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균이 숨 쉬는 공간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맛있는 균이 숨 쉬는 공간
발효 그로서리 앤 카페 큔

Text | Eunah Kim
Photos | Hoon Shin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오래 두고 먹으려고 식품을 발효시켰다. 큔이 제철 식재료를 일상의 식탁에서 즐기기 위해 택한 방법도 ‘발효’다. 과육과 껍질, 씨앗까지 우리고 말려서 남김없이 ‘끝까지’ 먹는 행위의 마지막 과정인 셈이다. 이는 요리 방법이라기보다 경이로운 채소의 다채로움에 화답하며 주어진 순환의 일부를 수행하는 삶의 방식에 가깝다.

(왼쪽부터) 수향, 에이코, 성은

2019년 12월 궁정동에 문을 열었어요. 홍대 앞 제철 요리 카페 ‘수카라’와 도시형 농부들의 직거래 장터 ‘농부시장 마르쉐@’를 이끌어온 수향 씨가 오픈한 새로운 공간으로 이목을 끌었는데요, 수향 씨를 비롯해 분의 공동 운영자에 대해 먼저 소개해주시겠어요?

저는 수카라의 오너이자 농부시장 마르쉐@의 기획자고요, 수카라 스태프이자 신촌의 팝업 주점 ‘달밤식탁’을 운영했던 에이코 그리고 수카라를 아끼는 주부이자 매니저였던 성은이 함께하고 있어요. 쌀누룩을 발효해서 만드는 조미료 라인의 경우, 예전에 수카라에서 요리사와 매니저로 일했던 동료들이 카리테미소Karitemiso라는 별도의 팀을 꾸려 큔에서 일부 제품을 담당하고요.

 

큔Qyun이라는 이름은 ‘균’이라는 의미라고 들었어요.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 즉 균의 활동이지요. 하지만 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어 논의 끝에 ‘큔’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큔의 모체는 수카라이고요. 그리고 수카라를 운영하다 자연스레 기획하게 된 채소 장터 마르쉐에서 거래되는 채소를 맛있게 먹으려다 보니 채소 메뉴 위주로 선보이게 됐고요. 고기나 해산물에서 익숙한 감칠맛을 채소로만 표현하려면 제3의 맛에 기대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발효를 연구하고 됐고 계속해서 연구 중입니다.

큔은 11명의 1인 가구가 모여 사는 공유 주택 청운광산 건물 1층에 입주어요. 입주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사실 최근까지는 코로나19로 모임이 불가능했어요. 청운광산을 운영하는 삼시옷(ㅅㅅㅅ, 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님이 워크숍을 제안한 적은 있어요. 큔은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아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봉투 대신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사용하는데요, 모든 영양소를 뽑아내 더 이상 사용할 게 없어진 식재료를 분해시켜 비료로 쓰죠. 공유 주택을 운영하다 보면 라이프스타일의 차이, 먹는 것의 차이로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해요. 그래서 이곳 입주자를 대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워크숍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채소 남김없이 모두 먹기’ 같은 워크숍을 입주자 대상으로 하는 거죠.

“그 (제철 요리) 재료가 손님의 집 안 식탁 위에서도 모든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발효라는 개념을 가깝게 여겼으면 싶었죠.”

유리병에 담아 판매하는 식료품 중에 ‘시오코우지’라는 낯선 이름도 보여요.(시오: 소금, 코우지: 누룩을 발효시킨 균)

일본에서 채소 절임 요리에 주로 쓰는 조미료인데요, 물과 쌀누룩, 소금 이 세 가지를 자연 발효시켜 만듭니다. 단맛과 감칠맛이 있어 채소 스톡 대신 사용할 수도 있고, 오일에 섞어 드레싱처럼 맛을 내기도 하고요. 한국은 습도가 낮아서 음식이 잘 부패하지 않지만 섬나라인 일본은 습도가 매우 높아서 음식이 부패하기 쉬워요. 그래서 쌀에 누룩을 입혀서 발효하는 방식이 발달했죠. 그리고 시트러스를 발효해 만든 소금도 있어요. 제주에서는 매우 고맙게도 레몬, 오렌지, 풋귤, 한라봉 등 10가지가 넘는 시트러스가 나와요. 이 시트러스를 껍질째 소금과 섞어 발효시켜요. 자연의 감칠맛을, 그것도 살아 있는 균으로 즐길 수 있게요. 이렇게 향과 감칠맛과 풍미, 단맛을 동시에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철 음식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발효’로 이어진 계기가 있을까요?

물론 다른 레스토랑도 제철 요리를 열심히 만들어 손님에게 내지만, 저희는 그 재료가 손님의 집 안 식탁 위에서도 모든 음식에 풍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발효라는 개념을 가깝게 여겼으면 싶었죠. 한국 가정에서 주로 접하는 발효 식품은 된장, 고추장 등 장일 텐데, 한국의 장은 매우 훌륭해요. 일본이 쌀누룩을 빚어 만든 정제된 균을 사용한다면, 짚을 꼬아 만든 끈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워 만드는 한국의 장은 야생 그대로의 원초적인 매력이 있죠. 균의 다양성이 아주 풍부한 발효 체계를 갖추고 있는 거예요. 한국에만 200개가 넘는 장이 있는데, 한국인에게는 이것이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한국 발효의 매력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장을 잘 접목시킨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려고 연구 중입니다.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 너무 좋은 것이 많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요.

 

가구 접시, 컵, 그리고 테이블 위 제철 채소 모형(?), 공간 전체에 허브 향 모두 잘 어우러져 있어요. 이곳에 오신 분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나요?

아, 테이블 위에 있는 채소는 모형이 아니에요. 놀랍게도 진짜지요.(웃음) 수카라에서 일주일에 한 번 채소 가게를 열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농부들의 작물을 판매하는데, 그 채소를 모아놓고 보면 너무나 아름다워요. 저희끼리만 보기 아까워서 다른 분들에게도 보여드리려고 그저 테이블 곳곳에 올려둔 거예요. 저희는 음식을 내는 것도 제철의 색깔을 최대한 죽이지 않는 방식으로 담을 뿐이에요. 주로 아는 친구들이 손으로 빚은 그릇을 사용하는데, 그릇에 음식을 맞춘다기보다 그저 자연의 것들이 만나면 저절로 아름다워지더라고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보고,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와 먹거리를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 알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요.

마르쉐@는 결국 제가 ‘얼굴이 보이는 소비’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의 여파를 일본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생산자가 보이는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죠. 그렇게 장터를 만들고 보니까 텃밭 정도일지라도 다양한 작물을 조금씩 생산하는 분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이런 농부들이 계속 규모를 키워서 이제는 한 분이 100종이 넘는 작물을 키우는 것도 봤어요. 이런 분들이 늘어나면서 채소의 다양성이 확보되죠. 대규모 유통을 하는 마트에서는 규격화된 채소를 납품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저기 보이는 노란 것도 애호박이거든요. 보통 슈퍼에서는 비닐로 싸인 초록색 애호박을 팔죠. 그런데 실제로는 이렇게 주먹만 한 조그만한 것도 있고, 꽃이 달린 것도 구할 수 있고, 꽃만 팔아달라고 해서 호박꽃만 살 수도 있어요. 저희랑 거래하는 농부는 30~40팀 정도 되죠.

 

매우 이상적인데, 어떻게 유지가 가능한지 궁금해요.

보통 우리가 먹는 작물의 99%는 씨앗을 다시 심으면 첫 번째 심은 작물과 같은 열매가 나오지 않아요. 인위적으로 교잡한 씨앗이기에 어떤 열매가 나올지 모르죠. 하지만 농부들 사이에 전해지는 토종 씨앗은 온전하게 같은 열매가 열려요. 그 지역의 흙과 자연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라날 뿐이죠. 하나의 애호박에서 나온 씨앗도 농부의 농법에 따라, 겉모습은 비슷하다 해도 맛이 조금씩 다른 애호박을 탄생시켜요. 씨앗의 순환을 이어가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당연했지만 근대 소비 시스템 속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순환이지요. 유통 마진을 줄이기 위해 직거래를 하는데, 그렇다고 이윤이 남는 일은 아니에요. 사실 소비자에게는 마트에서 사는 유기농 작물이건 마르쉐 작물이건 가격 면에서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거예요.

“모든 걸 사서 먹는 문화가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드는 연습도 해야 해요.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만 놔도 유산균을 키울 수 있어요. 유산균은 이미 모든 채소에 다 있어요.”

그럼에도 이러한 거래와 씨앗의 순환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아주 작은 순환이지만, 이 순환이 커지고 많아져야 누구도 아닌 바로 제가 계속해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저희는 채소 가게에서 작물을 사 올 때마다 펼쳐놓고 모두들 감동하거든요. 잎에 열매 달린 고수 본 적 있으세요? 저희는 고수 열매를 아이스크림에 올려서 내요. 고수 씨앗도 너무 맛있어요. 여기선 당연한 재료인데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 많죠. 그런 걸 만날 때마다 ‘진짜 이건 축복이다’ 싶어요. 제가 이 맛있는 걸 평생 먹으려면 주변에 좋은 농부가 더 필요해요. 그리고 모든 걸 사서 먹는 문화가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드는 연습도 해야 해요.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만 놔도 유산균을 키울 수 있어요. 유산균은 이미 모든 채소에 다 있어요. 그것을 부패시키지 않고 발효하는 법을 안다면 어떤 변수가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안심이 들죠.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도 보태자면, 2006년 문을 연 카페 수카라, 2019년 시작한 큔도 이 공간이 주는 기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두 군데 모두 10년 운영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입주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건물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는 안정감(수향은 ‘안심감’이라 표현했다)을 갖고서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식음료 공간은 한국에 많이 없어요. 산울림소극장 1층의 수카라도 그렇고, 큔이 들어선 공유 주택 청운광산도 그렇고, 구두로나마 10년을 약속받고 입주했어요. 건물주들의 응원이 컸죠. 길게 봐야 나오는 기획이 있어요. 10년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힘든 것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가 뭘 모르고 뛰어들었다는 것도 한몫을 했어요. 저는 30대 초반에 잡지 편집자를 하다 시작했거든요(그는 일본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 <수카라>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수카라’는 숟가락을 뜻하는 일본어로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를 상징한다). 얼마 동안의 기간에 얼마만큼의 수익을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너무 모르고 뛰어들었는데, 모든 걸 따져가며 시작했다면 수카라가 보여준 식문화 전체를 바라보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 이윤을 남긴 적은 없는데, 이 관점을 고집하고 유지하는 것만 해도 다행인 것 같아요. 성공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요.

 

수향 씨는 재일 교포로서 일본 요코하마, 한국 차이나타운 등지에 살면서 실로 다양한 음식을 접다고요. 한국 음식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부, 요리사도 많이 만고요. 그런 수향 씨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음식은 생존이에요. 인간은 먹고 사는 동물인데,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생존과는 거리가 먼 이유로 음식을 섭취하고 있어요. 이제 거기서 벗어날 때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의학적으로 장이 ‘제1의 뇌’라고 하더라고요. 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이 들어 있거든요. 은하수의 별보다 많을 거예요. 이 미생물들이 원하는 것을 인간이 행하는 거예요. 미생물이 마치 뇌처럼 지시를 내리는 거죠. 계속해서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만 섭취하면 해로운 균이 많아지면서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하고 피부에 두드러기가 날 수도 있어요. 사실 음식은 제 몸속의 균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이기도 한 거예요. 좋은 먹이를 주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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