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집이 된 인쇄소, 갤러리가 된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벨기에의 집이 된 인쇄소, 갤러리가 된 집
이민영과 힐 바우엔스

Text | Anna Gye
Photos | Sebastian Schutyser

벨기에 브뤼셀의 갤러리 ‘아트로프트_리 바우엔스’는 집과 갤러리가 공존한다. 2006년 건축을 전공한 힐 바우엔스가 친구 건축가들과 함께 인쇄소를 로프트 스타일의 집으로 개조한 곳이다. 부엌 옆 개인 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완벽한 갤러리가 된다. 전시가 열리면 초인종이 거침없이 울린다.

벨기에 브뤼셀에 자리한 갤러리 ‘아트로프트_리 바우엔스Art’Loft_Lee Bauwens’는 벨기에 건축책에 소개될 만큼 흔치 않는 구조의 로프트 스타일 집이다. 2006년 건축을 전공한 남편 힐 바우엔스Gil Bauwens가 인쇄소였던 공간을 벨기에의 유명 건축가 알렉산드레 로드지아 브로드스키Alexandre Lodzia Brodsky와 알렉산드레 오퀴에르Alexandre Auquier의 도움을 받아 로프트 스타일의 3층 집으로 개조했다. 평소에는 예약제로 운영하지만 전시가 열리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갤러리 ‘아트로프트_리 바우엔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이민영) 2006년 남편이 인쇄소를 구입해 건축가 알렉산드레 로드지아 브로드스키, 알렉산드레 오퀴에르와 함께 로프트 스타일의 집으로 개조했어요. 2012년 초에 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이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재미 삼아 전시를 열었고, 2012년 후반부터는 정식으로 홈 갤러리를 오픈하게 됐어요. 아트와 로프트, 이민영과 힐 바우엔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해서 ‘갤러리 아트로프트_리 바우엔스’로 이름 지었습니다.

 

건축 관련 <Loft of Brussels>에서 벨기에 대표 로프트로 뽑히기도 했어요. 인쇄소를 집으로 개조한 과정에 관한 이야기부터 들려주세요. 3년이 걸렸다고요.

(힐 바우엔스) 원래 층이 없는 블록 형태 건물이었어요. 폐허 자체였던 이 건물을 발견하자마자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집을 지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지금은 자동차 전문 광고 디렉터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원래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 도면사 자격을 가지고 있거든요. 거의 새로 짓다시피 건물 내외부 공사를 3년에 걸쳐 진행했어요. 철제 계단으로 층을 나누고 철제 빔으로 구조를 증축했죠. 인테리어 자재와 형태는 공간에 맞게 제작했는데 부엌, 침대, 개인 방의 가구도 모두 건물의 일부로 지었어요. 현관에 들어서면 전시 공간으로 쓰이는 1층과 지하가 보이고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거실이 나타납니다. 2층 거실은 높은 천고는 물론 유리 천장 덕분에 하루 종일 빛이 머물죠. 오픈형 부엌 옆으로 침실, 아이 방, 화장실이 이어져 있어요. 침실에서도 거실로 나가는 유리문이 있는데, 갤러리 손님이 오면 문을 닫고 커튼을 치죠. 거실에서 달팽이 계단을 오르면 옥상이 나와요. 거실과 옥상 사이에는 또 하나 층을 만들어 서재를 배치했어요. 옥상에는 파티를 열 수 있게 발코니를 만들고 테이블을 놓았죠. 

그럼 서재가 위치한 곳은 2층 거실과 3층 옥상 사이, 즉 2와 2분의 1층이라 할 수 있겠네요.

(힐 바우엔스) 맞아요. 주로 제가 머무는 비밀스러운 곳이에요.(웃음) 다락방 같지만 사방에 유리창이 있어 햇빛이 잘 들죠. 덕분에 공간이 넓어 보여요. 창밖으로 브뤼셀 포레스트 동네가 내려다보이고, 계단 아래로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죠. 거실에서 전시를 열 때 소란을 피해 도피할 수 있는 장소도 되고요.

 

과거 인쇄소의 흔적은 남겨두었나요?

(힐 바우엔스) 건물 앞면이 인쇄소 건물 모습 그대로예요. 인쇄소 명칭이 희미해진 석조 간판도 걸려 있고, 현관을 둘러싼 석조 기둥과 주황색 벽돌도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보물이 되었죠. 잉크 냄새가 가득했던 과거의 기억을 없애고 싶지 않았어요. 세월의 흔적 덕분에 미니멀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반전 있는 스토리로 느껴지죠.

 

벨기에 사람들은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사할 경우 각자 취향 맞춰 인테리어를 하는 편인가요?

(힐 바우엔스) 대부분 개조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벨기에인은 다른 유럽인에 비해 현대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과거의 것을 복원하는 것보다 자신의 스타일로 융합시키는 데 후한 점수를 주죠.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신흥 부자가 많아서 그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이 크기 때문에 그런 듯해요.

“벨기에인은 다른 유럽인에 비해 현대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과거의 것을 복원하는 것보다 자신의 스타일로 융합시키는 데 후한 점수를 주죠.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신흥 부자가 많아서 그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이 크기 때문에 그런 듯해요.”

인쇄소가 건축가의 손길을 거쳐 집이 됐다가 어떻게 갤러리로 변모했나요?

(이민영) 결혼하고 브뤼셀에 정착한 후 전시 기획 일을 찾고 있었어요. 문득 주말 이벤트처럼 프랑스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집에서 열면 어떨까 생각했죠. 10분 거리에 벨기에 현대 아트 센터 빌스Wiels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파운데이션 에이Foundation A, 스페이스 갈릴라Space Galila 같은 굵직한 벨기에 미술 재단들이 있어서 예술인들의 발길이 잦은 동네거든요. ‘아트 브런치’라는 이름으로 음식과 전시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반응이 왔죠.

 

갤러리로 사용하기 위해 추가 개조나요?

(이민영) 아니요. 비어 있던 1층과 지하 공간에 작품을 설치해 전시장으로 바꿨을 뿐 공간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어요. 집과 갤러리가 공존한 이후 개조보다 배치에 신경을 썼어요. 프라이빗 공간에 모든 물건을 몰아 정리하는 식이죠.(웃음)

 

집을 개조하다 보면 의도와 다른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비용이 초과되는 경우가 흔하죠.

(힐 바우엔스) 비용은 반드시 초과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예산에서 30% 정도 비축해놓는 게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2와 1/2층 공간 창문이 원래는 사각형이었는데 건축가가 뒤늦게 원형 창문으로 바꾸기를 원했어요. 미니멀한 로프트가 지닌 차가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자는 의견이었죠. 일반 창에 비해 20배나 비쌌기에 매우 망설였어요. 결국 건축가의 의견에 동의했는데, 지금은 이 둥근 창이 제 집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해요. 처음 설계도와 다르다고 배제하기보다 건축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여러 제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물론 설계도를 잘못 읽어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면 바로 수정해야 탈이 없습니다.

집 안 분위기가 미니멀 아트 작품처럼 단순하고 심플해요. 부부가 함께 조율한 결과인가요?

(이민영) 다행히 둘 다 심플한 스타일을 좋아해요. 시간 날 때마다 디자인 제품을 구경하는데, 대부분 갈등 없이 구매를 결정해요. 4개가 아닌 3개의 다리로 균형을 이루는 의자와 테이블을 만드는 벨기에 아티스트 슈티인 구일릴무스 루이스Stijn Guilielmus Ruys의 작품, 이사무 노구치 조명, 찰스 & 레이 임스 의자 등이 의견 일치로 구입한 제품이죠.

 

흙으로 설치 작품을 만드는 한국 아티스트 김지아나 작품이 원래 자리처럼 1층 현관과 계단 공간에 조화롭게 놓여 있어요. 갤러리 전시 때마다 1층과 거실의 작품이 바뀐다고 들었어요. 전시 작품 외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소개한다면요?

갤러리스트에게 무척 어려운 질문인데, 아티스트 윤형근 작품을 선택하고 싶네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그림에 검은 먹만 남긴 작가의 묵직한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이죠. 장식적이거나 화려함을 배제한 작가의 작품에서 힘이 느껴져요. 외국에서 살다 보면 심연의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그린 한국적인 작품에 오래 눈길이 머물죠.

 

벨기에 내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로 체감하나요?

(힐 바우엔스) 최근 벨기에의 브라파Brafa 아트 페어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게 전시되었어요. 이는 네덜란드 테파프 마스트리흐트TEFAF Maastricht 아트 페어 같은 2차 시장인데, 여기에서 한국 작가가 포착되었다는 것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 한국 작가들이 입지를 굳히고 있다는 뜻이죠. 2차 시장에서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 세계 미술 역사에 길이 남는 한국 작가가 될 수 있어요. 멀리서 찾지 않아도 전광영, 심문필, 김현식, 남춘모 등 한국 작가들을 주로 다루는 저희 갤러리에 손님들이 먼저 찾아오는 것만 봐도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죠.

 

예술 작품 집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힐 바우엔스) 예술 작품은 놓이는 공간과 함께 소통해요. 공간에 울림을 만들고, 보편적인 장소를 생경하게 만들죠. 장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예술 작품 덕분에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공간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예술 작품은 집이라는 장소에서 전해지는 지루한 감정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요.

홈 갤러리는 일반 갤러리와 운영 방식이 다를 것 같아요.

(이민영) 홈 갤러리는 일상에 스며든 예술을 다시 꺼내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을 자신의 공간에 대입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갤러리 운영 방식은 일대일 예약제입니다. 개인적인 약속을 하셔야 현관문을 열어드릴 수 있어요. 단, 전시 오프닝 때는 누구나 초인종을 누르셔도 됩니다. 보통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음식을 차려놓고 오프닝 전시를 하는데, 해가 질 때까지 머무는 손님도 많아요. 긴장이 풀린 분위기에서 교감하는 자리라 거의 모든 손님이 친구가 됩니다. 단점이라면 늘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집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는 거죠. 6살짜리 사내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죠.(웃음)

 

최근에 방문한 손님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이민영) 한 노부인과 손녀가 함께 전시에 온 적이 있어요.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 생각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죠. 노부인이 작품을 구입한 후 제가 연락처를 적기 위해 “혹시 빅bic 볼펜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제가 바로 마담 비크Bich예요”라고 답했죠. 알고 보니 누구나 사용하는 빅 볼펜 발명가 마르셀 비크Marcel Bich의 부인이었던 거예요.

 

얼마나 오랫동안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을까요?

(이민영) 홈 갤러리의 최대 장점을 이야기할 순간이네요. 집을 잃지 않는 한 갤러리 문을 닫지 않는다는 것. 평생 이 자리에서 초인종 소리를 기다릴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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