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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노마드, 비대면, 오가닉, 호텔

향이 피워내는 내 열망의 장소

이솝 외

Text | Dami Yoo
Photos | TruePR

향수 산업은 사회적 속성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언급한 냄새라는 상징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향으로 누군가의 배경, 취향, 분위기를 판단하는 일이다. 향수는 날씨, 기분, 장소에 따라 자기표현의 도구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에는 자기표현이 아닌 열망하는 장소를 떠올리는 팔란티어가 된다.





아더토피아 론칭을 기념해 이탈리아 미디어 아티스트 '다비데 콰욜라'와 협업한 전시 . 오는 8월 29일까지 이솝 가로수길 스토어에서 관람할 수 있다.



향이 기억을 촉발한다는 것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잘 말해준다. 바로 홍차와 마들렌 향 맡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는 대서사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해마에 직접적인 신호를 보내 연관된 기억을 촉발시킨다. 푸르스트의 저명한 이야기가 ‘푸르스트 효과’라는 대명사가 된 이유다.


 

이렇게 향은 기억 속 또 다른 장소로 이동시킨다. 다른 장소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향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서 공간을 환기시키는 수단으로 유용하다. 예컨대 시인 라라 몰리와 여행가인 남편 존 몰리가 만든 프랑스 기반의 향수 브랜드 메모는 여행의 기억을 향수로 만드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메모라는 이름 역시 ‘메모리’에서 착안했다. 이들은 여행지에서의 이미지, , 재료를 이용한 후각의 세계 지도를 만들어내며 인도네시아 자바섬, 브라질의 동굴 섬 일하도멜 등 낯선 장소에서의 인상을 향기로 담는다.



 

다른 장소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향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서고 공간을 환기시키는 수단으로 유용하다.”



 

최근 공개된 이솝의 새로운 향수 컬렉션 ‘아더토피아’는 다른 곳으로 인식을 인도하는 푸르스트 효과의 정수다. 아더토피아란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장소라는 뜻으로, 미라세티, 카르스트, 에레미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향수는 바다를 건너는 길고 먼 여행을 함축한 스토리가 그 배경이다.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 해안가에 도착하고 새로운 도시에 닿는 장면을 차례로 나타내는 향기의 서사를 순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먼저 미라세티는 유향과 스파이스와 어러진 흙내음의 우디 노트가 두드러진 향이다. 휘몰아치는 파도, 멀리 흔들리는 수평선, 평화롭지만 외로운 공허함이 있는 바다의 고요와 야만을 동시에 표현했다. 한편 카르스트는 따뜻한 스파이스, 드라이한 우드 노트, 은은한 스모키를 베이스로 해안과 지중해에서 자라는 식물을 연상시킨다. 파도가 만들어내는 밀물과 썰물, 출발과 도착, 들숨과 날숨 같은 규칙적이고 연속적인 순환과 반복이 이 향을 만드는 데 모티가 됐다. 마지막 에레미아는 밀의 플로럴 향과 흙내음이 파우더리한 머스크 향과 겹쳐지며 마치 비가 내린 후 축축히 젖은 콘크리트에서 나는 듯한 내음을 일으킨다.



 




광활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미라세티, 절벽에서 자란 식물과 해안가의 기운을 담은 카르스트의 키 비주얼


 

이솝의 오랜 파트너인 조향사 나베 피용은 아더토피아에 대해 “공기나 피부, 옷 어딘가에 존재하 향기는 현실이면서 상상이기도 한 세계 속의 세계를 창조해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 여기와 저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낳습니다. 자연을 보여주는 창, 이를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자주 간과하는 주변 환경과의 대화로 초대합니다”라고 말.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가 소설 속에서도 경험하는 감각이다. 거친 파도 사이를 항해하는 선장의 담대함이 느껴지는 미라세티는 <모비 딕>의 장엄한 분위기오르게 하고, 해안가의 상쾌한 공기는 율리시스의 샌디마운트 해변과 연결되며, 또 흙과 콘크리트 내음이 공존하는 에레미아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속 구절을 연상시킨다.


 

1970년대생을 기점으로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향이 자연의 향에서 인공의 향으로 옮겨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낙엽 타는 냄새, 막 깎은 잔디 냄새, 해안가의 소금기 냄새, 온 뒤의 풀내음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보다는 화장품 냄새를 맡고 어릴 적 엄마의 화장대 올린다거나, 섬유 유연제 향으로 누군가와 함께한 공간을 연상한다는 것이다. 외출과 만남이 줄향으로 다른 장소에 대한 염원을 대신하는 요즘, 코로나 베이비에게는 향을 감각하는 방법이 또 한 번 전환될지도 모를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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