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FEATURE|노마드,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나의 진정한 집은 어디인가?

영화 <노매드랜드>

Text | Young Eun Heo
Photos | The Walt Disney Company Korea

캠핑카를 타고 가다가 멋진 풍경이 보이면 차를 세워두고 의자와 테이블을 꺼내 흡족할 때까지 그 풍경을 즐기는 삶. 답답한 일상에 지친 우리는 노매드 삶을 꿈꾼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차에서 살게 된 펀을 통해 노매드 삶이란 그런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그들만의 집을 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구속받지 않고 캠핑카를 타고 자유롭게 유랑하는 삶.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장면이다. 반복해서 보다 보니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아무리 모든 시설이 갖춰졌다고 해도 차 안에서의 생활이 집에서만큼 편할까?’ 저 깊숙이 숨어 있던 비뚤어진 심사가 비집고 올라온다. 수많은 미디어는 노매드의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마치 모든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보여준다. 지금 가진 것을 벗어던지고 길 위로 나서서 자연을 만끽하면 행복할 거라고. 하지만 영화 <노매드랜드>는 유랑민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노매드에 대한 허상을 깨뜨리고 집이 없는 삶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노매드에 대한 허상을 깨뜨리고

집이 없는 삶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이 살던 마을 엠파이어는 금융 위기로 마을의 주 수입원이었던 회사 USG가 파산하면서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우편번호마저 삭제된 이 마을에는 텅 빈 집들과 작은 밴에서 생활하며 마을 주변을 배회하는 펀만 남아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펀은 쉽사리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 펀은 같은 노매드인 린다의 소개로 RTR(러버 트램프 랑데부)라는 노매드 커뮤니티 캠프에 참여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이유로 노매드 삶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미국 서부의 넓은 황야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캠핑카와 밴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노매드들은 차에서 생활하는 법을 배우고, 필요 없는 물건을 나누며, 각자의 사연을 나누면서 친분을 쌓는다. 엠파이어의 휑한 초원에 홀로 서 있던 펀은 그렇게 노매드 사회로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캠프가 끝나자 노매드들은 각자의 길을 떠난다. 세상을 떠돌며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길을 떠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펀에게서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펀 곁에 남은 건 낡은 밴 한 대뿐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집을 정의한다면, 밴은 펀에게 집이다.



우리가 집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처럼 펀 역시 밴 내부를 살기 편하게 고치고, 외관에 페인트칠도 한다. 정성 어린 손길로 나만의 집을 꾸미듯이 펀의 밴도 애정을 담아 고치면서 진정한 집이 되었다. 고장 난 밴을 보고 폐차를 권하는 정비소 직원에게 이건 내 집이라고 말하는 펀의 대답에서 밴의 존재가 처음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노매드 삶에 익숙해지는 펀의 모습을 조용히 따라가다 종종 정착한 삶에 대해 묻는다. 돈을 빌리러 간 친언니와 노매드 삶을 살다가 현재는 아들 집에서 사는 데이비드 모두 펀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이들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집(지붕, , 창문이 있고 안락한 침실과 거실이 있는)에서 살고 있다. 좁은 밴에서 먹고 자고 생리 현상까지 해결하는 펀에게는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펀은 대답하지 않는다. 영화는 밤에 데이비드 집의 침실에서 나와 집 앞에 세워둔 자신의 밴에서 잠을 청하는 펀의 모습으로 대신 답한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고 해도 내 집만큼 편한 곳은 없다.








밴이 완전한 집이 되는 순간, 펀은 엠파이어로 돌아가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살던 집을 찾아간다. 텅 빈 집은 그렇게 잊고자 했던 펀의 상실감을 되살릴 뿐이다. 마지막으로 펀은 뒷마당과 연결된 사막같이 넓은 엠파이어의 초원을 걸어본다. 펀이 가장 좋아했던 이 풍경은 어쩌면 그녀의 마음의 집이자 고향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끊임없이 돌아다녀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곳. 우리는 그런 곳을 집이라 부르니까 말이다.



펀은 임대 창고에 보관했던 살림살이를 모두 처분한다. 영화 초반, 어떻게든 가지고 있으려고 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는 펀이 어느 정도 상처를 치유했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까지 펀에게 엠파이어의 집은 남편과의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 떠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1년의 노매드 삶을 통해 집이 굳이 실체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마음속에 진정한 내 집을 간직하고 있다면 어디를 가든 그곳이 내 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펀은 다시 길을 떠난다. 이제 넓은 초원을 달리는 밴의 뒷모습이 쓸쓸하고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집을 자산 가치로만 평가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가

과연 그들을 홈리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진정한 집을 찾은 펀의 마지막을 보며 과연 우리는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집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노매드랜드>에 등장한 노매드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차를 집 삼아 떠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집을 찾았다. 집을 자산 가치로만 평가하는 세태에 익숙해진 우리가 과연 그들을 홈리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안락한 집에서 살지만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집을 찾을 수 있기를 영화의 크레디트 화면을 보며 조용히 기원해본다.




RELATED POSTS

PREVIOUS

새로운 내 집을 향한 첫걸음
하우스 리터러시