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문을 열고 뛰어드는, 영화 같은 곳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옷장 문을 열고 뛰어드는, 영화 같은 곳
이미화 작가, 영화책방 35mm

Text | Kakyung Baek
Photos | Siyoung Song

장안동 촬영소 사거리에는 책도 읽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영화책방 35mm가 있다. 장롱 문을 열고 들어가는 옷장 영화관에서는 운영자인 이미화 작가가 선정한 영화가 상영된다. 그는 독일에 머물면서 터득한 삶의 방식으로 30년 넘은 오래된 가구에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했다. 자개장, 소파, 창틀 등 낡은 가구가 이곳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

영화 관련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스토리텔링을 전공했어요. 영화, 웹툰, 축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배웠는데 그중에서도 영화를 좋아했어요. 모든 사람이 영화를 보는 방식이 제각기 다를 텐데 저는 영화 속 대사에 집중해서 봐요. 대학생 때 과방에 앉아서 영화를 틀어놓고 대사를 따라 적었던 적이 많아요. 좋아하는 대사를 갖고 싶은 마음으로 따라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나눈 곳에 찾아가게 되고 영화 속 장소의 사진도 찍어서 책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을 쓰게 되었어요. 그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 분야에 집중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와 장소는요?

대사가 좋은 영화라고 하면 역시 ‘비포’ 시리즈죠.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로만 이뤄졌잖아요. 이 영화를 촬영한 장소에 직접 가보니 더욱더 좋았어요. 현실적인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 등장인물들이 존재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영화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레코드 가게나 박물관 앞에서 해 뜨는 걸 지켜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곳도 좋았고요. 당시엔 곳곳을 돌아다니며 혼자 사진 찍고 글도 써야 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요즘 여행 가는 게 어려워져서인지 아련하고 좋은 기억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책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요?

독일에 3년쯤 거주하면서 베를린을 베이스캠프 삼아 돌아다녔어요. 여행으로 간 건 아니었고 실제로 그곳에 거주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사실 베를린에 간 이유는 책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간 거였어요. 원래는 1년 정도 워킹홀리데이로 가서 놀다 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몇 달 지내보니 정말 좋아서 2년 반 정도 귀국 계획을 연장했죠. 당시 베를린에서 지내면서 쓴 일기를 모아서 첫 책 <베를린 다이어리>를 냈는데 이걸 보고 다른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게 두 번째 책인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이에요. 영화 속 장면을 직접 찾아가서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건 이전부터 혼자서 하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출판을 하기 위해서 전부 다시 찾아가서 제대로 사진을 찍었죠.

장안동에 영화책방 35mm 열게 된 계기는요?

지금 이 건물 1층이 당시에 비어 있었는데, 남자친구와 함께 어떤 공간으로 운영해볼 기회가 주어졌어요. 이곳이 촬영소 사거리라는 걸 알았을 때 영화책방이 있으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알아보니까 홍상수 감독 부모님이 실제로 1960년대에 영화 촬영소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한국 영화를 많이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2권의 책을 내고 잠시 쉬던 때에 책방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어요. ‘언젠가 책방을 만들어야지’ 했던 막연한 꿈이 실제로 책방에서 일하면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어떤 책방을 차려야 할까 생각하다가 저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남자친구는 영화 연출을 하고 있으니까 영화와 책을 잇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거죠.

“어떤 책방을 차려야 할까 생각하다가 저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남자친구는 영화 연출을 하고 있으니까 영화와 책을 잇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거죠.”

지금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제가 독일에 있을 때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남자친구는 한국에 있으니까 8000km나 떨어져 있잖아요. 이 친구가 장거리 연애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시나리오였고 대부분의 전개는 전화로만 진행돼요. 저희도 실제로 그랬고요. 전화로 “오늘은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가볼까?” 이런 식으로 장난을 쳤거든요. “2층에 올라와봐, 여기 피아노 있다.” 이 영화도 한국에 있는 여성과 프랑스에 있는 남성이 전화로만 데이트해요. 지금 나오는 영화가 그것이고, 제목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그 서점과 동명으로 지었어요.

옷장을 열고 들어가는 옷장 영화관이 정말 예뻐요.

멀티플렉스처럼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편하게 소규모로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어요. 저희가 처음 이 공간을 둘러보고 있을 때 위층 할머니가 이사를 준비하고 계셨어요. 할머니는 이곳에서 30년 이상 사셨는데 고가구가 너무 커서 처치를 못 하고 저희에게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하셨죠. 옷장 영화관 입구에 있는 장롱도 그렇고, 카페에 있는 자개장도 그렇고, 다 할머니가 주신 거예요. 제가 어딘가로 들어가는 문을 좋아해서 곳곳에 문을 놓았어요. 원래는 옷장에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친구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영화를 감상하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좋은 사운드, 의자, 화면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환경에서 영화를 보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대신 이곳으로 들어오는 공간을 좀 새롭게 만들려고 옷장을 뚫었어요.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통로처럼요.

이 공간에서 영화 중에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요?

지금 떠오르는 건 <색, 계>인데, 이 영화에 베드 신이 과하게 나오잖아요. 영화를 보기 전에 맥주를 한 캔씩 마셨어요. 그달은 이안 감독 기획전을 하고 있었고 <색, 계>를 보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인 거라 서로 다 아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모르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기 때문에 너무 맨 정신이면 중간에 나가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웃음)

 

코로나19 발생 이후 영화 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사람들이 영화관을 가지 않아 영화 산업이 많이 축소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형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이지, 저희 같은 소규모의 신원이 분명한 공간은 수요가 있어요. 저희가 토요일마다 옷장영화관을 대관하는데, 예약을 진행한 다음에 원하는 영화를 틀어드려요. 그런데 요즘 예약이 정말 많아요. 저는 앞으로 이런 소규모 극장이 많아질 것 같아요. 또 OTT 서비스 가입자가 엄청 많아졌잖아요. 왓챠나 넷플릭스 말고도 여성 영화 플랫폼이 따로 있거든요. 가까운 시일에 장르 영화만 모아놓는 서비스도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앞으로 소규모 극장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런 옷장 영화관 같은 공간도 만들고 싶고요.”

작가님 방은 왠지 글 쓰는 데 최적화되어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해준다면요?

책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어요. 앉는 공간마다 손에 잡히는 데 책을 두고 싶어서요. 소파에도 되게 많고 잠자는 머리맡에도요. 한 번에 한 권씩만 읽지 않거든요. 소설이야 한 템포로 읽어야 하지만 에세이 같은 경우는 호흡이 짧고 어느 때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까요. 한 번에 읽기 아까워서 그때그때 한 챕터씩 읽는 경우가 많아요. 글은 노트북으로 쓰기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쓰고요. 저는 평소에도 어떤 주제의 글을 써야 한다면 그 주제에 대해 밥 먹을 때도, 버스 탈 때도 계속 생각해요. 앉아서 그 생각만 해야 할 장소가 따로 필요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집이나 책방 등 공간을 만들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요?

편한 것, 낡은 것을 좋아해요. 제가 밖에서 많이 주워 오거든요. 집은 남자친구가 꾸민 거라 제 취향에 가깝진 않고, 제가 만든 이 책방이 더 제 취향에 가까워요. 할머니의 가구를 선뜻 가져온 것도 손때 묻은 것, 낡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야 저도 막 쓸 수 있고요. 새 물건은 모셔야 할 것 같은데, 가구는 저한테 맞게끔 길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쉽게 길들일 수 있게 편하게 쓸 수 있는 게 좋아요.

빈티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낡은 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독일에 살 때 그런 문화가 있었어요. 본인에게 필요하지 않은 걸 문 앞에 두고 독일어로 ‘가져가세요’라고 써놔요. 그걸 가져가서 쓰는 사람이 많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아요. 못 쓰는 가구를 버리는 것도 환경오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플리마켓 문화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그런 빈티지를 자연스럽게 접한 것 같아요.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공간이 있나요?

앞으로 소규모 극장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런 옷장 영화관 같은 공간도 만들고 싶고요, 한 사람을 위한 극장을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해드리고, 그분이 극장에 오시면 그 사람만을 위한 영화를 틀어드리는 거예요. 영화 처방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상담가도 아니고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제가 상담해주기보다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인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여주면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도 영화로 위로를 많이 받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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