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자가 함께 천천히 짓는 집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거주자가 함께 천천히 짓는 집
독일 바우그루펜 R50

Text | Eunah Kim
Photography | Andrew Alberts

“집을 구매하려는 개개인들이 가진 자금을 한데 모아서 상상 속의 그 집(건물)을 직접 짓는다면?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곧 디벨로퍼가 된다면 어떨까?” 독일의 공동 주거 콘셉트 바우그루펜 Baugruppen은 이러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영어로 번역하면 ‘Building group’이라는 의미의 바우그루펜은 흔히 말하는 공동 주거(Co-living) 즉, 한 집 안에 침실을 제외한 주방이나 욕실 등을 공유하는 개념의 주거 형태는 아니다. 이는 보다 근본적인 개발과 설계 방식에서 접근을 달리한 것으로, 서로 이웃을 맺으며 살아가는 공동 ‘하우징’에 초점을 둔다.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은 공금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땅의 매입부터 건축사무소 선택과 고용, 내부 디자인, 비용 내역을 조율하고 공유하며 천천히 집 한 채를 짓는 것이다. 주로 바우그루펜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나는 이들은 대출을 받을 시 지정된 한 군데 은행에서 해당 바우그루펜의 이름으로 대출 또한 나눠서 받는다. 1970~80년대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 한때 공동 주거 바람이 일었듯 베를린에서도 당시 무리를 지어 한 건물에 모여 사는 코뮨이 있었기에, 바우그루펜 또한 그 연장 선상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지난 15년간 베를린 내 500개가 넘는 바우그루펜 건물이 지어졌다. 바우그루펜 열풍의 중심에는 합리적인 가격과 맞춤식 설계가 있다. 이 둘은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를 띄는데, 우선 베를린시 차원에서 바우그루펜을 진행하는 그룹에 부지 매입 단계에서 주는 조건부 혜택이자 지원이 있다. 해당 부지가 바우그루펜 개발에 사용될 경우, 시는 일반적인 땅값이 아닌 거주 공간의 콘셉트의 ‘품질 수준’을 보고 가격을 매긴다. 이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입주자를 모으는 펀딩을 하는 동안 합리적인 가격에 그 부지를 홀딩해준다.

이에 부합하기 위해서 입주자들은 최대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의 설계를 추구하게 되고, 건축사들도 새로운 공법이나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해볼 기회를 얻는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보다 세대마다 디자인을 달리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도출된다. 2013년 완성된 베를린 크로이츠베르그에 있는 R50의 경우 건축 비용은 1제곱미터당 $2,700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될 수 있었다.

 

R50은 건축사무소 하이드&본 베커라스 Heide&Von Beckerath와 IFAU가 열아홉 세대의 집주인들과 약 2년여에 걸쳐 완성했다. 입주자를 찾는 데만 1년 반가량의 시간이 들었고, 절반의 인원이 모이자 기획과 개발에 착수했다. 집이 완성되기까지 미래의 거주자들과 총 45회가량을 미팅을 가졌는데 대략 2주 간격으로 건축사무소에 20~30명씩 둘러앉아 세세한 사항을 함께 결정해 나갔다.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 층마다 있어야 할지 아니면 지하에 두는 게 나을 지에서부터 뒤뜰이나 세탁실, 옥상을 어떻게 공유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 경우의 수별로 드는 부담 비용을 거론하며 토론했다.

“개발 당시에는 아주 어렸던 아이들이 우리가 구상했던 이곳 뜰에서 놀면서 자라나는 걸 보면 참 흐뭇합니다. 살면서 필요에 따라 계속해서 논의하고 함께 고쳐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에 서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건축가 입장에서도 건물에서 실제로 생활할 사람들과 이만큼 긴밀하게 마주하는 과정은 흔치 않다. 입주 2년 차가 된 지난 2015년, 담당 건축가 중 한 명인 버레나 폰 베커라쓰는 LA의 라디오 채널 KCRW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개발 당시에는 아주 어렸던 아이들이 우리가 구상했던 이곳 뜰에서 놀면서 자라나는 걸 보면 참 흐뭇합니다. 입주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기에 사람들은 아직 집에 적응해가는 시기지만요. 살면서 필요에 따라 계속해서 논의하고 함께 고쳐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에 서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울러 참여 건축가이자 한 세대로 입주한 크리스토프 슈미츠 또한 “지난 30년간 주택 개발은 오직 건축가와 전문가들 영역에 머물렀어요. 실거주자를 포함하는 것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죠. 협상 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크게 배웠습니다”라고 밝힌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질문이 남을 것이다. ‘그곳에 살다가 집을 팔게 되면 어떻게 되나? 판매 가격도 공동체가 승인해야 하나?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도심에 지어진 건물이니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는 매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놀랍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세한 조항보다 세대주끼리 입주 시 합의한 매니페스토에 맡긴다. 이 매니페스토는 법적인 제재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그 신뢰란 어쩌면 열아홉 세대의 입주자가 공통으로 높은 가치를 두는,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머무를 집에 대한 열망인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한 시절 열풍으로 기록된 땅콩주택과 같은 시도에는 없고, 바우그루펜에는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우그루펜은 결국 국가 차원에서 보장해주는 최대한의 주거 안전성과 이웃 간에 쌓는 유대감, 그리고 개개인의 니즈와 개성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맞춤식의 여지가 맞물린 시스템이다. 좋은 집이 갖춰야 할 가치가 변하지 않는 이상, 이를 갖춘 개념 또한 그 어떤 형태로든 지속 가능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장해주는 최대한의 주거 안전성과 이웃 간에 쌓는 유대감, 그리고 개개인의 니즈와 개성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맞춤식의 여지가 맞물린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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