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의 그림을 닮은 상수동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호퍼의 그림을 닮은 상수동 집
그래픽 디자이너 전채리 & 사진작가 홍기웅

Text | Bora Kang
Photos | Siyoung Song

신혼집을 꾸민다는 건 아내와 남편이 제각각 쌓아온 취향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지층을 이루는 일이다. 그 지층의 무늬가 유난히 간결하고 아름다운 집을 찾았다. 상수동 아파트에는 때마침 오후의 볕이 풍성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 반듯하게 정리된 사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어떤 이야기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도시의 집이 그러하듯.

결혼 3년 차라고 들었어요. 이곳은 결혼 후 몇 번째 집인가요?

(홍기웅) 두 번째요. 첫 신혼집이 바로 앞 동이었는데 살아보니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두 번째 집도 이쪽으로 정했어요. 다른 곳도 알아보긴 했는데 여기가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요.

 

집을 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은 무엇인가요?

(홍기웅) 저희 둘이 같은 직장에 다녀서 위치가 1순위였어요. 여기서 회사까지 걸어서 5분 거리거든요. 홍대가 가깝다는 것도 결정에 한몫했죠.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젊은 감성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반해 동네는 또 놀랄 정도로 조용해서 그런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두 분이 특별히 홍대 앞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요?

(전채리) 10년 전쯤 송파에 살면서 홍대로 기타를 배우러 다녔어요. 덕분에 이쪽에 친구가 많아져서 독립 후 첫 집도 합정동에 얻었죠. 그래서인지 회사를 나와 스튜디오 공간을 찾을 때도 자연스럽게 홍대 근처로 알아보게 됐고요. 남편도 이 근처에서 학교를 다닌 터라 저희에게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생애 첫 인테리어이다 보니 뭔가를 크게 바꾸기는 부담스럽더라고요. 대신 그동안 저희가 모아온 가구와 소품이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집 구조나 형태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들이 말을 거는 공간이었으면 했죠.”

집이 굉장히 간결하고 모던한 느낌이에요. 인테리어를 하면서 의도한 분위기가 있나요?

(전채리) 생애 첫 인테리어이다 보니 뭔가를 크게 바꾸기는 부담스럽더라고요. 대신 그동안 저희가 모아온 가구와 소품이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집 구조나 형태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들이 말을 거는 공간이었으면 했죠. 심플하고 정돈된 공간에 우리 두 사람만의 분위기가 잘 묻어났으면 했고요.

 

방 하나를 서재 겸 다이닝 룸으로 꾸민 게 인상적이에요. 방문을 떼어내 거실과 연결되도록 한 것도 좋고요.

(홍기웅) 다이닝 룸은 아내의 아이디어였어요. 말만 들었을 땐 그림이 잘 안 그려졌는데 공사가 시작되고 방 안에 가구가 놓인 모습을 보니 진짜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식탁이 빠지니 거실도 한층 넓게 쓸 수 있고요. 놀러 온 친구들도 레스토랑에 온 것 같다고 좋아해요. (웃음)

거실에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눈에 걸리는 물건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전채리) 거실만큼은 온전히 쉬는 공간이었으면 해서 TV도 일부러 안방에 두고, 가구도 최소한으로만 두었어요. 한동안 티크 소재로 된 빈티지 가구에 꽂혔는데 요즘은 유리나 철제 같은 다양한 소재를 섞은 가구에 더 마음이 가요. 다양한 소재의 가구에 패턴이 있는 패브릭을 매치했을 때 공간이 좀 더 풍부해지는 것 같아서요.

 

거실에 걸려 있는 사진 덕에 휴양지 같은 분위기가 나기도 해요.

(홍기웅) 아내랑 호주로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원래는 작게 인화한 것만 있었는데 그걸 본 지인 분이 자기 집에 걸고 싶다고, 크게 프린트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화를 해보니 그분 공간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생겼고요. 우리 집에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인화해서 걸어두게 됐어요.

 

엄유정 작가의 유화, 허상욱 작가의 분청 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띄네요.

(전채리) 마음에 드는 작품이 보일 때마다 한 점씩 모으고 있어요. 투자 목적은 아니지만 저희가 산 작품이 몇 년 후 값이 오른 걸 보면 은근히 뿌듯하더라고요.

(홍기웅) 내 작품은 언제쯤….

‘Uncomposed Composition’ / ⓒ홍기웅

홍기웅 씨 포트폴리오를 보니 도시를 배경으로 작업한 작품이 많아요. 도시에서 마주친 예기치 못한 풍경을 담은 ‘Uncomposed Composition’ 연작이 대표적이죠.

(홍기웅) 도시는 제가 태어나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 없는 곳이에요. 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 저의 관심사가 평소 제 작업 환경과 연결돼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닐까 해요.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 보니 평소 점, 선, 면의 형태를 자주 접하기도 하고요.

 

고층 빌딩과 빛의 관계에 주목한 ‘Suncity Tokyo, 한강 곳곳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HanRiver New Color’ 작업도 인상 깊었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홍기웅) 아내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도시는 보통 차가운 이미지인데 제가 찍은 사진에는 왠지 모르게 따뜻한 느낌이 있다고요. 그건 아마 제가 어릴 때부터 쭉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도시에 사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어떤 변화의 순간들이 있으니까요. 집 근처에 한강이 있어서 자주 산책을 나가는데, 늘 보는 한강이어도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요.

두 분 모두 비주얼 작업을 하는 만큼 인테리어 과정에서 서로의 취향이 어떻게 섞였을지 궁금해요. 그런 의미에서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 말해본다면요?

(홍기웅) 작가 중에는 에드워드 호퍼를 가장 좋아하고, 팀 아이텔도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에요. 저희 둘 다 색이나 형태가 명확히 정리되어 있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취향이 인테리어에도 반영된 것 같아요. 물건이 너무 많지 않으면서 여백이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요.

(전채리) 예전에는 조르조 모란디처럼 자기 색이 분명한 화가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좀 더 파격적인, 이를테면 어떤 물성이나 형태를 실험하는 작가에게 더 관심이 가요. 영국 아티스트 파예 투굿처럼요. 파예 투굿의 콜라주 작업이 후에 러그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동시대 아트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지인들을 자주 집에 초대하는 것 같아요.

(전채리) 집에서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떠는 시간이 참 좋아요. 평소라면 도전하지 않았을 독특한 음식도 한번 만들어보고요. 옮길 필요 없이 앉은자리에서 2차, 3차 마시고 마지막에 라면까지 먹을 수 있으니 손님 입장에서도 편하죠.(웃음)

 

그간 방문한 다른 사람의 집 중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전채리) 허상욱 작가님 집이에요. 양평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계시는데 집 안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에 한평생을 함께한 부부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어요. 인테리어가 아무리 멋져도 사람의 삶이 녹아든 집을 따라갈 순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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