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홈그라운드로 오세요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옥수동 홈그라운드로 오세요
요리사·기획자 안아라

Text | Bora Kang
Photos | Siyoung Song

조리 도구와 양념 통이 가지런히 정리된 옥수동의 홈그라운드. 그녀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정말 많은 일을 한다. SNS로 예약을 받아 손님상을 차리고, 각종 문화 예술 행사의 케이터링을 소화하고, 이따금 ‘푸드 컬러 워크숍’ 같은 기묘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남들 다 하는 건 재미없다는 천생 기획자 안아라의 스튜디오와 신당동 집을 차례로 방문했다.

스튜디오가 아늑하네요. 천장이 낮아서 그런지 집처럼 포근한 느낌이에요.

원래는 주택 하부의 창고 같은 공간인데 주인분이 많이 다듬은 것 같아요. 가정집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도 특이하고요.

 

요리를 하기 전까지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흥미로운 이력인데 직업을 바꾼 계기가 있나요?

대학원 졸업하고 경리단길에 있는 장진우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곳이라 나중에 제 프로젝트를 할 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죠. 근데 그게 생각보다 꽤 할 만한 거예요. 몸은 힘들지만 잔업이 없으니 뒤끝이 깨끗했어요.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이후 식당 일을 그만두고 직장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 느낌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만족감이 덜하기도 했고요. 그러던 차에 마침 장진우 씨가 좋은 제안을 해서 결국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식당을 선택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엄청 후회했지만요.(웃음)

 

행사 케이터링, 오픈 스튜디오, 워크숍, 스타일링, 델리 숍 등 정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홈그라운드는 정확히 어떤 곳인가요?

안 그래도 식당이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요, 올해부터는 그냥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대답해요. 전에는 ‘쿠킹 스튜디오’라고 했는데, 그간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제 전공 때문인지 대부분의 프로젝트에 디자인적 관점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홈그라운드’라는 이름에 담긴 뜻이 궁금해요.

제 식당을 열기 위해 자리를 알아보던 무렵이었어요. 친하게 지내던 플로리스트가 저한테 혹시 식당 계약했느냐고 묻더라고요. 꿈에서 제가 ‘그라운드’라는 이름의 식당을 열었다면서요. 순간 그 단어가 확 와닿는 거예요. 어감도 좋고 의미도 마음에 들고요. 당시 금전적으로 좀 힘든 상황이라 집 주방을 고쳐서 작업실로 쓰고 있었거든요. 그럼 난 집에서 일하니까 ‘홈그라운드’로 하자 싶었죠. 내게 익숙한 곳이 곧 내 근거지라는 생각으로요.

 

언젠가부터 소위 힙하다는 행사에 가면 케이터링 담당이 홈그라운드더라고요. 단순히 예쁘고 먹기 편한 핑거 푸드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행사의 핵심적인 인상을 디자인과 색감을 통해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점이 놀라웠어요.

케이터링할 땐 특히 컬러 세팅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전시 오프닝 행사라면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특정 색감을 음식에 반영하는 거죠. 브랜드 관련 행사일 경우 해당 브랜드의 메인 홍보 이미지에 사용한 컬러를 그대로 적용하기도 하고요. 일정에 여유가 있을 때는 테이블 세팅을 스케치한 일러스트를 클라이언트에게 미리 보여드리기도 해요. 마치 무대 디자인을 계획하듯이요.

“집 주방을 고쳐서 작업실로 쓰고 있었거든요. 그럼 난 집에서 일하니까 ‘홈그라운드’로 하자 싶었죠. 내게 익숙한 곳이 곧 내 근거지라는 생각으로요.”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SNS로 예약을 받아 운영하는 팝업 식당이 늘고 있어요. 홈그라운드에서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오픈 스튜디오도 그중 하나고요.

같은 프로젝트를 계속하다 보면 일이 너무 익숙해지잖아요. 그런 전형성을 피하고 싶어서 기획한 행사예요. 간간이 여는 워크숍도 실은 비슷한 의도고요. 다른 데서 안 하는 푸드 워크숍은 뭘까, 다른 곳에 없는 팝업 식당은 뭘까, 항상 고민해요.

 

‘전형성을 피하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장진우식당에서의 경험이 제게는 좋은 연습이 됐어요. SNS로 예약을 받고 매일 다른 음식을 내는, 일종의 실험장 같은 곳이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그런 식당이 많지 않았거든요. 원 테이블에 주방도 정말 작았는데 그 작은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찾아왔어요. 반대로 대관 예약이 없을 때는 단품 식사를 준비해 SNS에 공지하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느낀 것 같아요. 요리사가 식당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식당을 검색하고 찾아오는 걸 보면서 온라인 예약만으로도 충분히 손님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전 지금도 사업을 크게 확장할 마음이 없어요. 그보다는 저희의 색깔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홈그라운드 직원은 총 몇 명인가요?

고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은 두 명이고요, 큰 규모의 행사를 치를 때는 열 명까지 늘어나기도 해요. 주변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요. 홈그라운드가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소화할 수 있는 건 몸집이 작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작게 하면 망해도 잃을 게 별로 없거든요. 그동안 괜찮은 제안이 꽤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덩치를 키웠다면 이런 시기에 더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해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기존에 진행하던 오픈 스튜디오 운영을 잠시 멈추고, 식재료와 간편식을 판매하는 델리 숍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배달 서비스인 ‘델리 딜리버리’도 시작했고요. 홈그라운드의 유연한 운영 방식이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델리 숍은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오픈 스튜디오도 못 열고, 예정돼 있던 행사도 줄줄이 취소됐어요. 이럴 때 놀면 뭐 하나 싶어 직원들이랑 동네 반찬 가게 정도로 생각하고 벌인 일이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흘러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죠. 코로나19 때문에 이쪽 업계도 큰 변화를 맞고 있는 듯해요. 간편식을 다루는 업체가 늘어나고, 케이터링도 도시락 같은 개별 음식으로 대체하는 추세고요. 살면서 이 일 저 일 다양하게 해온 경험이 이런 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장소를 집으로 옮겨 인터뷰를 이어)

최근에 이사했다고 들었는데 이 집은 어떻게 구하게 되었나요?

이사 오기 전에 친구가 사는 남산타운에 잠시 얹혀살았는데요, 겪어보니 산 근처에 사는 생활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집을 구할 때 스튜디오와 멀지 않으면서 산과 가까운 동네 위주로 알아봤어요. 저는 창이 크고 채광이 좋은 집을 원했는데 이 동네 빌라는 창이 너무 작더라고요. 그렇게 서른 곳쯤 둘러본 끝에 이 집을 만났어요. 언덕에 있다는 게 흠이었지만 창 때문에 바로 계약했어요. 덕분에 이사 와서야 깨닫는 중이에요. 아, 이래서 부자들은 평지에 사는구나.(웃음)

 

요리사들은 막상 집에서 요리 안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그런가요?

전에는 집에서 요리도 하고 친구들 초대해서 음식도 대접하곤 했는데요, 이사하면서 주방에 있는 물건을 거의 다 스튜디오로 옮겨놨어요. 집에서는 가급적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요. 이번 집은 온전히 쉬는 공간이었으면 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자는 마음으로 꾸몄죠. 주방에도 핫플레이트 하나만 놓고, 냉장고도 가장 작은 걸로 두고요.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팩토리 2’의 PR을 담당하고 있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팩토리 2가 갤러리팩토리였던 시절부터 활동한 팩토리 키즈예요. 부업으로 팩토리 2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있죠. 프로젝트 결과물인 물건과 작품을 외부에 소개하기도 하고요. 실은 제가 지금 입은 옷도 팩토리 에디션이에요.

 

그래서인지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심상치 않네요. 기성품이 거의 없달까요?

대부분 저와 좋은 기억을 함께하는 작가 친구들 작품이에요. 저 모빌은 아티스트프루프의 최경주 작가가 개인전 할 때 선보인 모델이고요, 거실에 있는 테이블과 책장은 MK2 이미경 대표님이 팩토리 2 전시를 위해 제작한 제품이에요. 침실에 있는 이불은 여다함 작가의 ‘내일 부서지는 무덤’이라는 작품이고요. 친구들 이름으로 가득 찬 집이죠.

 

가만 보면 인복이 정말 많 것 같아요. 비결이 뭔가요?

음식 일 하면서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서주는 걸 워낙 좋아해서요. 저에게 음식을 만든다는 건 그런 의미예요. 덕을 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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