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 시킬 가구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하루의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 시킬 가구
디자이너 설수빈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최근 코리안 아르데코 스타일의 의자 시리즈로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 설수빈. 그가 1920년대 프랑스에서 태동한 아르데코 스타일과 동시대의 한국적 미를 조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가려는 방향과 디자인하는 과정에 대해 유독 골똘한 모습으로 말하는, 그의 흥미진진한 서사를 기록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가구를 디자인하는 설수빈입니다.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전시 <뉴-호옴>에 참여했죠.
1970~1980년대 아파트 입식 문화가 탄생한 시기, 사람들의 욕망에 관한 전시였어요. 이제는 보기 힘든 여러 가지 가구, 소품을 전시했고 그 당시만의 디자인 랭귀지도 선보였어요. 저는 시그너처 시리즈인 ‘후프 체어’와 ‘U 스툴 시리즈’로 전시에 참여했어요. 그 시대에 유행한 등나무 의자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죠.

코리안 아르데코를 표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아르데코art déco란 프랑스에서 1920년대에 시작된 아트 스타일이에요. 대칭 구조를 중시하고 기본 도형을 반복해 사용하는 게 특징이죠. 대칭이나 반복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데 이는 곧 조형미의 기준 중 하나이기도 해요. 코리안 아르데코를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대학 시절 하이엔드 가구 편집숍에서 일하면서 아르데코 스타일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에 관한 전시를 기획하고 그의 가구를 살펴보면서 마감 방식, 재료 사용 방식 등을 연구했어요. 물론 그가 당시의 여성 디자이너로서 지키려고 했던 가치에도 매우 공감했고요. 프랑스에서 태동한 아르데코는 당시 유럽 전역뿐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에서도 정말 큰 인기를 끌었어요. 다른 지역의 문화와 아르데코 스타일이 결합하면서 굉장히 재미있는 변화도 일어났고요. 그런데 한국은 아르데코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저 혼자 상상을 해본 거예요. ‘내가 아르데코 스타일을 한국에 알리러 온 앰배서더라면?’ 혹은 ‘내가 아르데코 스타일이 유행하는 유럽에 한국의 미를 알리는 앰배서더라면?’ 이런 상상으로부터 아르데코의 장점, 한국적 미의 장점을 꼽아 제 나름대로 재해석한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이 탄생했죠.

우측 엽서 사진 속에 설수빈이 디자인한 의자 ‘후프 체어’

그동안 디자인한 가구 중 긍정적 피드백이 많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후프 체어’가 제일 반응이 좋았어요. 코리안 아르데코 스타일을 가장 잘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그 점을 좋게 보신 것 같고요. 다양한 타입 스터디를 통해 가장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비율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제작 과정에서 유독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후프 체어’는 정말 많은 시도와 많은 디자인의 변화가 있었어요. 제가 원하는 형태를 나무로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이를 해결하려고 금속을 조금 사용하면서 최대한 나무처럼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두 물질을 어떻게 접합할 것인지도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후프 체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설수빈이 디자인한 의자 ‘인사이드 아웃’ / 설수빈 제공

가구를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저는 가구를 통해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어 지금 바로 앞에 놓인 의자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의자 하나에도 두 가지 완전히 다른 파트가 존재하죠. 사람 안에 내재한 이중성을 모티브로 디자인했어요. 저 같은 경우도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고 절정의 상태를 겪기도 하는데, 그 차이를 형상화해본 거예요. 이중성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사는 공간, 그들이 이 의자를 사용하는 방식 등을 상상하며 만들었어요. 또 그들이 바쁜 아침에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면서 한번 쳐다보는 게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보죠. 이중성이 부정적으로 발현될 때 이 의자를 떠올릴지, 혹은 긍정적으로 발현되는 상황에서 떠올릴지 말이죠. 저는 가구를 공간보다 더 큰 의미일 수 있는 ‘맥락’에 두고 디자인하곤 해요.

“단순히 기능이 편한 가구보다,
형태나 색상으로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내거나
하루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그렇다면 가구가 집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나요?
공간과 가구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어요. 저는 공간 디자인을 전공하고 가구를 만드는데요, 아직도 그 둘의 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구는 공간에서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좌우한다는 것이죠. 가구가 불편하면 집이 불편하고, 가구가 싫으면 집이 싫어져요. 옷은 매일 바꿔 입을 수 있지만 가구는 그러지 못해요. 집에 와서 매일 같은 잠옷을 입어야 하는 것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죠. 집에 놓기 좋은 가구에 대해 생각해보면, 즐거운 경험을 전달하는 가구라고 생각해요. 저는 단순히 기능이 편한 가구보다, 형태나 색상으로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내거나 하루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루틴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귀가 시간도 빨라져 일상적이고 사소한 루틴의 퀄리티가 조금씩 높아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보디로션, 풋크림, 핸드크림을 꼼꼼히 바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업무에 쫓기다가 피곤이 느껴져야 잠들었기 때문에 스킨과 로션을 바를 겨를도 없었어요. 또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리추얼은 자기 전에 룸 스프레이를 뿌리는 거예요. 친구에게 이솝의 룸 스프레이를 선물 받았는데 자기 전에 침대 주변에 꼭 뿌려요. 아로마 향과 약간 스파이시한 향이 숙면을 도와줘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모든 공예를 다 좋아해요. 웬만한 건 잘 만드는 편이고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이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하는 타입이죠. 웬만한 살림살이는 다 만들었어요. 선반 제일 첫 번째 칸에 도자기와 나무 커트러리를 쇼케이싱해놓았어요. 제가 대가족과 살다가 독립해 처음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마음이 휑하고 허전했어요. 그때 새 가족을 꾸리듯이 직접 만든 것들로 하나씩 채웠죠. 저의 애착이 잘 반영된 곳이면서 제 공간을 가장 잘 표현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씩 만들면서 칸을 채우고 하나씩 선물하면서 칸을 비우고 있어요. 두 번째는 침대 벽에 붙여 놓은 무드 보드예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업과 동기부여가 되는 이미지를 모아놓았고요. 작업실과 생활 공간을 분리하지 않았어요. 집이 좁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제 생활 방식이 그런 것 같아요. 자다가 스케치하고, 일하다 먹고, 먹다 자기도 하기 때문이죠.

침대 벽의 무드 보드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
요즘 핀터레스트가 발달하면서 정말 손쉽게 온갖 이미지를 아카이빙할 수 있게 됐잖아요. 저도 엄청 많은 것을 골라 놓았지만 공들여 프린팅하고 붙이고 계속 보는 행위와는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내가 계속 보고 자극받고 싶은 이미지, 내 작업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을 붙여놓고 계속 보려고 했던 거죠. 다양한 게 있다기보다는 시각적인 자극을 계속 줘요. 거울 옆에 있으니까 자주 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요.

 

앞으로 살아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올해 여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친구랑 같이 집을 임대할 예정이라 거실이 있는 집에서 살 것 같은데,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거실을 갖게 되는 것이라 좀 기대돼요. 지금 집이 작기도 하고 제 생활 방식 자체가 작업실과 집을 분리하지 못하기도 해서요. 지금도 불편함은 없지만 좀 더 여유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제가 작업한 것을 전시할 수도 있고 연출도 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런 식으로 영국 집을 꾸밀 생각이에요. 이곳에 5년 정도 살았는데, 작지만 제가 되게 좋아하는 곳이고 이곳을 떠나는 것 자체도 생각하면 슬퍼요. 하지만 새로운 집,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할 생각을 하면 설레기도 해요. 집을 어떻게 일궈갈지,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그곳에서도 제가 만든 것을 공간에 어떻게 채울지 생각하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것들이 제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고 제가 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새로 디자인하는 거실 테이블이 있는데 빨리 제작해서 영국 집 거실에서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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