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이들의 커뮤니티 | 신세계 빌리브
Sunday, June 13, 2021
새로움에 살다, 빌리브

향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이들의 커뮤니티
왁스 아틀리에

Text | Nari Park
Photos | Wax Atelier

장마철 한옥의 눅눅한 벽지에 스민 냄새, 외할머니 방 자개장 속에 가득했던 나프탈렌 냄새, 그리고 입주 첫날 새 집 냄새 같은 것···.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던 프랑스 심리학자 니콜라스 게강의 말처럼 냄새는 공간을 긴 시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힘이 있다. 자연에서 채집한 재료로 나만의 특별한 양초를 만드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오로지 냄새로 사물을 구분하고 기억하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오감 가운데 후각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이야기한다. 무형이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추상적인 향기는 각자가 체험한 순간과 결합되어 오랜 시간 잔상처럼 남아 한 번씩 상기되곤 한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비대면 시대, 집에서 만드는 핸드메이드 캔들 시장은 팬데믹 현상을 업고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이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 배스 & 보디 웍스Bath & Body Works를 소유한 L 브랜즈L Brands 대표 앤드루 메슬로Andrew Meslow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팬데믹 현상은 점점 더 화려하고 개념적인, 자신이 원하는 구체적인 향을 찾는 소비자를 증가시키고 있다. 양초를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여기는 추세다.” 영국의 <가디언>지 역시 “양초는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가정용품이 되었다”며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변화를 소개한 바 있다.

“양초를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여기는 추세다.” - 영국 <가디언> 기사 중 -

최근 이스트런던에 스튜디오를 연 왁스 아틀리에Wax Atelier는 학교와 직장, 카페, 문화센터 대신 하루의 절대적 시간을 집에 머물러야 하는 암울하고 우울한 시대에 자신들만의 향으로 위로를 건넨다. 일일이 수공정을 거쳐 만든 이들의 핸드메이드 캔들은 치유와 안식의 매개체로 떠오르며 런더너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Toast, 모에 샹동과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팬데믹 이전 런던 크래프트 위크, 바비칸 센터 등과 진행한 디핑 캔들 워크숍은 일찌감치 매진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2017년 영국 왕립예술대학 동기인 롤라 렐리Lola Lely, 예세니아 티볼트피카조Yesenia Thibault-Picazo가 론칭한 왁스 아틀리에는 중세 시대에 귀족층과 교회를 중심으로 운영한 왁스 및 양초 보관소 챈들러리chandlery를 연상시킨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입학 전 고향 파리에서 직물과 자수를 공부한 예세니아는 마치 과학자처럼 끊임없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찾아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런던에서 여러 과학자, 특히 양초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물질과 인간의 관계, 물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예세니아는 말한다. 그 결과 이들은 양초를 대하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공예와 제조 및 원자재 관점에서 바라보고 양초를 제작하는 식이다.

재료는 인도 사원에서 사용하는 삶은 계피, 녹차, 우유, 소와 면양에서 채취한 지방을 태운 양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식물 성분과 종이를 사용해 심지를 만든 고대 이집트인의 방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중세 시대에 성행한 비즈왁스를 사용해 양초를 수차례 틀에 담가 형태를 잡아가는 디핑 캔들은 장인 정신이 압축된 제품이라 할 만하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에 따라 몰드를 활용한 대량 공정으로 바뀐 오늘날 양초 제조 과정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복잡하고 수고로울 것 같지만 간단하다. 면화 심지를 가져다 선반에 꿰맨 뒤 밀랍에 담근다. 그것을 꺼내어 식히고 다시 담그기를 반복한다. 긴 호흡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로 인해 매우 독특하고 원시적인 빛을 발하는 양초를 얻을 수 있다. 각 양초는 원하는 모양과 너비, 길이에 따라 8~20회가량 담그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80℃에서 끓는 비즈왁스beeswax는 작업장 가득 은은한 꿀 냄새를 풍긴다. 녹차, 장미 비즈왁스는 왁스 아틀리에를 대표하는 제품군이다.

바지런히 두 손을 움직여 자연의 재료로 건강한 향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작업의 마지막 공정까지 환경을 염두에 둔다. 작업장 기구에 남은 왁스는 긁어낸 뒤 다시 녹여 사용함으로써 모든 재료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들의 ‘환원’에 관한 철학은 지역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주민과 교류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지역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노력한다. 사람을 모아 양초 만들기 워크숍을 열고, 거기에서 나온 수익금은 존폐 위기에 놓인 유서 깊은 전통 왁스 브랜드 또는 이스트런던 자선단체와 나눈다. 향이란 결국 공간과 사람을 긴 시간 이어주는 기억의 매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Related Posts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
노마드로컬재생친환경호텔
유튜브 채널 ‘리빙 빅 인 어 타이니 하우스’
노마드오가닉친환경커뮤니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
도시라이프스타일로컬
VILLIV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VILLIV NEWSLETTER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