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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네트워킹, 커뮤니티, 힙스터

하얀 옷 입고 다 같이 즐기는 거리의 만찬

디네앙블랑Le Diner en Blanc

Text Hey. P
Photos Le Diner en Blanc International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광장, 샌디에이고의 아름다운 해변가, 환상적인 야경의 부다페스트 시가지, 마천루와 허드슨강에 둘러싸인 뉴욕 배터리 파크. 매년 특정한 날 세계 도심의 아름다운 명소들이 새하얗게 물든다. 웨딩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화관과 드레스, 셔츠를 착용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프랑스식 정찬을 즐기며 교류를 나눈다. ‘세련된 피크닉(Chic Picnic)’이라는 슬로건 아래 1988년 파리에서 시작된 플레시 몹 파티이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8. 수년간의 해외 생활 끝에 고향 파리로 돌아온 프랑수아 파스키에François Pasquier는 그간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초대하는 디너 파티를 계획한다.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 싶었던 그는 친구들에게 각자 지인을 한 명씩 데려오도록 했고, 볼로뉴 숲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서로를 식별할 수 있도록 드레스 코드를 ‘화이트’로 정했다. 4년 뒤, 이번에는 센강이 내려다보이는 퐁 데 자르Pont des Arts 다리에서의 파티를 기획했고, 여럿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모임 장소로 허락받는 것이 어렵겠다는 판단하에 마지막 순간까지 장소를 비밀에 부쳤다. 파티가 어디서 열리는지 막판까지 공지하지 않는 이 ‘시크릿 조항’은 이후 하나의 전통이 되어 ‘디네앙블랑Le Dîner en Blanc의 토대가 됐다.








수천 명, 많게는 1만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공공장소에서 흰색을 공통분모로 해 친목과 결속력을 다지는 플래시 몹 파티 디네앙블랑은 오늘날 세계 120여 개 도시에서 성행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주춤하는 듯 보였으나 뉴욕에서는 올해만 두 번 대규모 파티를 열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 2016년부터 서울에서도 열리고 있는 디네앙블랑은 지난 5월 한강시민공원에서 1,000여 명이 운집한 데 이어 올해 또 한 번 파티를 준비 중이다.








디네앙블랑은 그간 파리의 주요 명소를 돌며 아름다운 거리의 정찬을 만들어왔다. 파리의 심장과도 같은 에펠탑은 물론 방돔 광장, 노트르담 사원, 샹젤리제, 콩코드 광장, 루브르 뮤지엄 광장 등 아름다운 명소를 배경으로 새하얀 드레스와 슈트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도시를 배경으로 친교를 나눴다.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최 측이 공지한 ‘비밀 장소’에 도착한 이들은 자신들을 초대한 ‘테이블 호스트’의 안내를 받아 직접 테이블을 차린다. 접이식 의자, 식탁, 흰 테이블보를 세팅하고 착석한 뒤 모두가 흰 냅킨을 흔들면 공식적인 정찬이 시작된다. 식사 뒤에는 다 같이 스틱형 폭죽을 들고 도심의 밤을 밝히는 파티의 하이라이트(lighting of sparklers)가 이어진다. 단체 댄스 플로어 타임까지 끝나면 각자 테이블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수거해 자리를 떠난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향후 이벤트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를 위험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개최하는 만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모임의 최우선 조건이다.








초대받은 이들은 ‘완벽한 청소’ 외에도 몇 가지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한다. 베이지, 오프화이트, 크림이 아닌 반드시 올 화이트 의상이어야 하며 액세서리는 금색 또는 은색만 착용 가능하다. 또 흰 식탁보와 냅킨을 사용해야 하고 플라스틱 등 일회용 접시나 잔은 금한다. 이런 여러 가지 조항으로 인해 모두가 이 축제를 환호하는 것만은 아니다. 파티에 초대받으려면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도 대표적 이유 중 하나다. 이전 디네앙블랑에 참석한 이의 초대를 받아야만 참여 가능한 데다, 이마저도 불가한 이들은 자리가 날 때까지 수천 명에 이르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야외 행사인 만큼 날씨도 변수다. 비나 눈이 오더라도 행사는 강행되는데, 웹사이트에는 흰색 또는 투명한 비옷과 우산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모임이 범람하는 시대,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이 대규모 거리 정찬은 팬데믹을 거치며 화려하게 부활 중이다. 핀터레스트에는 디네앙블랑 드레스 룩 관련 아이디어 이미지가 넘쳐나고, 9 14일 뉴욕 디네앙블랑을 앞두고 기획한 인스타그램 라이브 세션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실내가 아닌 거리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과 우아한 사교를 즐기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디네앙블랑을 통해 뜨겁게 발현 중이다. 두 번의 디네앙블랑을 경험한 칼럼니스트 베르니 카를랑Bernie Carlin은 “소수보다는 5000명이 모여 서로 축하하고 즐길 때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워싱턴DC 저녁 만찬의 진행자로 참석했던 브라이어 데이비스Bryer Davis 역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커뮤니티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 모임이 범람하는 시대,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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