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을 복원하는 삶이란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낡고 오래된 것을 복원하는 삶이란
일러스트레이터·아티스트·텍스타일 복원사 몰리 마틴

Text | Nari Park
Photos | Molly Martin

누군가의 재킷과 바지 뭉치를 조심스레 펼친다. 올이 나갔거나 크고 작은 구멍이 난 ‘상처’ 부위를 찾아 비슷한 색의 천을 잘라 덮는다. 한 땀 한 땀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점과 선이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몰리 마틴Molly Marin은 수년 전부터 해진 의복에 새 삶을 부여하는 ‘텍스타일 리페어Textile Repair’ 워크숍을 진행하며 해진 옷과 그것이 품은 기억을 복원한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하루 일과는 어떤지 궁금해요.

일찍 일어나 아주 진한 차를 한잔 마시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요. 정신을 차리며 그날 해야 할 일을 천천히 생각하는 거죠. 매일 작업실에 가서 수선해야 할 의류를 바느질하거나 의뢰받은 일러스트 작업을 해요. 가급적 오전에 한 가지를 끝내고 오후에는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항상 해야 할 일이 리스트에 넘쳐나요.

 

일러스트레이터, 아티스트, 텍스타일 복원사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것은 신체의 일부처럼 늘 함께하는 일이에요.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는 작업 같더라고요. 손바느질과 자수를 좋아해서 몇 년 전부터 옷을 수선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영국 전역에서 워크숍을 열어 수선하는 법을 가르치고, 수강생들이 가져온 옷이나 침구 같은 특별한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죠.

시골집과 오래된 농가, 일하는 농부가 일러스트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농부나 베틀을 짜는 사람처럼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직군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데 흥미를 느껴요. 저도 모르는 사이 제 캔버스 안으로 그들을 불러내고 있더라고요. 높낮이의 운율감이 느껴지는 언덕 같은 자연 소재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거나 스케일에 변화를 주고자 종종 사용해요. 잉글랜드 남부 서머싯 지방의 오래된 농가에서 자랐는데, 모자를 만들던 어머니와 특수 효과에 쓰일 모델을 제작하던 아버지 밑에서 일찍부터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배웠어요. 집에는 항상 부모님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놓여 있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정통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림 실력이 나아지길 바랐고 런던의 순수 미술 학부에 몇 곳 지원했어요.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예술 대학이 전통적인 회화보다는 콘셉추얼 아트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접었죠.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전공을 일러스트로 선택했고 남부 콘월 팰머스 대학교Falmouth University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수리’라는 행위에는 감상적이고 섬세한 감정이 담기는 것 같아요. 손으로 뭔가 만들고 새롭게 수선한다는 건 제 삶의 가치관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요.

몇 년 전부터 영국 전역에서 ‘리페어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어요. 오래된 옷을 수선하고 복원하는 일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수리’라는 행위에는 감상적이고 섬세한 감정이 담기는 것 같아요. 손으로 뭔가 만들고 새롭게 수선한다는 건 제 삶의 가치관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요. 속도와 효율성에 맞춰진 현대사회에서 단순하고 느리게 몸을 움직이는 일이 드문데, 바느질은 마음의 속도를 늦추도록 도와주죠. 리페어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본인의 추억이 깃든 옷을 고치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분을 많이 만나요. 이를테면 ‘감정의 회복’ 같은 거겠죠.

 

본인의 삶에서 수선하고 고쳐가며 오래 간직하고 싶은 ‘반려물건’을 꼽는다면요?

오래된 것을 수선한다는 건 결국 개인의 삶의 취향과 태도의 반영이라고 생각해요. 온라인과 동네 매장에서 필요한 것을 즉각적으로, 풍족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누군가는 옷이 해지면 고민 없이 새것을 사서 대체하고, 누군가는 고쳐서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방법을 택하죠. 저는 제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만 구입하는 최소한의 소비를 지향하는데, 제 라이프스타일에도 연결되는 중요한 철학이에요. 소비는 적게 하되 옷, 침구류, 신발 등을 구입할 때는 가급적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요. 유행을 타거나 트렌드에 민감해서는 안 되죠. 버켄스탁 슬리퍼를 최대한 오래 신었으면 좋겠어요. 5년 정도 됐는데, 저와 엄청난 모험을 지속하는 많은 사연을 간직한 물건이에요.

 

결국 사람들이 복원하고자 하는 것은 망가진 옷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품은 ‘시간(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차마 버릴 수 없는 청바지, 오래된 니트 점퍼 한 벌씩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그 옷과 함께 성장했고, 그렇다 보니 그 감성적인 물품을 ‘수선’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바늘을 들고 한 땀 한 땀 일정 간격으로 수를 놓는 동안 마음의 속도를 늦추게 되죠. 이 과정에서 손을 통해 그 옷과 심적으로 재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돼요. 수선을 마친 의복은 한층 더 새로운 시간과 이야기를 품으며 기존보다 더욱 특별해지고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Toast, 에그Egg와 수선에 관련한 다양한 협업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수선에 관해 설명하며 느낀 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에그에서 판매하는 옷은 품질이 뛰어나요. 실크 드레스는 종이처럼 가볍죠. 런던 나이트브리지 매장에서 수선이 필요한 의류를 가져와 작업하다 보면 각각의 귀중한 옷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져요. 작은 구멍이 200개나 난 카디건을 수리한 적이 있는데, 척 봐도 매우 특별한 옷이라고 짐작됐죠.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자가 격리 중인 요즘에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간 수선한 것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물건이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제 오빠의 ‘인디언 베개 커버’일 거예요. 벌써 몇 번이나 수선했는데 망가지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죠. 엄마가 장거리 여행 때 아기였던 저희가 수놓은 꽃과 코끼리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카시트 옆에 놓아두었던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베개를 베고 수천 번 잠을 자며 묻은 눈물 자국, 촛불에서 떨어진 촛농과 다양한 얼룩, 그 모든 것이 삶의 흔적이라고 생각해요. 몇 년 동안 계속 수선하면서 수많은 얼룩을 마주할 때마다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곤 하죠.

현재 머물고 있는 런던 집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템스강 남쪽 케닝턴 지역에서 남자 친구, 2명의 플랫메이트와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봄이면 거리에 분홍 철쭉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동네예요. 집에는 제가 가장 아끼는 ‘니크나크 셸프Nik-Nak shelf’라 부르는 아주 오래된 나무 선반이 있어요. 작은 장신구를 하나씩 모아가며 수년 동안 선반을 채우고 있어요. 입술에 바르는 연고, 유리 냄비, 오래된 성냥갑, 미니어처 스푼 등을 볼 때마다 옛 시간을 추억하죠.

 

집과 동네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는다면요?

만약 런던에서 아티스트로 살기로 결심했다면 동네를 고르는 것은 그다지 까다로울 필요가 없어요. 런던은 그만큼 재미난 것들로 넘쳐나는 도시니까요. 작은 정원과 큰 나무, 파란 하늘이 내다보이는 침실 창가를 좋아해요. 큰 나무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있죠. 오후에 해가 들이 쬘 때면 정말 아름다워요. 작업 끝내고 집에 들어와 빛이 든 침실을 볼 때 가장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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