다른 곳에 팔려 작가들이 내쫓기게 되었고, 당장 작업실을 정리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현재 작업실 건물 자리가 났죠. 작년부터 얻어 사는 서울 작업실은 자곡동에 있어요. 작은 단독주택들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 조용한 언덕배기에 있는데 동네 분위기에 반해버렸죠. 창 너머로 새소리가 들리고 조용한 골목 어귀 풍경이 담백하고 소소해 작업하기 좋을 것 같아 바로 결정했어요.

“많은 현대인들이 도시에 살면서 오롯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요. 밤은 일상과 환상이 병존하기도 하고 삶의 지점들을 환기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현재 머무는 런던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잠드는 시간은 불규칙하지만 오전 8~9시에는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식사하면서 수첩에 드로잉하거나 이메일을 체크하죠. 오전은 그렇게 전날 작업실에서 한 일을 생각하는 데 쓰고 이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거나 작업실로 향해요. 밤늦게까지 작업을 이어가는 날도 있고, 전시 오프닝이 있거나 약속이 있는 날에는 친구들을 만나요. 제 삶이 굉장히 불규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의외로 규칙적이네요.

 

밤의 양가적 풍경, 밤을 산책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나이트 워커’ 시리즈로 관객들을 만나왔어요.

해가 잘 안 드는 런던의 늦가을, 겨울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밤 풍경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10월부터 런던은 아침 10시에 해가 뜨고 오후 4시면 사위가 캄캄해지죠. 여러 일을 병행하며 작업실에 드나들다 보면 늘 어두웠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을 통과해 지름길로 다녔는데 밤 10시면 공원 입구를 통제하더라고요. 담장이 별로 높지 않아 때로는 담을 넘어 공원에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죠. 언제부터인가 혼자 어두운 공원을 걷는 느낌이 강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어요. 일상이지만 생경한 경험이었고, 런던이라는 대도시를 메운 관광객과 만보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죠. 낮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는 이 공간이 밤에는 이토록 고요한 것이 인상적이었거든요.

All Night Long

도시를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에게 밤은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유재연의 밤은 어떤가요?

저에게 밤은 개인의 세계를 증폭할 수 있는 시간이자 장소예요. 다수의 현대인이 도시에 살면서 오롯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해야 하고, 일터에 나가거나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 분담을 해야 하니까요. 밤은 낮보다 대부분 고요하고, 달과 별이 뚜렷이 보이는 날에는 세계가 생각보다 아주 광활하다는 사실까지 쉽게 증명해줘요. 밤은 매일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죠. 일상과 환상이 병존하고, 삶의 지점들을 환기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해요.

 

런던에서 좋아하는 밤 풍경이나 나이트라이프는 무엇인가요?

‘블루 타임blue-time’요. 해가 넘어간 직후 온 도시에 어둠이 찾아오면서 모든 장면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을 저 스스로 그렇게 불러요. 명도가 분명한 낮의 햇살이 조용하게 어둠 안으로 숨고, 하늘과 강의 경계가 푸른빛으로 연결돼요. 안정감을 주는 푸른빛은 금세 사라져버리지만 그 순간을 맞았던 감각은 오래 남더라고요.

 

지금까지의 삶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문장이나 본인만의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작은 마음의 나침반이 우리의 일상에 흔들리지 않는 좌표가 되어주니까요.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말씀했던 것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뇌리에 맴돌아요.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세상, 한 개인의 삶에서 예상치 못한 많은 사건을 경험하며 성장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죠. 인간의 힘으로 모든 걸 조종할 수 없고, 때로 나약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 또한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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