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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오가닉, 프리미엄, 힙스터

초콜릿으로 시작하는 세 살의 미식 교육

프렌치 초콜릿 ‘플라크’

우리는 아이가 어떤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 곧잘 ‘싫어하나 보다’라고 여긴다. 하지만 프랑스 부모들은 조금 다르다. 아직 그 맛을 좋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재료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마법처럼 변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입안에서 경험하며 천천히 알아간다. 재료 본연의 맛이야말로 최고의 풍미라는 걸 느끼게 되는 것이다. 초콜릿도 예외가 아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캐런 르 빌롱Karen Le Billon은 저서 “French Kids Eat Everything”에서 파리로 이주한 후 마주한 프랑스의 식탁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미국 아이 다섯 중 하나는 하루에 여섯 번까지 간식을 먹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오후 4시 반의 고테goûter 시간, 식사처럼 간식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때 천천히, 집중해서 음식을 음미한다. 그것이 비록 초콜릿이라 할지라도.”


프랑스 식탁 교육은 미각을 넘어 음식을 대하는 자세까지 포함한다. 다양한 맛을 접하고, 음식에 호기심을 갖고, 식사란 단순히 먹는 일이 아닌 즐거운감각의 경험이라는 걸 아이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아이가 어떤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면 곧잘 싫어하나 보다라고 여긴다. 하지만 프랑스 부모들은 조금 다르다. ‘아직 그 맛을 좋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가 낯설어하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 프랑스 부모들은 아직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 계속해서 자연스럽고 유쾌한 방식으로 그 음식을 식탁에 올린다. 같은 재료도 다루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을, 음식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이 마법처럼 변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그 작은 입안에서 경험하며 천천히 알아간다. 미각 훈련은 모유 수유를 마친 순간부터 시작된다. 향이 강하거나 생소한 음식도 문제 없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도 그 맛을 배워가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에선 초콜릿을 아이에게 해로운 군것질로 여겨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로지에르샤베르: 프랑스도 비슷해요. 초콜릿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품 중엔 사실 초콜릿이 아닌 게 많아요. 지나치게 기름지고, 설탕이 많고, 첨가물이 가득하죠. 그런 건 당연히 피해야 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순수하고 질 좋은 초콜릿을 먹으면 입맛이 더 섬세하게 발달해요. 미각은 어릴 때 가장 예민하거든요. 흔히 세계 3대 미각 식재료라고 말하는 와인, 커피, 초콜릿 중에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초콜릿뿐이에요.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돼요. 아이들은 쓴맛에 민감하지만 신맛은 좋아해요. 우리 딸 준은 플라크에서 만든 76% 초콜릿과 84% 다크 초콜릿을 블라인드로 정확히 구분해요. 입맛도 근육처럼 계속 써야 발달하죠.


매장에서는 아이들이 초콜릿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맛볼 수 있다고 들었어요.

로지에르샤베르: 맞아요. 매장이 실험실과 바로 연결돼 있어요. 아이들이 오면 로스팅 향을 맡을 수 있고, 믹서 안에서 초콜릿이 녹는 걸 보기도 해요. 한 숟갈 떠서 맛볼 수도 있고요. 아이들 반응은 항상 뜨겁고, 그 경험이 아이들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요.










(왼쪽부터) 니콜라 로지에르샤베르와 산드라 미엘렌하우젠



파리 중심가, 미식 골목이라 불리는 닐 거리. 여덟 살짜리 아이를 둔 산드라 미엘렌하우젠Sandra Mielenhausen과 니콜라 로지에르샤베르Nicolas Rozier-Chabert 부부는 플라크PLAQ를 운영한다. 직접 초콜릿을 만들고, 나누고, 즐기는 공방과 부티크 그리고 작은 카페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그들의 삶 그 자체다. 이곳에서 자란 그들의 자녀 준June은 세 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간식을 즐겼다. 식탁에는 늘 정제되지 않은 설탕과 고급 카카오, 손수 만든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이런 능력은 예외적인 재능일까? 부부는 고개를 젓는다. 플라크에 오는 아이들 중에도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 아이가 많다고. 이들은다크 초콜릿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했다. 아이들이 다크 초콜릿을 싫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초콜릿 자체의 품질이 낮거나, 로스팅이 과했기 때문이라는 것. 어릴 때부터 좋은 초콜릿을 먹어본 아이는 84%의 진한 다크 초콜릿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2019년 플라크 문을 열 때부터 아이의 아침은 늘 크리미한 핫 초콜릿으로 시작했다. 76% 유기농 카카오빈으로 직접 만든, 깊고 따뜻한 한 잔으로.


프랑스에선 아이들에게 식재료나 맛에 관해 어떻게 교육하나요?

미엘렌하우젠: 음식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알려주는 게 중요해요. 재료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자랐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아야 맛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또 제철에 대해 가르치는 것도 중요해요. 자연의 흐름에 따라 먹는 법을 배우는 거죠. 우린 감각을 통해 배운다고 생각해요. 초콜릿 냄새도 맡고, 보고, 만지고, 듣고, 맛보는 것. 이 다섯 가지 감각이 우리 교육의 중심이에요.


프랑스에선 초콜릿을 언제부터, 어떻게 아이 식단에 포함시키나요?

로지에르샤베르: 보통은 18개월쯤부터 우유에 섞어서 조금씩 주기 시작해요. 그때도 꼭 진짜 초콜릿이어야 해요. 카카오빈과 설탕만 들어간 76% 다크 초콜릿 같은 것이요. 좋은 초콜릿은 단순히 단맛을 내지 않아요. 부드러운 단맛에서 시작해 쌉싸래한 깊이, 흙과 나무껍질 같은 향, 그리고 마지막엔 과일 같은 산뜻함까지, 혀 위에서 하나의 여정처럼 펼쳐지죠. 설탕, 코코아, 바닐라, 캐러멜, 소금, 견과, 과일, 향신료가 어우러질 때 초콜릿은 맛 그 이상의 것이 돼요. 그건 이야기이고 감정이며, 하나의 경험이에요. 그런 것을 부모가 같이 즐기면서 알려줘야 해요. 식사 시간만큼 간식 시간이 중요하고, 부모가 함께 즐기는 것도 중요해요.


아이들이 단맛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미엘렌하우젠: 우린 가공식품을 아예 안 먹어요. 직접 만든 음식이나 소규모 생산자 재료만 써요. 우리 아이는 두 가지를 빨리 배웠어요. 첫째, 같은 당근이라도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급식에서 맛이 없었다고 해도, 집에서는 다시 먹어봐야 한다는 것을요. 둘째, 설탕이 많으면 재료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는 것. 준은 학교 급식소에서도 딸기를 크림 없이 먹어요. “엄마, 크림이 너무 달아서 못 먹겠어라고 말할 정도예요. 좋은 재료는 설탕 없이도 충분히 맛있어요.


좋은 식습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그걸 자녀에게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로지에르샤베르: 첫째는 가공식품을 피하는 것. 둘째는 지방을 무조건 나쁘게 보지 않는 것. 버터, 치즈도 중요한 식재료예요. 그리고 아이가 음식을 거부해도 한 번은 꼭 먹어보게 해요. 같은 재료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을, 음식은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기적처럼 변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그 작은 입안에서 경험하며 천천히 알아가죠. 다섯 살 때 싫어했던 음식이 열다섯 살 땐 좋아질 수도 있거든요. 입맛은 계속 변하니까요.












플라크를 시작하기 전, 미엘렌하우젠은 향수업계에서 일하고 로지에르샤베르는 그래픽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했다고 들었어요.

미엘렌하우젠: 맞아요. 처음엔 그냥 고객과 공급자였어요. 어느 긴 회의 자리였는데, 니콜라가 저한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바를 하나 건네줬어요. 그 순간, 우리 둘 다 초콜릿에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 뒤로 우리가 먹는 초콜릿 중에 정말 좋은 프랑스산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최고라고 불리는 초콜릿이 더 이상 프랑스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프랑스에서는 커피업계처럼 초콜릿에 대해 원산지 추적이나 품질 투명성 기준이 거의 없다는 게 늘 아쉬웠어요. 미국에선 빈투바bean-to-bar 흐름이 이미 주류가 되었는데, 프랑스는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거든요. 우리는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초콜릿을 맛봤고, 분명히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걸 직접 느꼈어요. 그때였죠. 아기에게도 먹일 수 있을 만큼 정직하고 순수한 초콜릿을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


초콜릿 메이커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로지에르샤베르: 저희는 자격증을 따거나 정식 교육을 받기보단 직접 몸으로 익히는 길을 택했어요. 거의 2년에 걸쳐 아그로포레스트 농장을 탐방했고, 베네수엘라와 페루에서는 장인 초콜릿 전문가 클로에 두트르 루셀과 함께 현장 수업도 받았어요. 미엘렌하우젠은 파인 카카오 앤드 초콜릿 인스티튜트Fine Cocoa and Chocolate Institute’에서 감각 훈련도 받았어요. 원두를 맛보고, 냄새를 맡고, 결점을 식별하는 법까지 훈련했죠.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던 중 셀린 르쾨르Céline Lecoeur라는 훌륭한 페이스트리 셰프가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마침내 2019 9월에 플라크를 시작했어요. 초콜릿과 페이스트리가 공존하는 우리만의 실험실이 생긴 거죠.


브랜드 이름플라크PLAQ’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로지에르샤베르: ‘플라크plaque’는 원래 프랑스어에서 초콜릿 바를 뜻하던 말이에요. 요즘은타블레트tablette’라는 표현이 더 흔하지만요. 우리는 이 옛 단어를 되살리고 싶었어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요. 그래서카카오빈에서 플라크까지(de la fève à la plaque)’라는 표현을 쓰죠. 프랑스식빈투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PLAQ는 사실 우리의 철학을 담은 네 글자를 표방하기도 해요. Pure(순수한), Libre(자유로운), Artisan(장인의), Qulotté(대담한)가 그것입니다.



단순함을 선택하고, 자연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만드는 방식을 선호해요. 제품의 이야기를 넘어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해요.”



플라크 초콜릿만의 특별한 여정을 소개해주세요.

미엘렌하우젠: 남미와 아프리카 6개국에서 직접 열매를 수확한 뒤 발효시키고 건조해서 파리로 보내죠. 황마 자루를 열면 날것의 동물적 향이 퍼지는데, 그 순간이 정말 좋아요. 우리가 직접 원두를 선별하고, 로스팅하고, 분쇄하고, 갈고, 혼합하고, 숙성시켜요.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하죠. 초콜릿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감각과 판단이 필요해요. 다크 초콜릿에는 오직 두 가지 재료만 들어가요. 향이 깊은 카카오빈, 그리고 유기농 비정제 사탕수수 설탕. 그게 전부예요. 중요한 건우리가 절대 쓰지 않는 재료목록이 있다는 거예요. 바로 산업용 카카오 버터, 인공 향료, 바닐라나 바닐린, 팜유 등 인공 화합물이죠. 단순함을 선택하고, 자연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만드는 방식. 이건 우리에게 제품의 이야기를 넘어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초콜릿이 이미 충분히 고급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로지에르샤베르: 프랑스 쇼콜라티에의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향을 더하거나 조각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죠. 하지만 실제로 카카오빈부터 초콜릿을 직접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은 발로나Valrhona나 바리Barry 같은 대형 산업 브랜드에서 만든 초콜릿을 구입해 사용하는 방식이에요. 이 회사들은 유통과 보존에 유리한, 표준화된 제품을 공급하죠. 카카오빈을 직접 다루는 경우도 드물고, 순수한 형태로 초콜릿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어요.

미엘렌하우젠: 우리는 첨가물이 전혀 없는 초콜릿을 처음 맛봤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과일처럼 생생하고 복합적인 향이 입안에서 터졌죠. 그때 생각했어요. ‘이런 초콜릿을 파리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분명히 반응이 올 거야.’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투명한 재료 공개, 첨가물 없는 방식 등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좋은 맛은 어떤 걸 의미하나요?

미엘렌하우젠: 투명성은 곧 품질의 증거라고 생각해요. 초콜릿도 와인처럼 다뤄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 초콜릿 라벨에는페루산 다크 76%’ 정도만 적혀 있죠. 와인으로 치면프랑스산 레드 와인, 알코올 도수 12라고만 쓰여 있는 것과 같아요.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재료인지, 어떤 땅에서 자랐는지까지 알아야 진짜 맛을 이해할 수 있어요. 좋은 초콜릿은 훌륭한 카카오빈을 어떻게 해석했느냐가 중요해요. 부드러운 로스팅과 첨가물 없는 조합이 필요하죠. 설탕은 카카오 향을 돋우는 역할만 해야 하고요. 저희는 76% 이하로는 풍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플라크 매장에선 포장 없이 초콜릿을 살 수도 있다고요.

로지에르샤베르: 포장재를 줄여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싶었어요. 물론 완전한 제로 웨이스트는 어렵지만 적어도 선택권은 드리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포장 없이 초콜릿을 사면 50% 할인해드려요. 손님이 스스로 환경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죠. 자주 오는 분들은 이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해요.


초콜릿을 아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이고 싶은 한국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로지에르샤베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초콜릿부터 시작하세요. 카카오 버터나 레시틴 같은 걸 넣지 않은, 딱 두 가지 성분, 카카오빈과 유기농 설탕만 들어간 초콜릿이요. 그리고 다크 초콜릿으로 시작하는 걸 추천해요. 아이들이 다크 초콜릿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쓴맛이 과한초콜릿을 싫어하는 거예요. 그건 대부분 원두가 나쁘거나, 로스팅이 과도했거나, 껍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경우예요. 진짜 다크 초콜릿은 쓴맛이 아니라균형의 맛이에요. 그 섬세한 맛을 아이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Text | Anna Gye

Photos | PL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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