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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노마드, 커뮤니티, 로컬

새로운 내 집을 향한 첫걸음

하우스 리터러시

Text | Angelina Gieun Lee

리터러시 literacy는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라틴어로 문자와 책을 의미하는 리테라 littera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당대의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조금씩 달리한다. 필수 혹은 보편적 능력을 갖출 대상이 문자에서 미디어, 디지털, 문화 등으로 세분되었고, 더 나아가 비판적인 접근 방식과 사고 능력도 필요로 하게 된 것.







일본 사회에서 집은 더 이상 부와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척도가 아니다. 거품 경제 붕괴와 이에 따른 장기 불황 그리고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주택 수요가 현격히 줄고 있다는 뉴스를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지방 역시 빈집이 속출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설 정도다. 집의 가치가 올라 개인 자산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는 인식은 그렇게 희박해지고 있다.

한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일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노트북과 모바일 기기로 장소 구애 없이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에 따라 출퇴근 가능한 거리를 고집하는 현상도 줄고 있다.







이에 대해 본격적인 재조명을 시작한 계기는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열심히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이 자연재해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며‘집’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하라 켄야Hara Kenya를 비롯한 저명한 디자이너와 건축가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2012년 시작한 전시 박람회‘하우스 비전House Vision’을 주목할만하다. 하우스 비전은 시대와 사회가 변함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반영해 나만의 행복을 실현하는 장으로서 집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그런 집을 구현하려면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실현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총괄 기획자 하라 켄야는 하우스 비전의 간행물<새로운 상식으로 집을 짓자 新しい常識で家をつくろう>에서 이를‘하우스 리터러시 住宅リテラシー’로 명명한다. 그는 하우스 리터러시란 전문적인 교육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이란 어떤 곳이고, 앞으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되물어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하우스 리터러시란 전문적인 교육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이란 어떤 곳이고, 앞으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되물어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집에 대한 재정의를 오늘날 다시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라 켄야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짚는다. 집을 너무도 당연시한 나머지 문자나 기술과 달리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다는 것과 지금껏 사회가 급격히 변한 탓에 집이라는 공간이 그 변화를 미처 따라갈 수 없었다는 것. 따라서 사회적 위기로까지 인식되는 현재 상황을 기회 삼아 집을 둘러싼 생각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집에 대해 전시, 심포지엄, 세미나, 출판 등을 통해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다수가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획일적인 형태로 집을‘공급’ 받아 생활하던 일본 사회에 어떠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을까. 땅값 상승률, 직장, 학군, 편의 시설 등을 고려하던 방식에서 조금씩 벗어나 내가 원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이 조금씩 눈에 띈다.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하는‘2거점주거 2拠点居住’ 방식이 대표적이다. 2거점주거 방식이란 도시와 지방에 각각 거점을 두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다. 이동 시간 및 수단에 따른 물리적 제약 사항으로 인해 이전에는 생각에 그친 아이디어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방에 있는 빈 건물을 활용해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하는 나가노현 소재 후지미 모리노 오피스나 주거 시설을 도시 외곽 지역에서 운영하며 커뮤니티 기능을 넣으려는 안테룸 아파트먼트 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 아울러 개인 주택이나 공동 주택의 매매 혹은 임대 등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주택 거래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도 등장한다.

규모는 작지만 자신이 원하는 환경의 주거 형태를 소개하는‘야도카리Yadokari’나 일본 및 전 세계의 다양한 집과 생활 형태를 소개하는‘해시 카사Hash-Casa’도 그중 하나다.

부동산 중개 사이트도 변한다. 셰어하우스 전문 중개로 시작해 관련 정보까지 전하는 미디어를 운영 중인 히쯔지Hitsuji 부동산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속출하는 빈집을 세컨드 하우스 용으로 활용하게끔 중개하는 휴일부동산 休日不動産(holidayrealestate.jp)도 눈여겨볼만하다.

혹자는 일본 사회가 타 문화권보다 타인과 다른 생각, 말, 행동에 유독 많은 제재를 가한다고도 말한다. 그런 일본 사회가 지금 내가 원하는 집 그리고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당연하게 받아들인 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집이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내가 원하는 집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타인에게 내보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행복을 실현할 무대로 집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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