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손으로 느끼고 싶은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바르셀로나의 손으로 느끼고 싶은 집
세라믹 아티스트 마르타 보닐라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수백 번 손이 오간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도자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세라믹 아티스트 마르타 보닐라Marta Bonilla는 본능과 감각으로 한 줌의 흙 같은 작품을 만든다. 10년째 거주하는 바르셀로나 아파트 또한 별다르게 꾸미지 않았다. 내추럴한 나무 가구와 화이트 컬러로 정돈한 소박한 아파트는 그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 산 지 10년째라 들었어요. 꽤 오래된 아파트인데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우선 동네가 마음에 들었어요. 엘본El Born 지역은 중세 도시 분위기에 부티크 디자인 숍, 패션 매장, 고급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신구가 조화를 이루는 동네거든요. 둘째로 중심지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요. 또 바로 옆에 시우타데야Ciutadella 공원이 있어 심리적으로 도심과 떨어진 곳에 사는 것처럼 안락한 기분이 들죠. 창문 너머로 공원이 보이는 풍경은 1살짜리 아기를 키우는 가족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마지막으로 1900년대에 지은 건물이라 나름대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 고약한 단점이지만요.

 

바르셀로나에 가면 건축가 가우디의 유명 건축물을 반드시 보려고 하죠.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달리 건축물이 주는 남다른 분위기가 있어요.

바르셀로나 지도를 보면 반복적인 사각 블록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로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토목 엔지니어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o Cerdá가 구상한 신도시 확장 계획 방식으로 건설해 이런 형태가 되었죠. 건축물도 이를 바탕으로 지었는데 땅 모양과 길, 광장, 건축물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요. 특히 건물 주변 야외 공간을 건축물처럼 만들어 사람, 건축, 자연을 자연스럽게 묶었죠. 사각 블록 하나만 봐도 그 안에 공공 시설, 공원, 상업 시설 등이 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고 다른 사각 블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삶의 모든 것이 사각형 안에 있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가 대표적인데,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블록 건물이 이어져 있죠. 내부 또한 두꺼운 나무 문, 높은 천장, 개별 발코니, 유압식 타일 바닥 등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신식 아파트보다 규모가 크고 창문이 커서 빛과 바람이 잘 통해요.

집 안 전체가 나무 소재와 화이트 컬러로 꾸며져 있어요. 흙의 성질과 도자 과정이 선명히 보이는 당신의 작품을 보는 것 같네요.

화이트 컬러를 가장 좋아해요. 다들 꾸밈없는 색이라 말하지만 사실 ‘꾸밈을 위한 색’이죠. 화이트 컬러 옆에서는 어떤 색깔이든 화려하게 빛을 발하니까요. 또 재료 자체의 컬러를 살리는 것을 좋아해요. 재료 자체가 가진 컬러는 팬톤 컬러도 구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어요. 손을 더듬어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개인적으로 찰스 & 레이 임스 디자인 체어보다 투박한 나무 의자에 더 시선이 가요.

"인테리어는 삶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질이 아니라 감정을 더하는 일이죠."

섬세하게 액자 프레임까지 나무 소재와 화이트 컬러로 통일했어요. 직접 인테리어한 것인가요?

저와 파트너가 함께 했어요. 인테리어는 삶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질이 아니라 감정을 더하는 일이죠. 집 안 곳곳을 가족이 직접 만들고, 자주 쓰고, 아끼는 물건으로 꾸몄어요. 예를 들면 아이 얼굴을 그린 그림을 벽에 걸거나 직접 만든 조명을 거실에 걸었죠.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같은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인테리어 잡지에 등장할 만한 멋진 소품 같은 건 없고 약간 지저분하지만, 이 집에 사는 가족 세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멋진 소품이 없다고 했지만 가구 범상치 않아 보여요.

1957년에 제작한 브라운 라디오 턴테이블은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에요. 나무 패턴 자체가 멋져요. 음악을 틀면 나무가 공명하면서 소리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나죠. LP 음반을 모으는 게 취미라 책장에 책보다 음반이 더 많아요. 잠자는 시간 빼고 음악을 듣는 것 같아요. 참나무로 만든 거실 테이블은 공원이 바로 보이는 곳에 놓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밥도 먹고, 그림도 그리고, 휴식도 취하는 등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물건이에요.

 

아이를 위해 직접 만든 가구나 소품이 있나요?

최근에 나무로 동물 장난감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아이 방 문에 걸어놓은 알파벳 오브제, 천장 조명, 자수 침대 시트 등 배 속의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만든 사랑스러운 물건들이 있어요.

엄마가 된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을까요?

물론이죠. 원래 제 삶의 모토가 ‘남들보다 한 발짝 느리게’였어요. 타인과 경쟁하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환경에 종속되지 않고 저만의 법칙으로 천천히 생각하며 살고 싶어서요. 그런데 엄마가 되니 여러 자아가 부딪히면서 모든 역할을 잘 해내는 슈퍼맘이 되고 싶더라고요. 점점 여유가 없어지고 삶의 속도가 빨라졌어요. 그래서 흙을 부여잡고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죠. 조바심 내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큰 숨을 내뱉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엄마가 된 이후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작품 속에 고요와 평화를 담고자 하는 바람이 더욱 강해졌어요.

 

작업실이 다른 동네에 있더라고요. 작업실을 다른 곳에 마련한 이유가 있나요?

제 파트너 직업이 포토그래퍼인데 그 또한 집과 다른 동네의 작업실을 찾았어요. 커다란 집을 구해 집 안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작업을 할까 했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에서 아티스트로 감정 전환이 안 되더라고요. 일할 때는 오로지 저만 생각해야 하는데 아이가 옆에 있으면 그럴 수가 없죠. 제가 작업실에 갈 때는 파트너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요.

작업실이 있는 엘바로그라시아El Barro de Gracia는 어떤 동네인가요? 왜 이 동네를 택했나요?

안토니 가우디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집인 카사 비센스Casa Vicens(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 중)와 이상의 도시를 꿈꾸며 만든 구엘 공원Park Güell이 있는 동네예요. 갤러리와 박물관이 즐비해 영감이 빛처럼 찾아오는 곳이죠. 집에서 버스를 타고 작업실로 향하면서 똑같은 거리를 지나지만 매일 다른 풍경이 보여요. 거기서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그림을 그려요. 그렇게 몇 초 만에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작품을 시작하죠.

 

작업실이 골목 안 있어서 조용한 것 같아요.

세라믹 도자 작업은 생각보다 예민한 작업이에요. 흙 상태일 때는 손 가는 대로 마음껏 모양을 잡을 수 있지만 가마에 들어가면 유리만큼 쉽게 깨지죠. 그래서 가마 작업을 할 땐 장시간 혼자 집중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너무 적막하면 오히려 방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웃들이 나누는 대화와 웃음소리를 들으려고 일부러 문을 살짝 열어둬요. 사람들 목소리가 집중력을 높이고 안정감을 주는 백색 소음 역할을 하는 거죠.

시간을 들여 손으로 매만지고, 아기 보살피듯 가마에서 구워내는 작업 과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지만 어수선하지 않, 순수한 아름다움이 전해져요.

아마 의도를 담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이렇게 하면 더욱 아름답겠지’라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쌓인 감각과 본능으로, 손이 먼저 반응하는 작품을 만들거든요. 특별한 기술도 없어요. 흙을 돌돌 말아 쌓아 올리는 코일링 기법으로 만드는데, “먼 과거에 우리는 도자기를 왜, 어떻게 만들고 사용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찾은 방법이에요.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흙을 대하니 원시적이고 순수한 분위기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본인이 직접 쓴 작품 소개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나의 작품은 실용이나 기능을 따지기보다 인테리어 오브제에 더욱 어울린다.” 기능이 미학보다 부족하다고 인정한 점이 독특했어요.

세라믹 도자기라고 하면 그릇처럼 사용하고, 닦을 수 있고, 잘 깨지지 않아야 한다는 실용적 조건을 따지는데, 식물처럼 책상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오브제로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어요. 제 작품은 그릇, 조명, 화분 등의 이름이 붙지만 굳이 빵을 담지 않아도, 꽃을 꽂지 않아도 테이블 위에 둘 수 있죠.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도자기를 보고, 느끼고,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적은 글이에요.

을 듣고 보니 작품이 바닥, 벽, 책장, 테이블 등 집 안 구석구석 해변에서 주워 온 작은 조약돌처럼 모여 있네요.

맞아요. 집 안이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무 재료나 화이트 컬러 때문이 아니라 조약돌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품 때문이에요. 아름다운 세라믹 작품 한 점이 거실 바닥에 들어온 햇살 한 조각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죠.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흙을 이용해 가구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공간에 관심이 많았는데, 가구 작업을 하면서 저희 가족을 위한 집을 한번 그려보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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