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는 불필요하지만 삶에는 필요한 것들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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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는 불필요하지만 삶에는 필요한 것들
불필요상점 대표 오세정

Text | Kakyung Baek
Photos | Siyoung Song

경리단길 골목 어느 주택의 지하에는 기괴하고 키치하면서도 아름다운 취향을 가진 빈티지 컬렉터가 있다. 그가 운영하는 불필요상점에는 소련 시대에 만들어진 우주선 모양 램프와 오래전 안과 의사가 사용하던 안구 해부도가 걸려 있다. 그곳에서 빈티지 물건을 사랑하는 태도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풍기는 향이 정말 좋아요.

직접 말아서 판매하는 인센스 스틱 향이에요. 주문을 받으면 제가 쉬는 날마다 음악을 들으며 인센스 스틱을 말아요.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지만 치유의 시간으로 즐기고 있어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오리지널 빈티지 오브제를 수집해 불필요상점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저의 취향으로 들여놓은 것 70%, 나머지는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으로 구비해놓은 곳이에요.

 

빈티지라는 말 앞에 ‘오리지널을 붙이는 이유가 있나요?

요즘 들어 거세진 레트로 열풍으로 불필요상점에도 20~30대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레트로한 스타일을 전부 빈티지라고 통용해서 쓰곤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중국에서 대량생산한 미키마우스 컵도, 제가 발품 팔아 찾은 50년 전 미키마우스 컵도 똑같이 빈티지라 부르는 것이죠. 그런 게 아쉬워서 처음에는 손님들에게 물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짧게 줄여서 ‘오리지널 빈티지’라고 말해요. 오랜 시간을 견뎌낸 제품, 얽힌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뜻해요. 빈티지 스타일과는 구분하고 싶은 것들이죠.

“요즘 들어 거세진 레트로 열풍으로 불필요상점에도 20~30대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레트로한 스타일을 전부 빈티지라고 통용해서 쓰곤 하더라고요.”

빈티지 스타일과 레트로풍이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봐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어요. 불필요상점을 하기 전에는 우사단길에서 더 작은 상점을 했죠. 빈티지 소품과 의류를 팔았는데, 손님은 적었어도 구매로 연결되는 확률은 더 높았어요. 빈티지 물건이 정말로 좋아서 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요즘은 이런 스타일이 각광받다 보니 휩쓸려서 오는 손님이 많아요. 단체로 몰려와서 물건을 본다기보다는 공간만 사진 찍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처음에는 그런 분들도 정말 반가웠지만 요즘에는 회의감을 들 때도 있어요.

빈티지 컬렉터이자 불필요상점 주인으로 일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나요?

첫 직장은 무역 회사였고 그다음에는 여행사 일을 했어요. 맡은 일을 잘 해내긴 했지만 제 성격 때문에 회사 생활이 쉽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보성 녹차밭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고 쳐봐요. 보통 그곳에 가본 적 없는 가이드라면 인터넷으로 지도를 다운받거나 장소에 대한 자료를 암기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전날 직접 녹차밭에 가보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융통성 없고 꼼꼼한 성격 덕분에 저와의 여행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중 몇몇은 친구가 되기도 했죠. 그 친구들이 사는 나라로 여행 갈 때마다 빈티지 숍이나 오래된 그릇 가게에 데려가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오래된 물건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 모은 물건으로 언젠가 이런 상점을 열겠다는 생각을 했나요?

아니요. 이걸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한 10년 전쯤 ‘키스 마이 하우스’라는 온라인 빈티지 숍 사이트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때마침 여행사를 그만둔 시기였는데 거기에서 파는 물건 중에 제가 갖고 있는 게 꽤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이거나 해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이슬람 사원 근처에 살았는데 동네를 산책하다가 ‘임대’라 쓰인 작은 공간을 봤어요. 슬럼가 분위기, 키치한 느낌을 좋아하는 저는 그 골목과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거기에 빈티지 편집숍 ‘20세기싸롱’을 처음 열었어요.

상점 이름이 독특해요. 불필요상점에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생활에는 불필요하지만 삶에는 필요한 것들’이라는 문구를 만든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가 이름 짓는 걸 좋아해요. 가끔 술 마시다가 떠오르는 이름을 적어놓은 리스트도 있어요. ‘이 사람이 술집을 열면 이 이름을 줘야지’ 이런 식으로 마음먹은 것들이죠. 불필요상점도 머릿속에 ‘탁!’ 하고 떠오른 이름이었어요. ‘내가 파는 물건은 그렇게 실용적이지 않지’ 이런 연상을 하다 자연스럽게 불필요상점이란 이름을 짓게 됐죠.

 

불필요상점을 여는 데 참고가 된 상점이 있나요?

청계천의 상점들요. 먼지가 쌓인 물건을 뒤적거리다가 너무 예쁜 물건을 찾아냈던 재밌는 경험이 영감이 되었어요. 또 유럽 출장을 다니다가 들른 플리 마켓과 야드 세일, 골목 상점도 있죠. 뭔가를 의도적으로 꾸민 곳이 아닌데 입구에서부터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거든요. 주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고 우리나라와 달리 임대료 걱정 없이 오랫동안 그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물론 그들에게도 현실적 애환은 있겠지만요. 저도 작은 상점에서 단골손님들을 맞으며 오래도록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곳 물건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는지 궁금해요.

원래는 일 년에 4~5번 바잉 트립을 떠나요.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가지 못했죠. 사실 요즘은 코로나19로 사업적으로도 굉장히 안 좋아요. 그래도 10년 전부터 꾸준히 거래해온 셀러들이 일본,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지에 있어요. 지금처럼 바잉 트립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들이 제 취향에 맞는 물건의 사진을 보내줘요.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바잉 트립은 거르지 않고 꼭 가려고 해요. 사진만 보고 받은 물건은 때때로 예쁘지 않을 때도 있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사는 것만큼 두근거림도 없거든요. 꼭 나가서 사 와야 하는 것이 있다면 책이에요. 1950년대에 나온 디자인 북이나 1970년대의 티셔츠를 총망라한 책 등 아마존에서도 찾을 수 없는 ‘쿨한’ 책은 이곳저곳을 직접 들춰봐야 찾을 수 있거든요.

직접 사 온 물건 중에 개인적으로도 탐났던 물건이 있나요?

너무 많죠. 하지만 제가 탐이 나면 대체로 금방 팔리더라고요.(웃음) 그중 프랑스 앤티크 숍에서 산 여인의 누드화가 있었어요. 사오자마자 금방 팔려서 아쉬웠죠. 그리고 우주선 모형의 조명이 있어요. 1980~1990년대 미국과 소련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에 정신이 없던 시절, 소련에서 제작한 우주선 모형 램프예요. 그 안에 특수 용액이 들어 있어서 열을 받으면 기괴하게 변형하며 움직이죠. 저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는 스타일인데, 의외로 좋아하시는 분이 많아요. 이 램프도 이미 예약되어 있는 제품이에요. 러시아 셀러가 이 물건을 구하느라 지금도 애를 먹고 있어요.

 

집에도 빈티지 물건이 많을 것 같아요.

원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초라한 것도 있기 마련이죠. 물건이 가득한 상점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제 개인적인 삶과 생활은 더 단출해지고 싶더라고요. 집에는 한국 빈티지가 많아요. 오래된 강화도 화문석 돗자리가 있고 일제강점기의 옷장을 책장으로 업사이클링한 가구도 있고요. 제가 업사이클링을 좋아해서 청계천 고가구점에서 이런 것을 사다가 새로운 쓸모를 덧입히기도 하죠.

“제 옆에 있는 물건을 보면 화려하지도 않고 부족한 면도 있어요. 하지만 물건을 산 장소, 그때 이 물건을 보면서 했던 생각 등 제 선택에 깃든 취향이 묻어 있어요.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집을 고르듯이 물건도 자신의 취향에 집중해 고르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에 녹아들어 있을 거예요.”

빈티지 물건을 사랑하는 태도란 무엇일까요?

가끔 손님들이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가 빈티지 물건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한 것을 찾곤 해요. 레이스를 깔아놓고 촛대를 세운다든가 하는, 요즘 트렌드를 응집한 이미지를요.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빈티지가 벌거숭이 임금님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분명 옷을 벗고 있는데 남들이 옷을 입고 있다고 하니까 입은 것으로 여기는 행동처럼요. 빈티지도 자신의 진짜 마음은 그리 예쁘지 않는데 다들 트렌드라 하니까 의미 없이 좇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한 박자 쉬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지만 보면 볼수록 신비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게 빈티지의 매력이에요. 무언가에 쫓기듯이 물건을 소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개인적으로 오래 애정을 갖고 사용한 물건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기자였던 아버지가 30대 때부터 사용하신 국어대백과사전이에요. 밑줄 친 흔적이 있고 빼곡한 메모지 때문에 원래 두께보다 훨씬 두꺼운 그 낡은 사전을 제게 물려주셨어요. 아버지의 예민한 언어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 사전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빈티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갈피마다 메모지가 끼워져 있는 그 사전이 바로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진짜로 세월이 만들어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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