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 사용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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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집 사용 매뉴얼

이에비라키

Text | Angelina Gieun Lee

옷, 음식, 집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3요소이다. 그중 집은 모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저마다 떠올리는 이미지와 표현은 다를 수 있으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실용적인 기능에 대해 대다수는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의 기능(function)에 형태(form)를 더해 활용도를 높이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다 보니 문명이 발전하는 호흡과 결에 맞춰 집도 변화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집’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여러 가지 가능성에 열어둠이 마땅하다. ‘이에비라키 家びらき’에도 한 번 눈길을 줘봄이 어떨까. 이에비라키를 직역하면 ‘집 열어두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의역하면 사는 집 일부를 보호 및 휴식이라는 기본 기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원하는 용도로 활용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동의어로 ‘스미비라키 住みびらき’도 자주 사용한다.




사는 집 일부를 보호 및 휴식이라는 기본 기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원하는 용도로 활용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고토열도 토미에섬 五島列島 富江島에 있는 별장 겸 지역 도서관 및 카페 ‘산고상 サンゴさん’의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산고상은 건축주가 친구 및 지인과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낼 별장을 짓기 위해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에 있는 오래된 민가를 찾는 시도가 발단 되었다. 30년 넘게 방치된 민가를 발견해 건축가 지역 사회에 융화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작업을 노우사쿠 준페이 能作 淳平에게 의뢰해 진행하던 중 일부는 의뢰인 본인이 해보고 싶었던 일도 작게나마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보기로 해 지금에 이르렀다.

‘산고상’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호를 뜻하는 일본어 산고 さんご에 호칭을 나타내는 접미어인 상 さん을 더해 의인화함으로써 누구나 친근감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도록 했고, 외관도 산호와 유사한 색상을 활용해 페인트 작업을 진행해 단장했다. 그리고 장소 및 개보수할 오래된 민가 선정 과정부터 개보수 과정 전반, 그리고 완공 후의 모습을 건축가의 블로그에서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개보수 작업 완료 후 산고상은 카페 및 도서관을 운영하며 의뢰인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본인 취향에 맞는 생두를 직접 볶아 커피를 내리고, 일본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유명 인사 및 전문가로부터 인생에 길이 남을 책을 3권씩 기증받아 이를 테마로 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 더 나아가 지역 주민들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편히 들를 수 있도록 다양한 강좌를 개최하며 공간을 열어둠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교류, 그리고 커뮤니티 형성의 장으로도 기능하기 시작했다.

산고상의 사례는 일본 건축 전문 잡지<주택특집 住宅特集>을 비롯해 여러 매체가 주목하며 집을 활용하는 방법과 집이란 어떤 공간인지 생각해볼 여지를 주기 시작했다. 일본 건축가 후지와라 텟페이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집의 개념이 바뀌려는 것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집을 둘러싼 새로운 실험의 시작은 일본 뮤지션 겸 아티스트 아사다와타루 アサダワタル가 자신의 집 일부를 갤러리 형태로 활용하기 시작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아티스트로서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현실적인 제약 사항과 위험 요인이 다수 있다 보니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다 작게나마 시작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자신의 집을 선택한 것. 집 일부를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작품을 설치하고 지인과 동료를 초대해 감상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아사다와타루는 자신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효과를 누렸다. 자신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주변 지역 주민들도 편히 들를 수 있도록 열어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생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 과정과 자신의 경우와 유사한 사례를 2012년 저서<집을 열어두다-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커뮤니티 住み開き― 家から始めるコミュニティ>를 통해 더욱 널리 공유했다.

타인에게 폐 끼치는 일을 병적인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삼가고, 그만큼 타인이 내 영역에 침범하는 일도 극도로 꺼리는 풍토가 만연한 일본이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영역인‘집’과 외부의 경계를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하게 지켜 왔을 수 있다. 이러한 일본에서 집이라는 공간 자체를 실용적인 기능에 더해 자신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하고, 그 결과물을 외부와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를 위해 집과 외부의 경계도 새롭게 정의해보는 실험도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집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롭게 활용할 가능성을 점차 열고 있을지 모른다. 자아를 실현하고 원하면 외부와 소통까지 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까지 할 가능성을 놓고 여러 시도를 하는 사례를 보면 집도 어쩌면 시대와 환경을 비롯한 여러 요인과 변수에 따라 진화할 수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공기와 같이 늘 있었기에 당연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었을 수 있던 집을 새로운 눈으로 한 번 바라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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