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의 촉각, 후각, 청각이 살아 있는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코펜하겐의 촉각, 후각, 청각이 살아 있는 집
액세서리 디자이너 위보네 코네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덴마크 코펜하겐에 사는 위보네 코네Yvonne Koné는 1년 전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삶의 흔적이 없는 공장 건물로 이사했다. 액세서리 디자이너 코네의 집은 텅 빈 느낌이 없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편리한 구조가 아닌 감각적인 분위기. 차분한 컬러와 생기 있는 빛이 만나면서 생겨나는, 만지고 싶은 집에서 살고 싶었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1930년대에 지은 공장 건물이죠. 코펜하겐 중심지는 동네 자체가 1700년대 초반에 지은 건물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 지역이에요. 동네보다 건물 자체가 마음에 들어 이사했어요.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버리고 이곳으로 옮겼어요.

전에 살던 곳은 전형적인 덴마크 아파트였어요. 높은 천장, 소나무 바닥, 거실만큼 커다란 방, 클래식한 몰딩, 방화성과 내구성을 높인 스터코stucco 마감 방식. 편의와 실용으로 꽉 차 있었죠. 하지만 저에겐 불편했어요. 지나치게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오히려 어색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덜 섬세하고, 덜 실용적이길 바랐어요. 편리한 구조보다 남다른 분위기의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우연히 이 건물을 알게 되었는데, 삶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제 입맛대로 가꾸면서 살아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전에 살던 곳은 전형적인 덴마크 아파트로 편의와 실용으로 꽉 차 있었죠.
하지만 저에겐 불편했어요. 덜 섬세하고, 덜 실용적이길 바랐어요.”

백지상태의 공간을 입맛대로 개조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세요.

아예 집을 새롭게 지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현관문까지 바꿨으니까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 거실과 방을 따라 커다란 창문과 발코니가 죽 이어지는 것이었어요. 창문이 워낙 커서 채광이 완벽하게 보장되었죠. 한낮에는 눈이 부실 만큼 빛이 넘쳤어요. 하지만 이 집의 장점은 밝음이 아니라 어둠이에요. 밝은 집일수록 시간이 갈수록 빛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다층적으로 어두워지거든요. 밝은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시시각각 받게 되죠. 이런 다재다능한 요소를 집 안에 오래 붙잡아두려면 컬러가 있어야 해요. 광택이 있는 화이트 페인트는 빛을 움켜쥐고 놓아주려 하지 않아요. 저희 집을 한번 보세요. 빛 때문에 화이트처럼 보이는 것이지 사실은 크림 컬러죠. 침실은 핑크고요. 밤이 되면 전체가 베이지 컬러처럼 보여요. 이런 시각 효과는 페인트, 마감, 물건 배치의 차이에서 발생해요.

페인트, 마감, 물건 배치 차이로 컬러가 달라 보인다는 가요?

저는 독일 회사 케임Keim의 페인트만 사용해요. 분필과 천연 재료를 이용한 미네랄 염색으로 컬러를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질감을 내죠. 말로 표현하자면 보송보송, 부들부들해요. 빛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흡수하고 소화하죠. 마감 방식에 따라 같은 컬러라 해도 차이가 나요. 창틀은 새하얀 컬러로 광택이 살아 있지만, 벽은 분필 페인트로 한 번 더 칠해 더욱 부드럽게 느껴지죠. 바닥도 같은 컬러지만 두껍게 광택제를 발라 느낌이 또 달라요. 또 주변에 어떤 컬러의 물건이 놓이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져요. 거실 중앙에 놓인 오렌지 브라운 컬러 테이블, 블랙 컬러 체어, 크림 컬러 커튼 부분은 주변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 커다란 초록 화분 하나를 거실 중앙에 놓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확 달라지죠. 가구와 물건은 없지만, 텅 비어 있다기보다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이유가 바로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의 온도 차이 때문이에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세한 농도로 분위기가 달라지죠.

그러고 보니 살림살이가 별로 없네요.

의도적으로 미니멀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 성격이 그래요. 제 삶에 가치를 더해주는 물건이 아니라면,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면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리 정돈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죠. 먼지나 머리카락을 빨리 발견할 수 있도록 바닥재도 화이트 컬러로 골랐고요.(웃음) 제 일 자체가 늘 난장판인 상황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깨끗하고 비어 있는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음 세대 물려주고 싶을 정도로 아끼는 물건을 소개해주세요.

거실에 화분처럼 놓여 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잔카를로 피레티Giancarlo Piretti의 알키 체어Alky Chair. 1960년대 빈티지 제품인데 알쏭달쏭한 그린 컬러를 띠죠. 그래서 단순하지만, 감각적이고 의외로 편안해요. 커튼 아래 놓인 1930년대 아프리카 세누포Senufo 부족의 우드 체어는 손으로 만든 물건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온기가 있어요. 삐뚤삐뚤한 다리가 매력적이죠. 침실에 걸린 이발소 간판도 좋아하는 물건이에요. 저는 특히 헤어 제품과 향수, 룸 스프레이, 향초 등에 민감한 편이에요. 천연 재료로 만든 아로마 헤어, 스킨 제품으로 오스트리아 브랜드 ‘Less Is More’를 이용하는데, 제 웹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여기 이렇게 덴마크 시내 풍경이 있잖아요.
가구를 놓으면 풍경을 놓치게 돼요.”

발코니에 가구 한 점 놓을 법한데 아무것도 없네요.

여기 이렇게 덴마크 시내 풍경이 있잖아요. 가구를 놓으면 풍경을 놓치게 돼요. 테이블과 의자를 두면, 앉으면서 시야가 담 아래로 낮아지고 테이블에서 무언가 행동하려고 하죠. 그러면 햇빛, 바람, 향기, 새소리 등 촉각, 후각, 청각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비어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게 더 많아요.

아무래도 공장 건물이었기에 살면서 현실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이 있었을 것 같아요.

현관문을 열면 복도가 없고(덕분에 신발장이 없다), 거실을 관통하는 기둥이 있고(덕분에 공용 공간과 개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나뉜다), 개인 방이 무척 작아요(덕분에 침실에서 잠만 잘 수 있다).

거실 한쪽에 이미지와 가방이 가득 놓여 있어요. 집에서 일하는 중이었나요?

맞아요. 몇 달 전부터 거실이 홈 오피스가 되었죠. 벽에 걸린 이미지는 컬러 아이디어를 위한 것인데, 그날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컬러를 수집해 이렇게 벽에 붙여두곤 해요. 저만의 컬러 칩을 만드는 것이죠.

 

제품을 디자인할 때 컬러부터 정하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컬러는 뭐랄까, 요리를 위한 재료와 같아요. 컬러 칩을 이렇게 만들어두고 옷을 입을 때, 친구 선물을 고를 때, 제품 컬러를 정할 때 수시로 참고하죠. 목적 없이 컬러 칩을 매일 만들어봐요. 지난 컬러 칩만 봐도 그날 기분을 추측할 수 있죠.(웃음) 제품을 개발할 때는 재료를 가장 먼저 고르고, 그러고 나서 형태 작업에 들어가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를 찾아가는 식이죠. 형태가 잡히면 어울리는 컬러를 그날 컬러 칩에서 고르죠. 저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어떤 컬러가 어울릴지 확신이 딱 와요.

선천적으로 컬러 감각이 남다른 아닐까요? 위보네 코네 세서리 또한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선명한 컬러로 유명잖아요.

DNA가 남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위기를 섬세하게 파악하죠. 컬러 감각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컬러, 질감, 향기 등을 먼저 구체적으로 찾아보세요. 제가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면 비율과 배합을 빠르게 읽어내는 능력인 거 같아요. 패션이 아닌 액세서리 디자인을 선택한 것도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보다 컬러, 소재, 질감 등을 적절하게 혼합하는 일이 제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전 트렌드가 아닌 사람에 따라 변하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요. 그 사람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물건, 그래서 그 사람이 평생 소장하는 고전이 되길 바라요.

 

북유럽 인테리어 하면 모노톤 컬러가 떠올라요. 실제로 다양한 컬러를 시도하는 부담을 느끼지 않나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제는 달라요. 저는 따뜻한 컬러를 무척 좋아하죠. 특히 나무 소재에 열광하고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선호해요. 미니멀리즘보다 우드 공예 디자인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아요. 덴마크 디자인을 좀 더 깊게 파고들다 보면 다양한 컬러를 발견할 수 있어요. 지역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죠. 덴마크 인테리어를 미니멀하게 해석하는 것은 컬러 때문이 아니라 컬러, 비율, 소재 등이 균형 있게 녹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화려하지 않지만 섬세하죠. 덴마크인이 제일 잘하는 것이 특징을 감추는 것이에요.(웃음) 확연히 보이지는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드러나죠. 겸손 뒤에 자신감이 감춰져 있어요. 알면 알수록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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