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완성하는, 부부 건축가의 집 짓기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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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완성하는, 부부 건축가의 집 짓기
노은주·임형남 <집을 위한 인문학>

Text | Bora Kang
Photos | 인물과사상사

비싼 집, 위치가 좋은 집, 가격이 많이 오를 것 같은 집이 아닌 편한 집, 추억이 깃든 집,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을 고민하는 부부가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는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는 “집이란 생각으로 짓고 시간이 완성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대해 어떤 재료로 내부와 외부를 덮을까, 가구를 어떻게 놓을까, 방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까 같은 부분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집은 그런 물리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집 구석구석에 배어든 사람의 생각과 온기입니다.”

<집을 위한 인문학>(인물과사상사 펴냄)은 건축가 노은주·임형남 부부가 그동안 만난, 혹은 함께 지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며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온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도시를 산책하며 편안한 집, 인간다운 집, 자연과 어우러진 집에 대해 고민한다.

ⓒ 박영채

평창동의 산과 물을 즐기는 ‘요산요수’

우리나라에서 집은 재테크 수단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집 본연의 가치를 생각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기도 하다. 그중에는 자연과 가까이 살고자 교외로 나가는 대신 일터가 있는 도심 한복판에서 절묘한 해법을 찾는 경우도 있다. 일산도 파주도 아닌 종로구 평창동에 집을 지어달라며 찾아온 부부 이야기다.

 

집을 지을 땅은 평창동 동쪽 언덕에 있었다.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가파른 동네,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자리한 집터는 다행히 경치가 무척 좋았다. 그러나 잡초가 우거지고 경사가 심한 탓에 그동안 아무도 선뜻 집을 짓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한 듯했다. 건축주의 바람은 단순했다. 아내는 돌보고 있는 고양이 세 마리와 개 한 마리가 함께 지내기에 편리한 공간을 원했고, 남편은 그리 넓지 않더라도 수영을 할 수 있는 풀장이 있었으면 했다.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는 집의 안쪽에 풀장과 중정을 끼워 넣고 그 안에 작은 뜰을 만들었다. ‘침실은 공용 공간과 적당히 분리되었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뜻에 따라 안방은 후정後庭을 끼고 다양한 풍경이 바라보이는 복도 끝에 배치했다. 풀장은 수면 위로 멀리 북한산 풍경을 담아내고, 그 빛은 다시 안방 천장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냈다. 집이 완성될 무렵 건축주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과 물을 즐기는 집’은 그렇게 도심 속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 박영채
ⓒ 박영채

하동의 십리벚꽃길이 내려다보이는 ‘적이재’

오래된 문 창호지 냄새, 기둥이나 마루를 손으로 쓸 때 느껴지는 매끈하면서도 눅진한 나뭇결,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는 틈날 때마다 오래된 집을 찾아다니며 그 모든 자극이 주는 안온함을 오늘날의 집에 적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경남 하동의 십리벚꽃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을 지을 기회가 생겼다. 집터는 지리산 한가운데, 산과 산이 마주한 사이로 섬진강으로 향하는 물길이 유장하게 흐르는 곳이었다. 집 이름은 ‘적이재寂而齋’. “고요히 머무르며 우러른다”는 <화엄경> 글귀에서 따온 이름처럼, 정년을 맞이한 가장이 서울 살림을 거두고 부인의 고향인 하동으로 내려가 고요히 머물고자 한 집이었다.

 

오랫동안 도시의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아온 주인은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후 어린 시절 살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집을 그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 외관은 자연스레 우리나라 민가 혹은 한옥 형태를 따랐다. 어머니 방 가까이에는 늦게 공부를 시작한 부인의 공부방을, 2층에는 분가한 자녀나 친척이 왔을 때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인연의 방’을 두었다.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는 집 안을 어떻게 꾸밀지 궁리하기보다는 집을 둘러싼 환경에 더 마음을 썼다. 울타리 나무로는 무엇을 심을지, 축대는 어떤 모양으로 쌓을지, 텃밭과 저장고는 어디로 할지, 감나무와 밤나무 건사는 어떻게 할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집은 결국 땅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오랜 믿음 때문이었다.

ⓒ 김용관
ⓒ 김용관

과천의 숲속에서 성찰하는 ‘프라즈나의 집’

2015년 어느 봄날 아침, 노은주·임형남 건축가의 사무실을 찾은 중년 부부는 차분하게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네 식구가 살 집이며, 개를 키우고 있으며, 주거 공간과 별도의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10여 년 전 사두었다는 집터는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어느 태평한 동네에 자리했다. 나무가 숲을 이루어 이불처럼 포근하게 동네를 덮고 있는 곳이었다. 대지의 꼭짓점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거룩한 표정으로 잔나무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건축주는 그 나무가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집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성찰’이었다. 부인은 차를 공부하고, 남편은 일하는 시간 외에는 불교 공부를 하며 좌선한다고 했다. 노은주·임형남 건축가는 윤회의 동선처럼 집을 관통하는 선을 그었다. 오각형의 땅 경계를 가깝게 둘러싼 형태로 방들을 배치한 다음 그 가운데에 감나무를 위한 마당을 마련했다. 집 중심에 자리한 감나무는 몇 개로 나뉜 집의 덩어리를 모으는 역할을 했다. 집의 주요 공간과 감나무 사이에는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작은 명상 공간을 만들었다. 완성 후 이 집에는 ‘프라즈나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라즈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를 뜻한다.

ⓒ 박영채

강원도 원주의 변화하는 가족과 집 풍경

건축가는 시대에 따른 집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체감하는 직업이다. 집을 짓는 것이 직업이자 일상인 노은주·임형남 부부는 최근 완성한 몇몇 집의 사례를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가족 유형을 이야기한다.

 

강원도 원주에 지은 집은 주말부부로 살던 남편이 은퇴하며 먼저 머물게 된 집으로, 서울에 직장이 있는 부인이 가끔 오다가 나중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부부는 사이는 좋으나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취향 또한 확연히 달랐다. 건축주의 특별한 사정에 귀 기울인 두 사람은 지금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 주거의 오랜 방식을 차용해 부인채와 남편채를 따로 만들었다. 단순하면서 약간은 서양식 아름다움을 추구한 남편채와 한식 공간을 지향한 부인채가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 새롭다. “가족 간의 일정한 거리와 각자의 영역 확보가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형태는 앞으로 우리의 주거 문화를 이끌어갈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 박영채

구례의 3대가 함께 쓰는 집

전남 구례에는 부부와 아이, 외할머니까지 3대가 함께 사는, 요즘 보기 드문 전통적인 가족을 위한 집을 짓기도 했다. 겉에서 보면 2층집이지만 실은 약한 경사가 있는 땅의 조건을 이용해 수직으로 올린, 4개의 레벨로 이루어진 집이다. 한마디로 반 층씩 물린 4층 집인 셈이다. 건축가 부부는 땅과 가까운 현관 근처에 할머니 방을 만들고, 반 층 올라간 집의 중간에 거실과 주방을 배치했다. 반 층 위에는 부부 방과 아이 방이, 다시 반 층 오르면 남편의 취미를 위한 공간이 자리한 구조다.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사생활을 지킬 수 있게 공간을 분리하는 동시에 서로 시선이 맞닿는 곳에서 교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가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집이라는 구체적인 실체에 담겨질 때의 감동, 땅이라는 보편적인 환경에 점을 찍듯 자신의 어떤 자취로 만들어지는 경이, 그런 느낌이 집을 짓는 즐거움이며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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