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FEATURE|도시, 커뮤니티, 홈데코, 큐레이션

미국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의 바로미터

귀네스 팰트로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굽

Text | Nari Park
Photos | Yabu Pushelberg(yabupushelberg.com), Annabel Elston

라이프스타일에 관심 많은 이라면 올해 넷플릭스의 새로운 콘텐츠 ‘웰빙 실험실(The Goop Lab Gwyneth Paltrow)’을 한 번쯤 접해봤을 테다. 할리우드 스타 귀네스 팰트로가 자신의 회사 직원들과 다양한 건강 비법을 체험하는 이 리얼리티 쇼는 지난 10년간 ‘웰니스 열풍’을 이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굽의 철학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완성해가던 어는 날, 귀네스 팰트로는 살면서 느낀 것과 대중과 공유하고 싶은 삶의 방식을 진솔한 일기처럼 뉴스레터 형식으로 팬들에게 전송하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귀네스 팰트로의 키친Gwyneth Paltrow’s Kitchen’이라는 이메일 뉴스레터로 시작된 은 이후 쇼핑, 뷰티, 음식, 패션, 여행, 웰니스, 일, 남성 등 8가지 삶의 주요 키워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꾸준히 관련 제품과 삶의 방향성을 설파해오고 있다.








오늘날 저마다의 방식으로 라이프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많은 브랜드 가운데 굽의 위치는 조금 남다르다.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은 귀네스 팰트로의 남다른 존재감에 기인한다. 누구나 워너비 하나쯤 마음에 품기 마련인 인플루언서의 시대, 성공한 옆집 언니 같은 친근함과 소탈한 모습으로 결혼과 육아, 여행, 건강, 요리 등에 관한 본인의 가치관과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동경하게 만드는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실제로 굽의 이용층은 평균 34세, 미국에서도 수십만 달러의 기본 소득을 담보한 중산층이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고 내면을 가꾸는 데 열정적인 이들 세대를 이르는 ‘구퍼Gooper’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이 고정 독자층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세계적 배우 또한 자신들처럼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갱년기와 노화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얻는다. 라이프스타일을 닮고 싶다는 소비 심리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디자인 회사 야부 푸셸버그Yabu Pushelberg가 설계한 굽 MRKT 토론토 매장 / Photo by Yabu Pushelberg




굽은 그야말로 동시대 라이프스타일의 집약체라 할 만하다. 미국 샌터모니카 본점을 시작으로 캐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에 매장을 운영하는 굽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제품 대신 미래를 이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집중한다. 이미 3권의 요리책을 출간한 귀네스 팰트로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밀, 보리, 귀리 등 곡물을 섭취하는 ‘글루틴프리fluten-free’, 몸의 치유를 위해 나쁜 것을 먹지 않는 ‘디톡스’ 열풍 등을 이끈 것은 유명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제로 웨이스트, 최소한의 화장품만 바르자는 논톡신 스킨케어, 요가와 사우나 또한 10여 년 전부터 설파해온 삶의 키워드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독서커뮤니티 ‘굽 북 클럽Goop Book Club’에서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도서들을 공유하며 몸과 정신의 건강이 일치하는 삶을 강조한다. 여행 분야에서도 일찌감치 다양한 트렌드를 예견했다. 파리 여행에서 추천하는 비건 레스토랑, 그랜드캐니언에서 즐기는 텐트 캠핑 같은 콘텐츠는 이미 10여 년 전 굽에서 다룬 콘텐츠로 오늘날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방식이다.




무독성 화장품, 채식과 미네랄 디톡스 등 친환경적 삶과 뷰티에 관한 솔루션을 담은 귀네스 팰트로의 세 번째 책 ‘Goop Clean Beauty’




굽은 단순한 제품 홍보보다 소비자들의 삶의 관점과 태도에 집중한다. 최근 귀네스 팰트로가 자신의 엄마이자 배우인 블라이드 대너Blythe Danner와 함께 나이 들어감의 의미, 여성으로서 노화를 마주할 때의 감정, 피부 관리법에 대해 나눈 대화는 일종의 멘토링에 가깝다. 분명 자사의 안티에이징 제품 굽진스Goopgenes를 소개하는 형식이지만, 귀네스 팰트로는 제품 홍보보다 여성의 노화에 관한 자신의 소회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가 언제였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녀는 답한다. “노화를 받아들이기란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직접적으로 마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한 건 외적으로 노화가 시작될 때, 그때부터가 비로소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내적 성숙이 시작된다는 거죠.”







굽은 3.1필립림, 스텔라 매카트니 같은 명품 브랜드부터 자체 제작한 패션 라인 ‘지라벨G.Label’, 뷰티 라인 ‘굽 글로Goop Glow’까지 다루는 언뜻 거대한 쇼핑 브랜드처럼 보이지만, 굽의 본질은 삶의 이야기를 판매하는 데 있다. 실제로 매년 주관하는 건강 포럼 ‘인 굽 헬스In Goop Health’에서는 현대인의 가장 큰 화두인 건강을 주제로 각 분야 전문의들이 등장해 삶의 태도에 관한 상담을 하고, 2018년부터 시작한 팟캐스트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캐머런 디아즈 같은 셀러브러티들이 자각과 영혼, 와인과 다이어트 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집에서 머무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스테이 홈Stay Home’ 콘텐츠 또한 흥미롭다. 집에서 나 홀로 즐기는 명상 훈련, 사운드 테라피 제품, 아이와 만들기 쉬운 베이킹 레시피 등 동시대 삶과 연관된 콘텐츠를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위 사진 모두) 2018년 런던에 진출한 굽 매장으로 디자인 회사 Fran Hickman이 설계했다. / Photograph is by Annabel Elston




긴 시간 라이프스타일을 다뤄오며 굽은 한때 과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민간요법 또는 대체 의학, 자연 의학을 설파해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것을 소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수영복 차림으로 얼음 위에 누워 즐기는 ‘콜드 테라피cold therapy’, 여성의 질 운동기구로 품절 사태를 빚었으나 의학상 반론 또한 제기됐던 ‘더 제이드 에그The Jade Egg’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명료한 사실은, 굽은 단순한 건강 제품을 넘어 그간 보편적으로 담론화되지 않은 여성의 성姓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분야로 거리낌 없이 취급한다는 점이다. 올 초부터 선보이고 있는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더 굽 랩The Goop Lap>의 에피소드 ‘The Pleasure Is Ours’ 편을 보자. 여성의 오르가슴 코치를 담당하는 전문 에듀케이터가 등장해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인식하는 방식과, 파트너가 아닌 자신을 위한 의미 있는 행위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한다.




RELATED POSTS

PREVIOUS

새로운 내 집을 향한 첫걸음
하우스 리터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