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간을 개조한 21세기 스토리텔링 하우스 | 신세계 빌리브
Friday, June 18,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마구간을 개조한 21세기 스토리텔링 하우스
뮤즈 하우스

Text | Nari Park
Photos | Hutch Design, SAM Architects, Lurot Brand

런던의 대표적 부촌 노팅힐이나 사우스켄싱턴 주택가를 걷다 보면 대로변 안쪽, 자동차는 전혀 들어서지 못하는 작은 광장을 품은 골목을 마주하게 된다. 18~19세기 귀족들의 마차를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던 이 마구간이 현재 한 번쯤 살고 싶은 주거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정원을 품은 영국의 전통 주택에서 탈피,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미니멀 라이프가 반영된 결과다.

(위 사진 모두) 뮤즈 하우스 전문 부동산 업체 루롯 브랜드의 매물 중 Princes Mews, Notting Hill W2 / Lurot Brand

왕실과 귀족 문화가 긴 시간 동안 뿌리내린 영국의 수도 런던에는 그 계급사회가 만들어낸 다양한 주거 형태가 잔존한다. 하녀들의 ‘메이드’ 공간으로 사용하던 주택의 반지하 공간이라든지, 산업혁명을 이끈 공장 지대 건물을 개조한 웨어하우스가 대표적이다. ‘뮤즈 하우스Mews House’는 그 연장선에 놓인 꽤 흥미로운 주거 형태라 하겠다. 원래는 18~19세기 귀족들의 마차를 관리하던 마부와 하녀들이 잠시 거주하던 곳이었는데, 오늘날 런던의 살인적인 집값과 브렉시트를 거치며 곤두박질친 영국 부동산 시장에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뮤즈 하우스는 원래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보니 현대에 들어 사람이 거주하는 주거 형태로는 여러 가지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도로변 안쪽에 작은 광장을 끼고 자리한 만큼 주차난이 문제였고, 마구간으로 설계한 탓에 빛이 잘 들지 않고 실내가 협소하다는 점도 제약이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시선의 전환을 가져왔다. 번잡한 도로변에서 떨어진 주택가는 도심에서 휴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고요를 선물하고, 마차가 잘 다닐 수 있도록 조약돌로 매립한 공터 바닥은 지나온 세월만큼 운치를 더한다. 옹기종기 집들이 몸을 붙이고 늘어선 좁고 긴 거리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이웃과 교감하는 특별함을 경험하게 한다.

“아이 갖기를 기피하는 젊은 부부들은 작은 집을 원하고, 중장년층은 집 크기를 줄여 외곽 지역으로 떠나죠. 사람들은 더 이상 큰 집을 소유하고 돌보길 원치 않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아래층이나 위층에 사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 말런 로이드 맬컴Marlon Lloyd Malcolm, 루롯 브랜드 세일즈 매니저 -

런던의 유명 건축 사무소들은 과거 ‘말(馬)’을 위한 공간을 오늘날 젊은이들을 위한 ‘말(言)’의 주거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데 앞장섰다. 뮤즈 하우스가 보통 집과 전혀 다른 흥미로운 구조라는 점이 주효했다. 일반적으로 1층은 마차를 세우던 코치 하우스와 마구간, 2층은 건초 다락(hayloft)과 2~3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된다. 재미있는 점은 런던 주택에서 보기 힘든 지하 통로가 정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하녀들이 주인의 잠을 깨우지 않고 정원에 나가 일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지하 공간은 집에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뮤즈 하우스 전문 부동산업체 루롯 브랜드Lurot Brand에서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소형 주택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971년에 설립한 루롯 브랜드는 일반인에게 매매 및 전세를 연결하며 런던 뮤즈 하우스의 역사를 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전문 잡지 <뮤즈 뉴스Mews News>를 발행하며 트렌드를 선도하고 시세를 분석하는데, 이들이 취급한 뮤즈 하우스만 1만 채가 넘는다. 이번 여름호 <뮤즈 뉴스>에는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을 다루며, 뮤즈 하우스가 모여 이룬 뮤즈 스트리트Mews Street가 파생한 커뮤니티 문화가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삶의 가치인지를 강조한다. 실제로 런던의 브런치 레스토랑 ‘더 울슬리The Wolseley’를 운영하는 오렐리 카스파Aurelie Caspar는 록다운 기간 동안 런던의 우편번호 W2부터 W9 사이에 자리한 뮤즈 스트리트를 자신의 전기차로 돌며 1000여 가구에 식빵을 배달했다. “뮤즈 하우스는 오늘날 배달 서비스에 가장 최적화한 이상적인 주거 형태예요. 한 번에 여러 채의 집 앞에 물건을 배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위 사진 모두) 런던 건축 사무소 허치 디자인이 리모델링한 해크니 뮤즈 하우스. hutchdesign.co

<뮤즈 뉴스>는 단순히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는 잡지에 머물지 않는다. 뮤즈 하우스의 50%가 세입자인 점에 착안, 2~3년 머물다 각자의 사정으로 집을 옮기는 세입자들을 연대해 강함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특별한 집에 거주한다’는 자긍심은 세입자에게 누군가의 집을 빌려 머문다는 인식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집의 온전한 주인은 나’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뮤즈 스트리트에서의 거리 축제, 골목 퀴즈 나이트 같은 이벤트 정보 게시는 물론, 누가 현관 화단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었는지를 겨루는 ‘뮤즈 인 블룸Mews in Bloom’ 대회를 주최하는 것은 그 같은 연대감을 돈독히 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과거 하인들이 머물렀다는 계급주의가 파생한 ‘마이너 공간’에 ‘역사’라는 귀한 가치를 더하는 스토리텔링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런던의 뮤즈 하우스들이 템스강을 끼고 어떻게 분포되어왔는지를 분석한 로드 맵이라든지, 강변을 따라 늘어선 역사적인 뮤즈 하우스의 소개 같은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런던의 건축 사무소들이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한 뮤즈 하우스는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건축 사무소 허치 디자인Hutch Design이 런던 북부 해크니 지역에 선보인 ‘해크니 뮤즈 하우스Hackney Mews House’는 작은 주택의 이상적인 모델로 꼽을 만하다. 두 어린아이를 둔 4인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 집은 접이식 벽과 거울 같은 공간을 극대화하는 장치와 숨은 창고를 통합한 결단이 돋보인다. 뮤즈 하우스의 가장 큰 단점 가운데 하나인 채광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건물 측면을 확장하고 계단 방향을 바꿔 거실과 주방 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데 성공했다. 낮은 천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바닥 높이를 낮추고, 주방이 자리한 3층에서 아래층의 침실과 거실 공간이 모두 내다보이도록 설계한 구조도 눈여겨볼 만하다.

(위 사진 모두) 샘 아키텍츠가 리모델링한 스토리즈 뮤즈.

런던 내 다수의 뮤즈 하우스를 리모델링한 건축 사무소 샘 아키텍츠SAM Architects는 소형 주택의 숨은 공간을 찾아 확장을 통해 내·외부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런던 남부에 자리한 스토리즈 뮤즈Stories Mews는 본디 너비가 7m로 내부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다. 이에 소형 주택의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폴딩 도어를 설치해 공간을 확장하고, 건물에 딸린 2개의 차고를 터 도로를 마주한 집의 뒷면을 유리로 마감했다. 건축가 부부 파올로 비메르카티Paolo Vimercati, 멜라니에 슈베르트Melanie Schubert는 150년 된 오래된 벽돌과 고재로 외벽을 마감해 과거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고풍스러운 건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뮤즈 하우스에 관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런던에서 당신만의 현관이 있는 온전한 집을 갖고 싶다면 ‘뮤즈’에 눈을 돌려라. 아이들은 문을 열고 나가면 조약돌이 깔린 공터에서 크리켓을 즐기고, 어른들은 의자를 들고 나와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이웃과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브렉시트 이래 영국의 집값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뮤즈 하우스의 시세는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 ‘19세기 마구간’이라는 막강한 스토리텔링을 입은 뮤즈 하우스는 결국 우리의 집이 품어야 하는 본질, 그 공간의 값어치는 ‘시간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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