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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도시,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집다운 집에 살고 계신가요?

송멜로디 외 공저

Text | Bora Kang
Photos provided by arte

턱없이 낮은 행복 지수의 나라. 끝 모르는 부동산 투기 천국. 집이 삶을 ‘사는’ 곳이 아닌, 돈으로 ‘사는’ 곳이 되어버린 지금, 집다운 집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은 집을 집답게 만들어가는 네 사람의 목소리를 모은 책으로, 내가 살 집을 선택하는 저마다의 특별한 기준을 제시한다.




ⓒ Lee Jieung




“영화 <기생충> 보셨어요? 전 그 영화가 ‘건축의 호러’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공간을 사용하지만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게 굉장히 큰 공포잖아요.”

- 송멜로디 -




뉴욕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예일 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코리빙 건축을 공부한 송멜로디는 익숙한 것들을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 집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왜 우리는 빚을 지면서까지 집을 소유하려 하는지, 집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코-오너십은 불가능한지, 부엌이나 아이를 돌보는 공간은 왜 집 안 뒤편에 숨겨져 있는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혹 집에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묻고 답하며 최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다. 한국의 거주 공간을 둘러싼 그의 수많은 물음표가 하나의 느낌표로 수렴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코리빙co-living이다.

역삼동의 공유 주택 ‘트리하우스’를 설계한 송멜로디는 “셰어하우스가 일반적인 구조의 집에서 자기 주거 공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형태라면, 코리빙하우스는 애초부터 공동 주거 공간을 목적으로 만든 곳”이라고 정의하며 “공용 공간만을 공유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에게 코리빙은 ‘단순히 주택 부족이나 높은 임대료를 해결하는 것 그 이상의 물음’이다. 그것은 핵가족 중심의 주거 형태, 관리자 중심의 부동산 시스템, 부채가 따르는 소유 등 집을 둘러싼 것에 의문을 갖는 행위 전체를 아우른다.

“영화 <기생충> 보셨어요? 전 그 영화가 ‘건축의 호러’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공간을 사용하지만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게 굉장히 큰 공포잖아요.” 송멜로디는 익명의 이웃이 주는 공포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꼽는다. 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하거나 여가 시간에 뭔가를 같이 배운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사실 코리빙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에요. 저는 ‘마을과 같은 도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아이를 밖에 내보내도 안심할 수 있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도시요.”







“그렇게 목표도 없는 실험의 나날을 보내길 반년쯤 되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나의 집’이라 부르게 되었다.

나의 부엌이 만들어준 나의 집. 가장 나답고 솔직해질 수 있는 나의 집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늑했다.”

- 요나 -




팝업 식당 ‘재료의 산책’을 운영하는 요리사 요나의 작업실은 <빌리브>에 한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집다운 집>은 그의 최초의 작업실이었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려 여행길에 올랐던 요나는 내 집 마련의 자금이 될 수도 있었던 큰돈을 모두 여비로 탕진하고, 거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롭고 초조했던 그는 계속해서 일을 벌이기 시작했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려 세 개의 가게를 열고 닫았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몸과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졌음은 물론이다. 모든 일을 접고 본가에 머무는 동안 그는 ‘나만의 작업실’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엌과 작은 베란다가 딸린 월세 50만 원의 투 룸.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계약한 집이었다. 요리가 업인 그에게 부엌이 있는 집은 곧 작업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엌을 천천히 다듬어가며 망가진 몸을 회복시키기 위한 식사에 관한 실험에 돌입했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매일 식사에 무심하지 않을 것, 그리고 솔직하게 있을 것. 시간을 들여 요리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그렇게 목표도 없는 실험의 나날을 보내길 반년쯤 되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나의 집’이라 부르게 되었다. 나의 부엌이 만들어준 나의 집. 가장 나답고 솔직해질 수 있는 나의 집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늑했다.”








“소소한 변화는 공간을 채우는 재미로 번지고, 곧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삶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 무과수 -




부산 토박이인 무과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해 4인실 기숙사, 학교 근처 원룸, 홍대 입구 앞 반지하 등을 거치며 주어진 공간 안에서 최소한의 것을 지키며 사는 법을 배웠다. 그는 창밖으로 감나무가 보이는 다가구주택, 이른바 ‘감나무 집’에 살면서 처음으로 집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했다. 잠시 머무는 집이라 할지라도 행복을 유보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으로 집을 채워가는 경험을 통해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창가로 들이치는 햇살, 직접 고른 재료로 차린 소박한 한 끼, 목련꽃과 접벚꽃이 만발한 화단…. 그는 집에서 위로받은 순간을 SNS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무과수의집’ 해시태그로 시작한 이야기는 점차 확장되어 국내 매체뿐 아니라 해외 매체에서도 그의 집과 생활을 소개하고 싶다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기록이 우리가 놓치고 사는 평범한 일상 속 행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 콘텐츠 매니저인 무과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예쁜 집을 발견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그는 공간을 가꾸는 시도가 삶을 변화시킨다고 믿는다. “나 하나 챙기기도 어려운 바쁜 삶 속에서 집에 관심을 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목민처럼 떠도는 세입자라면 집에 애정을 쏟기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이라도 집을 꾸며보라고 말하고 싶다. 소소한 변화는 공간을 채우는 재미로 번지고, 곧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삶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식물에 물을 주고 잎을 보고 꽂힌 꽃의 무른 줄기를 자르는 일이 일상의 루틴이 되면서 나는 조금 더 건강해졌다.

마치 몸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 진명현 -




독립 영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진명현은 일곱 살 때부터 여섯 식구의 가족 안에서 살아왔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부모님이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대가족의 삶은 재구성됐고, 그는 서른여덟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독립을 했다. 20년 전에 지은 고풍스러운 ㄷ자 구조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구조였다. 그는 적금을 깨서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치고 첫 집에 입성했다. 입주 후 한동안은 공간을 꾸미고 채우느라 무척 신이 났다. 매일 집만 꾸며도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나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찾아왔다.

대가족 생활자에서 1인 생활자가 된 그에게 사람의 숨결이 없는 집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그의 적막한 공간을 채워준 건 식물의 습기와 반려묘의 온기였다. 퇴근길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구입한 식물을 시작으로 그는 집 안에 초록 식물을 들이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꽃집을 드나들다 보니 나중에는 생화에도 관심이 생겼다. 한 손엔 식물 화분이 담긴 검은 봉지를, 한 팔엔 서너 송이 꽃을 묶은 꽃다발을 들고 귀가하는 날이 늘어났다. “식물에 물을 주고 잎을 보고 꽂힌 꽃의 무른 줄기를 자르는 일이 일상의 루틴이 되면서 나는 조금 더 건강해졌다. 마치 몸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다리를 저는 유기묘 옥희, 옥희보다 반년 늦게 태어난 여동생 덕희는 어느덧 작은 아마존이 된 그의 집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만 울려 퍼지던 독신 생활자의 집은 그리하여 비로소 집다운 집이 되었다.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트럭 하나에 모든 짐을 싣고 바닷가가 보이는 작은 아파트로 가는 상상을 한다. 어디든 고양이 두 마리와 식물이 있다면 그곳이 내 집이 될 것이기에.”

책의 발문을 쓴 건축가 조재원은 “재화로서의 가치가 아닌 거주하는 경험만으로 마음에 자리 잡은 ‘집’을 삶의 일부로 갖게 되면서, 나는 집에 대해 훨씬 자유로운 상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파트냐 주택이냐,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의 구분으로 범주화하는 집이 아닌, 거주 경험으로서의 ‘집’, 개인의 필요에 따라 조합되는 ‘집’, 복수의 ‘집’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가설 아래 새롭게 열리는 ‘집’의 가능성을 생각했다”고. 그는 앞선 네 사람이 애써 묻고 답한 것처럼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집다운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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